2017년 특성화고 현장실습 도중 17세 나이로 사망한 고(故) 이민호 군. 2018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목숨을 잃은 고(故)김용균 씨. 2019년 부산 문현동 아파트 신축 공사 현장에서 작업 중 떨어지는 사고로 세상을 떠난 고(故) 정순규 씨.
모두 먹고살기 위해 나간 일터에서 목숨을 잃은 노동자들이다. 이런 산업재해 사망사고 발생을 막겠다며 우리 사회는 특성화고 현장실습제도를 손봤고,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을 개정해 고인의 이름을 딴 법(김용균법)을 만들었고, 산업재해에 대한 법원의 양형기준도 높였다.
그런데도 산업재해 발생 건수는 크게 줄지 않았다. 고용노동부 '산업재해 현황분석' 자료에 따르면 전체 재해율은 2018년 0.54에서 2019년 0.58로 큰 폭으로 증가했다. 2020년 0.57로 소폭 감소했지만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전체 일자리가 줄어든 상황을 감안하면 실제 산업재해가 감소했다고 보기 어렵다.
김남석 변호사는 "양형기준을 높였다지만 체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경제적 약자인 산업재해 피해자 입장에서는 합의금을 무시하기 어렵다"며 "합의하면 사업주는 벌금형·집행유예가 나온다. 문제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산업재해 사망사고를 막겠다고 27일부터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다. 중대재해가 발생하는 경우 안전조치를 소홀히 한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에게 1년 이상 징역형 처벌을 내리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사망사고를 막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고 입을 모은다.
권영국 변호사는 "중대재해처벌법의 미비점은 하나하나 열거하기 힘들 정도"라며 "5인 미만 사업장·현장실습생도 적용되지 않는 등 예외조항이 너무 많다"고 말했다. 또 "안전 감독을 해야 하는 공무원에 대한 처벌규정도 빠져있고 수위도 너무 낮다"며 "산업재해에 대한 책임을 물으려면 인과관계를 명확히 따질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한 부분도 없다"고 설명했다.
장석원 민주노총 언론부장 역시 "기업 총수, 지역사회 공무원, 노동부 근로감독관의 역할이 못지 않게 중요한데 중대재해처벌법에는 이들에 대한 조항이 다 빠져있다"며 "법이 시행된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다. 법에 구멍이 너무 많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법이 바뀌더라도 이를 적용하는 사법부 인식과 산업재해는 시급히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는 공동체 합의가 없다면 문제는 반복될 것이라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권 변호사는 "산안법이 아무리 바뀌었어도 산업재해는 줄지 않았다"며 "기존처럼 법의 취지를 살려내지 못하면 사실상 옥상옥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법 집행 과정에서 실효성 등을 잘 살릴 수 있는 사법부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 변호사도 "법원이 산안법 위반 사건을 대하는 것을 보면 보수적·소극적"이라며 "충분히 실형이 나올 수 있는 사건도 집행유예·벌금을 선고하는 등 처벌을 줄이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이어 "중대재해법 자체가 세밀함이 떨어져서 법원이 이 공백을 메워야 하는데 기존 법원의 태도를 보면 산업재해 관련 판결에 큰 변화가 생길지는 미지수"라고 설명했다.
장 언론부장은 "안전설비에 돈을 쓰는 것보다 (사망사고가 발생한 후) 합의금에 돈을 쓰는 게 싸다는 생각이 들면 문제는 반복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산업재해를 줄이겠다는 구호와 땜질식 법 제정에 그칠 게 아니라 사회적 인식 변화와 강력한 법 집행이 필요하다는 주문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