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원의 4차 산업혁명] 에너지 안보를 일깨우는 3개의 뉴스

입력 2022-02-0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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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천대 교수, 전 경기과학기술진흥원장

에너지 자원 최빈국인 우리나라에서 ‘에너지 안보’라는 말은 영어의 ‘be’ 동사만큼이나 흔히 사용되어 왔다. 수십 년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 온 이 말이 이제는 ‘에너지 위기’를 넘어 ‘국가 위기’로까지 그 의미의 강도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주 보도된 3건의 국제뉴스는 한국이 마침내 에너지 때문에 백척간두의 위기로 내몰리는 게 아닌가 하는 경계심을 고조시키고 있다.

첫 번째 뉴스는 유럽연합(EU)의 유럽위원회가 2월 2일 어떤 사업과 제품이 지속가능한가를 나타내는 ‘택소노미’(그린 리스트) 법안을 공표한 것이다. EU는 일정한 조건하에서 원자력과 천연가스를 탈탄소에 공헌한다고 평가해 민간 자금을 이 사업에 유도한다는 생각이다. 2050년에 역내의 온난화 가스 배출 제로 목표를 달성한다는 목적이지만 반발도 있다.

EU의 택소노미는 이미 일부에서 운용되기 시작했으며,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는 2026년부터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결정했다. 철강과 시멘트 등 세세한 기준을 명기한 수백 쪽의 문서도 공표된 상태다. 원자력과 천연가스는 회원국의 대립으로 의사결정이 미뤄지고 있었다. 원자력은 생물다양성과 수자원 등 환경에 중대한 해를 끼치지 않는 것을 조건으로 2045년까지 건설 허가가 난 발전소를 지속가능한 것으로 분류했다. 천연가스는 1킬로와트시(kwh)당 이산화탄소(CO₂) 배출량이 270g 미만이라는 조건을 붙여 2030년까지 건설 허가를 얻고, 2035년까지 저탄소 가스로 전환할 계획을 세우도록 요구했다.

원자력 대국 프랑스와 핀란드 외에 원자력 발전 도입을 계획하고 있는 중·동유럽 국가들은 원자력을 찬성하는 반면, 2022년에 탈원전을 하기로 한 독일, 오스트리아, 스페인 등 5개국 정도가 원자력을 반대하고 있었다. 지속가능한 것으로 분류되지 않는 사업이 금지되는 것은 아니지만 자금 조달 등에서는 불리할 것으로 보인다. EU가 택소노미를 전제로 한 룰 만들기를 진행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향후 이 법안은 가맹국으로 구성된 이사회와 유럽의회에 보내져 최대 6개월에 걸쳐 내용을 정밀 조사한다. 어느 기구도 유럽위원회 안을 거부할 수 있지만 이사회에서는 적어도 20개국의 반대가 필요해 벽은 높다. 유럽 의회에서는 과반수가 반대하면 거부할 수 있기 때문에 유럽위원회가 내용을 재검토하지 않을 수 없는 가능성도 있다.

두 번째 뉴스는 우크라이나 위기다. 러시아의 침공 가능성이 커지면서 미·러 충돌과 러시아의 대 유럽 가스공급 중단이 우려되고 있다. 이에 미국이 손을 내민 게 중동의 카타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유럽으로 가는 천연가스의 공급이 끊어지는 사태에 대비해 시장안정을 위한 방책이다. 타밈 카타르 총리는 지난달 31일 미국에서 바이든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액화천연가스(LNG)를 유럽시장으로 돌리는 방안을 논의했다. 카타르는 유력한 천연가스 생산국이다. 영국 BP 통계에 따르면 카타르는 세계 LNG 수출 시장의 22%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호주와 거의 대등하다. 주로 파이프라인으로 유럽에 천연가스를 판매하는 러시아의 LNG 수출 점유율은 8%다.

유럽은 지난해 천연가스 부족으로 위기를 겪은 터라 러시아가 가스 공급을 끊고 뒤흔드는 시나리오를 경계한다. 카타르가 LNG를 유럽시장으로 돌리면 유럽의 가격 급등을 억제할 가능성이 있다. 다만, LNG 시장은 석유와 달리 장기 고정계약이 주류다. 카타르가 LNG를 유럽용으로 돌리면 현재의 주요 판매처인 한국, 일본 등 아시아 국가에 대한 공급이 약해질 가능성이 있다. 미국이 한·일 두 나라 정부에 양해를 구한 이유다.

세 번째 뉴스는 석유와 가스 가격의 급등이다. 이는 세계 경제가 인플레이션으로 경기정체가 나타나기 시작한 현시점과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 그 영향력이 크다. 원유 가격은 현재 배럴당 90달러를 넘어 조만간 100달러를 넘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강세 국면이다. 가스 가격은 1년 전보다 5배 가까이 올랐다.

한 마리의 제비가 왔다고 봄이 온 것은 아니라는 격언이 있지만, 이 3개의 뉴스는 에너지 지정학의 격변과 함께 우리나라 에너지 안보의 대전환이 매우 시급해졌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고 있다. 한 달 앞으로 다가온 대선을 계기로 에너지 안보 문제를 국가 최우선 전략 과제로 내세워야 한다. 이러한 에너지 안보의 대전제 아래 산업구조 개편과 탈탄소 투자를 경기 활성화로 연결하는 컨센서스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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