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모듈러(Modular)에 거는 기대"

입력 2022-01-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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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태홍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 (사진제공=한국건설산업연구원)
▲손태홍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 (사진제공=한국건설산업연구원)
필자의 연구실이 있는 건물의 건너편에 주거용 건축물이 한창 시공 중이다. 기초 공사를 시작한 것이 얼마 전인 듯한데 벌써 9층 골조 공사가 한창이다. 필자가 아파트 시공 현장에서 건축·안전기사로 근무할 때와 비교해 보면 바깥에서 보는 골조 공사의 품질이 매우 높다. 매끄럽고 반듯한 것을 보면 시공 기술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아졌음을 실감하게 된다. 하지만, 공사를 위해 현장에는 여전히 많은 인력과 장비가 복잡하게 얽혀 있고, 수십 대의 레미콘 트럭이 분주히 오고 가는 것을 보면서, 미래의 건설 현장은 지금과는 달라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4차 산업혁명을 기점으로 몰아닥친 건설산업의 혁신에 대한 요구는 코로나19의 대유행으로 인해 더욱 거세졌다. 국내의 많은 건설기업이 앞다투어 새로운 기술을 사업에 적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기술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장 관리에 활용 가능성이 증명된 드론을 비롯해 최근에는 순찰과 감시를 할 수 있는 4족 보행 로봇에 관한 관심도 커졌다. 하지만, 근본적인 건설 생산시스템의 변화 즉 탈현장화(Off-Site Construction·OSC)를 견인할 수 있는 핵심 기술에 관한 관심은 필자의 기대만큼 높지 않은 듯하다. 그 기술은 바로 모듈러(modular)다.

모듈러는 기본적으로 사전제작을 통해 현장 시공 비중을 줄여 공사 기간을 단축하는 데 목적이 있다. 물론 모듈의 사전제작은 통제된 생산환경 속에서 가능할 때 높은 품질을 기대할 수 있다. 또한, 제작된 모듈은 적시에 현장으로 운송되어 레고 블록처럼 조립될 때 우리가 기대한 모듈러 건설의 장점이 극대화된다. 모듈러 기술은 미국이나 유럽 및 일본에서는 일반화된 건설 방식 중의 하나로, 주거시설을 포함해 숙박 및 교육 시설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그런데, 해외와 달리 국내 건설산업에서는 모듈러는 가까우면서도 먼 기술로 취급받고 있다. 이제까지 추진됐던 모듈러 방식의 사업은 저층 소규모 시설물이 많고, 기술 실증사업의 성격이다. 이러다 보니 기술을 바라보는 시장의 확신은 찾아보기 힘들고 여전히 가야 할 길이 멀게만 느껴진다. 왜 이런 걸까? 건설산업은 자동차 산업이나 IT 산업처럼 첨단 기술의 변화에 즉각 반응하는 기술 집약형 산업이 아니다. 150년 가까이 건설산업의 핵심 재료가 콘크리트인 것만 봐도 그렇다. 건설시장에서 새로운 기술이 정착하기 위해서는 기존에 활용된 기술을 넘어설 수 있는 장점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현재 국내의 모듈러 기술은 아직 부족하다.

그렇다면, 더딘 모듈러 기술 활용의 원인을 기업의 투자 부족에서만 찾는 것이 옳은 걸까. 그렇지 않다. 모듈러 확산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모듈러가 가진 장점을 확인하고 더 나아가 보완점을 확인할 기회가 있어야 한다. 즉, 실제로 사업에 적용해 봐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공공 건설시장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모듈러가 필요한 사업을 지속해 공급하고 적용 성과를 평가해 기술을 고도화하는 순환구조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이와 같은 프로세스를 통해 모듈러는 지금보다 기술의 완성도가 높아질 수 있고 건설생산시스템의 OSC 전환을 위한 중요한 방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듈러가 모든 건설사업의 만능열쇠일 수 없다. 하지만, 건설산업이 지향하고 있는 미래 건설 현장의 모습 실현을 위해서는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기업의 적극적인 기술 투자와 정부의 체계적인 지원이 필수다. 우리는 알고 있다. 산업이 기대하는 모듈러까지 아직 갈 길은 멀지만 다다르지 못할 목적지가 아니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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