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솟는 유가·물가, 추락한 원화…증시 버블 터트릴까”

입력 2022-02-04 08:08 수정 2022-02-04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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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재 품목별 가격변화
자료=대신증권
▲원자재 품목별 가격변화 자료=대신증권
“유가 급등, 달러 강세, 물가상승(인플레이션)이 글로벌 경제에 부담을 주고 있습니다. 돈의 힘에 올랐던 글로벌 증시 랠리가 종착역을 향할 가능성도 있다고 봅니다.”

3일 서울 여의도에서 만난 금융투자(IB)업계 한 임원의 얘기다. 그는 “미국 기준금리가 오르더라도 정책적으로는 여전히 확장 기조에 있겠지만,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글로벌 자산의 버블이 한꺼번에 꺼질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미국이 예상보다 강한 긴축 통화정책을 예고한 가운데 달러 강세, 국제 유가 급등, 물가 급등(인플레이션 우려)이 경제의 3대 복병으로 등장했다. 지난 3일 달러당 원화값은 1년 7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고(환율 상승), 3일(미 동부시간) 뉴욕상업거래소에서 3월물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배럴당 90.27달러에 거래됐다. 미국과 유로존(EU)의 물가는 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하는 등 환율·유가·물가 움직임이 모두 심상치 않다는 분석이다.

유가 치솟고·원화는 뚝~

3일(미 동부시간) 뉴욕상업거래소에서 3월물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전장대비 2.01달러(2.28%) 급등한 배럴당 90.27달러에 거래됐다. WTI 가격이 배럴당 90달러를 넘어선 것은 지난 2014년 10월 이후 처음이다. 지난 주 브렌트유도 배럴당 90달러를 돌파한 바 있다. 최근 유가는 공급 차질과 지정학적 우려에 가파른 강세 흐름을 나타내고 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비 OPEC 주요 산유국들의 협의체인 ‘OPEC 플러스(OPEC+)’의 원유 증산 유지 방침도 시장의 우려를 잠재우지 못하는 모습이다.

전규연 하나금융투자 이코노미스트는 “지정학적 리스크는 예측이 어렵고 변동성이 크게 높아질 수 있어 당분간 유가의 상단을 열어둘 필요가 있다”면서 “다만 산유국들의 증산 행보와 수요 회복 속도를 고려할 때 원유시장은 연초 이후 공급이 수요보다 많은 국면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원자재 분석 전문가 중에서는 최근 급등하는 유가에 대해 “투기적 순매수 포지션이 늘어난 영향도 있어 조정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한다

▲글로벌 주요국 달러 대비 통화가치 변화
자료=대신증권
▲글로벌 주요국 달러 대비 통화가치 변화 자료=대신증권
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원화값도 문제다. 지난 3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전 거래일 종가보다 0.9원 오른 달러당 1206.4원까지 치솟았다. 2020년 6월 23일(1208.8원) 이후 1년 7개월여(591일) 만의 최고치다.

원화는 달러뿐만 아니라 기타 주요국 통화에 대해서도 유독 약세를 보였는데, 미국의 긴축 전망, 공급망 차질에 따른 물가 상승 압력,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과 높은 중국경제 의존도, 외국인의 국내 증시 이탈 등이 원화 가치를 끌어내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은행은 지난 1월 ‘최근 원화 약세 원인 분석’이라는 제목의 ‘BOK이슈노트’에서 “우리 경제가 국제 원자재 수입, 중국 경제, 반도체 등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최근 달러 강세 국면에서 대외 리스크(위험)에 상대적으로 크게 영향을 받았다”면서 “여기에 환율 상승 기대에 대한 시장 반응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원자재 가격 상승은 자원 수입국인 우리나라의 교역조건과 경상수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 원화 가치를 끌어내리는 요인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국은행은 평가했다.

원화값이 떨어지면 증시에 좋을 리 없다. 환율 급등과 외국인 자금 이탈 간의 악순환 고리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투자자들의 주식 포트폴리오 리밸런싱(자산 재배분) 과정에서 외국인 투자자금은 국내 증시에서 빠져나가고, 국내 투자자의 해외 투자는 늘면서 원화가 상대적으로 빠르게 절화될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치솟는 물가는 두려울 정도다. 2일(현지사간) 유럽연합(EU) 통계청인 유로스타트는 1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예비치가 전년 같은 기간보다 5.1%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통계를 집계한 1997년 후 가장 높은 수치다. 유로존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의 지난해 12월 CPI는 전년 같은 달 대비 7.0% 상승했다. 이는 1982년 이후 40년 만의 최고치다.

▲권역별 국가별 EPS추이
자료=대신증권
▲권역별 국가별 EPS추이 자료=대신증권

‘신3고’에 자산 버블 꺼질라

경기 회복의 불씨가 살아나는 상황에서 이 같은 움직임은 회복세에 찬물을 끼얹는 악재가 될 공산이 크다. 원화 약세는 곧 호재라는 공식도 더는 통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원화 약세는 수출 기업의 가격 경쟁력을 높여 수출에 호재로 작용하지만, 원자재를 수입하는 기업 처지에서는 원화 가치가 떨어지면 그만큼 비싼 돈을 주고 사여한다. 그 비용은 고스란히 상품가격에 전가할 수밖에 없다. 한국무역협회의 지난해 8월 보고서에 따르면 원화 가치가 10% 떨어지면 수출이 늘면서 제조업의 영업이익률은 1.3%포인트 상승한다. 전기장비·운송장비, 기계·장비, 컴퓨터·전기 및 광학기기 등이 원화 약세의 덕을 볼 수 있다. 반면 석탄 및 석유, 목재·종이, 1차 금속은 피해가 우려된다.

원화 약세가 소비를 더 끌어 내릴 수도 있다. 수입 물가가 오르면 국내 물가가 상승하고 소비가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여기에 유가 급등, 물가 상승이 맞물려 자칫 수출과 내수를 한꺼번에 위축시킬 우려도 있다.

미국 등 주요국의 통화정책 긴축 전환도 한국 경제에 큰 부담이다. 선진국의 금리 인상 시 한국은행에 대한 기준금리 인상 압력이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따라 한국은행이 금리를 올리면서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충당할 수 없는 한계기업 비중이 높은 한국은 타격이 불가피하다. 전국경제인 연합회 관계자는 “한국은 대중국 수출의존도와 중간재 수입의존도가 높아 중국 경기둔화에 따른 성장률 하락 불가피하다”면서 “예견되는 위기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 복병은 증시에도 부담이다. IB 업계 한 관계자는 “저금리를 기반으로 투자자 심리에 쏠림 현상이 나타난 측면이 있지만, 최근 시장 반응이 다양해지고 있다”며 “다양성이 커질 수록 금융시장은 공고해지고 위험에도 잘 대비할 수 있게 된다. 다만 단기적인 하방 위험성에는 대비해야 한다”고 했다.

나정환 케이프투자증권 연구원은 “국내 증시의 하방압력은 제한적일 전망”이라며“실적 탄탄한 종목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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