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별 근로계약에 근로조건을 구체적으로 정해두지 않았다면 근로자에게 불리하더라도 취업규칙에서 정한 근로조건을 적용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번 판결은 취업규칙보다 유리한 기존 근로계약을 우선 적용할 수 없는 경우를 명확히 했다는데 의미가 있다. 다만, 새 법리를 제시하는 등 내용은 없어 큰 의미를 부여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해석됐다.
대법원 3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교수 A 씨가 B 학교법인을 상대로 낸 임금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광주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8일 밝혔다.
산하에 대학교를 운영하는 B 학교법인은 호봉제를 유지하다가 1999년 3월경 직전년도 성과를 반영한 연봉에 따라 보수를 지급하기로 하는 연봉제 규정을 제정해 2000년경부터 시행했다.
A 교수는 이사회의 결의를 거치지 않고,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를 얻지 않은 채 호봉제를 연봉제로 변경한 것은 무효라며 미지급한 임금을 지급하라는 소송을 내 2014년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이는 2015년 확정됐고, A 교수를 비롯해 연봉제 변경에 반대하는 교원들도 다수의 소송을 내 같은 결론의 판결들이 확정됐다.
A 교수는 이전 소송 이후 2014년 3월부터 2017년 2월까지 호봉제에 따라 받아야 할 급여 차액을 청구하는 소송을 내 다시 일부 승소 판결을 선고받아 2018년 확정됐다.
이번에는 2017년 3월부터 2018년 2월까지 급여 차액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1·2심은 A 교수의 손을 들어 줬다. 그러나 대법원은 일부 판단이 잘못됐다고 봤다.
앞서 대법원은 근로자에게 불리한 내용으로 변경된 취업규칙은 집단적 동의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그보다 유리한 근로조건을 정한 기존의 개별 근로계약 부분에 우선하는 효력을 갖는다고 할 수 없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린 바 있다.
하급심 재판부도 이를 근거로 A 씨의 손을 들어 줬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 법리는 근로자와 사용자가 취업규칙에서 정한 기준을 상회하는 근로조건을 개별 근로계약에서 따로 정한 경우에 한해 적용될 수 있는 것”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개별 근로계약에서 근로조건에 관해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고 있는 경우에는 취업규칙 등에서 정하는 근로조건이 근로자에게 적용된다고 봐야 한다”고 판시했다.
A 교수는 호봉제가 시행되던 때 조교수로 신규 임용된 이래 대학교 급여규정 등이 규정한 바에 따라 급여를 받기로 하는 외에 별도로 임용계약서를 작성하거나 임금 등 근로조건에 관해 약정을 체결하지 않았다.
B 학교법인은 2017년 8월 연봉제 변경과 관련해 재직 중인 전임교원 전부를 대상으로 찬반투표를 진행했고, 찬성이 반수를 넘어 가결됐다.
대법원은 “적어도 2017년 8월 연봉제 임금체계에 대해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를 얻은 후에는 원고에게 취업 규칙상 변경된 연봉제 규정이 적용된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김남석 변호사는 “정규직 같은 경우 처음 입사 당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그 뒤에는 상여금 등 변경할 때 근로계약서를 다시 쓰지 않고 취업규칙을 변경해서 적용하는 경우가 많다”며 “대법원 입장은 취업규칙의 규범성을 인정해 변경됐으면 당연히 취업규칙이 적용된다고 보는 것이 대법원 입장이라 기존 판결과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