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IPEF는 트럼프 정부 시기 회자되었지만 실체가 불분명했던 경제번영네트워크(EPN)와는 차원이 다를 것으로 보인다. IPEF 논의는 실체가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11월 중순부터 러몬도 미 상무장관과 타이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싱가포르, 일본, 한국 등을 돌며 IPEF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을 하기 시작했다. 2022년부터 공식적인 작업이 시작될 것이라는 것, △공급망 △디지털교역 △수출통제/외국인투자심사 등이 그 핵심 협력 분야가 될 것이라는 등의 이야기가 나왔다.
지금까지 공개된 정보를 토대로 필자가 전망하는 IPEF는 다음과 같다. 첫째, IPEF는 ‘경제프레임워크’이지만 ‘무역자유화(trade liberalization)’가 아닌 디지털·녹색 전환 관련 신통상 이슈와 경제안보 이슈가 논의의 핵심이 될 것이다. 올해는 11월에 미국 중간선거가 예정되어 있다. 민주당 내 진보세력이 자유무역정책을 옹호하지 않는다는 점과 바이든이 약 1.7조 달러 규모의 국내 사회기반시설 법안인 ‘더 나은 미국 재건(Build Back Better) 법안’ 통과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IPEF 논의에서 당분간 대중 견제라는 경제안보적 목적이 강조될 것으로 전망된다.
둘째, 타이 USTR 대표는 IPEF와 관련하여 ‘노동자 중심(worker-centric)’을 강조한다. 그런데 ‘노동자 중심’에서 ‘노동자’는 미국의 노동자일 가능성이 크다. 즉, 미국은 철저히 미국의 국가이익을 극대화하는 관점에서 IPEF에 접근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미국의 산업정책 차원에서 IPEF를 바라보고 우리가 대비해야 하는 것이다.
셋째, 작년 12월 미 상원에서 제안된 바와 같이 디지털경제협력이 IPEF의 첫 번째 이슈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이 디지털교역 내용이 포함된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디지털경제동반자협정(DEPA)에 가입 신청을 했다는 점과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이 이번 달부터 발효된 것도 미국에 경종을 울렸다. 중국이 미국의 공백을 이용해 역내에 자국 중심의 규범 제정에 앞서 나가는 것을 미국은 우려한다. 또한 자국우선주의와 보호주의가 만연한 가운데 역내 국가들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율한 무역협정을 단시간에 구축할 수 없다는 점에서 중간 과정으로서 디지털경제협력이 주목받고 있다.
넷째, 미국의 IPEF 구축은 CPTPP나 RCEP와 같은 다자틀의 형식이 아닌, 미국이 인도-태평양 지역 내 국가들과 기존의 동맹 및 양자관계를 강화함과 동시에 그것들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엮는 방식이 될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동맹과 가치의 문제는 점점 더 중요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서 필자는 인권 문제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인권 문제는 앞서 언급한 경제안보, 디지털교역, 가치 중심의 연대와 모두 연관되어 있다. 미국은 인권을 레버리지로 활용하여 중국의 첨단기업, 특히 인공지능(AI) 관련 기업에 대해 수출통제를 실시하고 있다. 디지털교역 측면에서 미국은 디지털 권위주의에 반대하며, 자유로운 데이터의 이동, 신뢰성 있는 정부의 개인정보 취급 등을 주장한다. 가치 중심의 공급망 연대 측면에서 러몬도 장관은 “프렌드 쇼어링(friendshoring)”을 언급했으며, 타이 대표는 1월 12일 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파트너와 구체적 성과를 목표로, 특히 2022년 미국의 주요과제로 미국-유럽연합(EU)-일본 3자 간 파트너십 쇄신·강화를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일단 가치 중심의 연대가 강화된다면 전략적 신중성은 필요하겠지만 전략적 모호성 유지는 위험하다. 그간 우리는 홍콩의 민주주의 문제와 신장위구르의 인권 문제 등 중국과 관련된 가치 문제에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며, 다른 선진국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 왔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을 행동으로 보여주지 않는다면 우리가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고 믿는 주요국들로부터 오해받고 배제될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할 시점이다.
적어도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을 고려할 때 국제사회의 보편적 가치에 대한 의사 표시는 필요하다. 이는 장기적으로 우리 정부의 원칙이 되고 정책적 유연성을 제고하는 역할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앞장서 독자적인 목소리를 낼 수 없다면 적어도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 공동의 목소리를 낼 필요는 있다. IPEF 논의가 본격화되면 우리의 정체성을 확실히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매 순간 국가이익 극대화를 위한 치열한 고민은 필요하지만, 임기응변식 눈치 보기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