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전임자가 급여를 받으면서 노동조합 활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제한하는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한도'를 결정하는 노사정 심의가 공전하고 있다.
노동계와 경영계 간 이견차가 계속되면서 심의·의결 시한으로 정한 이달 3일까지도 결론이 도출되지 않았고, 지금까지도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앞으로도 노사 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는다면 '캐스팅 보드'를 쥔 공익위원(정부 위원)이 제시하는 조율안을 토대로 근로시간면제 한도가 결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12일 정부 부처에 따르면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산하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근면위)는 3일 전원회의를 열어 근로시간면제한도에 대한 심의를 마무리할 예정이었지만 노사의 여전한 입장 차이로 한도 결정이 불발됐다.
근면위는 9일 전원회의를 열고 심의를 이어갈 예정이었으나, 일부 심의 위원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회의가 다음으로 연기됐다.
이번 근로시간면제 한도 심의는 작년 7월 시행된 개정 노조법에 따른 것이다.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내용이 반영된 개정 노조법은 노조 전임자에 대한 급여 지급 금지 규정을 삭제했지만 근로자위원, 사용자위원, 공익위원 각각 5명으로 구성된 근면위에서 근무시간 중 교섭 및 협의 등의 일정한 업무가 허용되는 대상자 수와 시간 한도를 정하도록 규정했다.
경사노위는 작년 11월 30일 근면위에 근로시간면제 한도 심의를 요청했으며 근면위는 개정 노조법령(요청날부터 60일 이내 심의·의결)에 따라 이달 3일까지 근로시간면제 한도를 결정한다는 방침을 세웠었다.
그러나 여러 차례의 심의 과정에서 근로자위원과 사용자위원 측이 이견차가 큰 요구안을 각각 제시하면서 합의점이 좀처럼 도출되지 않고 있다. 근로시간면제 한도 확대 또는 축소에 따라 각각에 미치는 파장이 적지 않기 때문에 양보 없는 줄다리기 싸움을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가령 현재 조합원 99명 이하인 사업장의 경우 노조 전임자 1명을 둘 수 있는 연 2000시간의 근로시간면제 한도가 연 4000시간으로 확대되면 2명이 유급으로 노조활동이 가능해 사업주로서는 비용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반대로 기존보다 근로시간면제 한도가 축소되면 노조 전임자가 줄어 노동계로서는 노사 활동 위축이 불가피하다.
현재 노동계는 요구안으로 △한도 구간 통합 및 파트타임 사용 인원 제한 폐지 △지역분포에 따른 한도 추가 부여 대상 기준(1000인 이상 사업장) 삭제 △교대제 근무 사업장과 연합단체에서의 활동을 고려한 한도 추가 부여 △중소사업장을 대상으로 산재 예방 활동 전임자에 대한 한도 예외 인정 등을 제시하고 있다.
한국노총 측은 “입법적 개입을 폐지하라는 ILO 기본협약의 입장을 반영한 개정 노조법의 취지에 따라 정부 고시에 의한 세분화된 근로시간면제 한도 구간을 통합해 노사의 자율적 교섭여지를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대로 경영계는 △근로시간면제 한도 구간 세분화와 최대한도 축소 △지역 분포에 따른 한도 추가 부여 폐지 △초기업 단위 노조 산하 조직의 한도 축소 △근로시간면제 사용계획서 제출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측은 “해외사례를 보면 노조 업무종사자들에게 급여를 지급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고, 예외적으로 필수적 노조활동에 대해서만 합당한 수준에서 근로시간을 면제하는 것이 글로벌 스탠다드“라며 ”이를 반영해 합리적 개편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추후에 열리는 전원회의에서도 노사가 계속 대립해 접점을 찾지 못한다면 공익위원 측이 심의 촉진안을 제시하고, 이에 대한 노사 의견을 조율한 최종안을 확정해 표결에 부칠 가능성이 높다.
다만 공익위원으로서는 어느 한쪽에 치우치는 안으로 의결될 경우 타격을 입는 쪽의 거센 반발이 예상되는 만큼 조율안 제시에 고민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