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가장 큰 그린워싱(위장환경주의)이다” vs “불완전하지만 진정한 해결책”
유럽연합(EU)이 원자력과 천연가스를 녹색분류체계(green taxonomy)에 포함하는 규정을 확정, 발의하자 오스트리아 등 일부 회원국이 소송까지 불사하는 등 논란이 일고 있다. 인류가 처한 거대 문제인 기후변화와 연관되다 보니 우리나라에서도 EU의 그린 택소노미와 관련해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2일(현지시각) 천연가스와 원자력 발전에 대한 투자를 조건부로 ‘녹색’으로 분류하기로 하는 금융 녹색 분류체계(그린 택소노미) 규정안을 확정·발의했다.
이에 따르면 신규 원전은 2045년 전에 건축허가를 받고, 계획과 조달된 자금이 있으며 2050년까지 방사성 폐기물을 안전하게 처분할 수 있는 국가에 위치한 경우에 이에 대한 투자가 녹색으로 분류된다.
천연가스 발전 투자는 전력 1킬로와트시(kWh)를 생산할 때 배출되는 온실가스가 270gCO2eq(이산화탄소 환상량) 미만이거나 20년간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이 550kgCO2eq 미만일 경우 녹색으로 분류한다.
이러한 규정안은 지난달 1일 각 EU 회원국에 전달한 규정 초안을 유지한 것이다. 천연가스·원자력 발전을 친환경 산업으로 인정하게 되는 내용으로 인해 초안 전달 당시부터 ‘그린워싱’ 논란이 이어졌다.
탈원전을 지향하는 독일, 오스트리아, 룩셈부르크, 포르투갈, 덴마크 등은 공개적으로 EU 집행위 초안에 격렬히 반대했다. 오스트리아의 경우 소송을 제기할 것이라며 법적 대응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슈테피 렘케 독일 환경부 장관은 “원자력은 대단히 파괴적인 환경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표명했다.
룩셈부르크 역시 그린 택소노미 규정안을 “‘그린 워싱’ 위험성이 있다”며 반대하는 국가들과 공동 대응할 것을 예고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네덜란드, 스웨덴, 덴마크 등은 천연가스 녹색 분류에 반대한다는 서한을 보냈다.
블랙록, 골드만삭스 등 유럽 자산운용사와 투자자 모임인 기후변화에 관한 기관투자자 그룹(IIGCC)은 공개서한을 통해 “천연가스를 (친환경 산업에) 포함하면 지속 가능한 경제활동 분류에 과학적인, 국제적 기준을 세워왔던 EU의 목표가 훼손됐다”며 EU 집행위 결정에 반발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규정안 찬성론자들은 신재생 자원이 화석 연료를 대체할 정도로 전력을 생산할 때까지 원자력과 천연가스가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원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EU 집행위는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달성하려는 조치라는 입장이다. 매이리드 맥기네스 EU 금융서비스 담당 집행위원은 이번 규정안에 대해 “기후 중립 경제 전환에 있어 중요한 과정”이라 평가하며 “(규정안이) 불완전할 수 있으나 진정한 해결책”이라고 말했다.
그린 택소노미 규정안이 시행되기까지 아직 많은 과정이 남았다. 앞으로 4개월간 EU 회원국과 EU 의회에서 공식 논의가 이뤄진 뒤 승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규정안은 27개 회원국 중 적어도 15개국이 반대하거나 EU 의회에서 과반수인 353명 이상이 반대하지 않는 이상 통과된다. 뉴욕타임스는 규정안 부결 가능성이 ‘불투명하다’고 전망했다.
이번 그린 택소노미 규정안으로 원전과 천연가스 발전이 친환경 산업으로 분류되면 다른 국가들에도 적지 않은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 환경부는 지난해 12월 30일 발표한 한국형 녹색 분류체계 지침서에서 원자력 발전은 녹색 분류에서 제외했고, 액화천연가스 발전은 조건부로 포함했다.
에너지경제연구원과 에너지기술연구원에 따르면 발전원별 1GWh당 탄소 배출량은 석탄 888t, 석유 733t, LNG 499t, 신재생에너지(태양광·수력·풍력·바이오매스) 45.5t, 원자력 29t이다.
특히 원전은 신재생에너지보다 적은 탄소 배출량에도 불구하고, 원전사고의 위험성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없고 방사성 폐기물 문제도 해결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원전 반대론자들의 끊임없는 공격을 받아왔다. 문재인 정부 역시 안전성을 우선으로 두고 탈원전·감원전 기조를 펼쳐왔다.
그러나 화력 발전 비율이 높은 상황에서 신재생 에너지만으로는 수요를 맞출 수 없어 탈원전 정책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주요 대선후보들도 에너지 정책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신규 원전을 건설하지 않고, 이미 있는 원전은 가동기한까지 쓰는 등 현 정부의 감원전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 밝혔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중단됐던 신한울 3, 4호기 건설재개를 바로 추진하는 등 탈원전 정책 폐기 및 원전 확대를 내세웠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는 탄소 감축을 위해 기존 원전 정상 가동과 함께 소형 모듈 원자로 사업을 국책사업으로 추진할 것이라 공약했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는 “미래세대를 위해 탈원전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 중이다. 그는 사고위험과 핵폐기물 처리 등 사회적 비용을 미래 세대에 전가하는 원전이 기후위기의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