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자동차 '사전계약' 꼼수

입력 2022-02-15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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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 사이 국산 신차가 쏟아졌습니다.

자동차는 종류와 등급별로 짧게는 5년, 길게는 7~10년마다 완전히 바뀐 새 차가 나오는데요. 공교롭게도 2019~2021년 사이에 이들의 출시 시점이 겹쳤습니다. 이른바 ‘신차 슈퍼 사이클’이지요. 이렇게 대대적으로 신차가 쏟아진 것은 2000년대 이후 세 번째입니다.

자동차 회사는 신차를 먹고 삽니다. 흥망성쇠를 거듭했던 쌍용차는 2015년 소형 SUV ‘티볼리’를 앞세워 잠시나마 흑자전환에 성공하기도 했지요.

거슬러 올라가 보면 1980년, 기아산업이 내놓은 ‘봉고’ 역시 벼랑 끝에 몰린 회사를 구해낸 ‘효자'였습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자동차 회사는 신차 출시를 앞두고 밤잠을 줄여가며 공을 들입니다. 어떻게 하면 세간의 관심을 끌어모아 신차 효과를 제대로 누릴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이지요.

대표적인 신차 출시전략 가운데 하나가 이른바 ‘사전계약’입니다. 사전계약은 ‘다품종 소량생산’ 체제를 갖춘, 틈새시장을 겨냥한 ‘니치 브랜드’가 오래전부터 써왔던 마케팅 전략입니다. 사실상 주문생산 체제를 갖추다 보니 정확한 수요 파악이 중요했으니까요. 사전계약을 통해 수요를 확인한 다음 생산 계획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국내에서는 2000년대 초, 쌍용차가 뉴 체어맨을 내놓으며 ‘사전계약’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당시 쌍용차 뉴 체어맨은 현대차 에쿠스 판매를 앞지르며 국내 고급세단 시장을 주도했지요. 독일 메르세데스-벤츠 E-클래스 플랫폼을 바탕으로 개발한 체어맨은 뒷바퀴굴림 고급 세단을 지향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앞바퀴굴림이었던 에쿠스(1세대)와 시작부터 달랐습니다.

다만 생산능력이 고작 월 1500대 수준이다 보니 고민이 많았습니다. 자칫 인기 없는 차종을 대량으로 생산했다가 자칫 재고부담을 떠안을 수 있었거든요. 결국 쌍용차는 뉴 체어맨을 내놓으며 사전계약을 시도했고, 이틀 만에 월 생산능력의 2배인 3000대 계약을 끌어모으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렇게 20년 가까이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제 대중차 브랜드인 현대차와 기아도 신차 출시 때마다 사전계약을 받습니다.

요즘 사전계약은 신차 가격을 책정할 때 요긴하게 쓰이기도 합니다. 차의 디자인과 성능, 편의 장비 등을 공개하고 대략적인 가격을 미리 알려줍니다. 그리고 이에 따라 사전계약을 받는 것이지요.

사전 계약에 많은 수요가 몰리면 마음껏 최종 판매가격을 올려서 발표합니다. 사전계약이 시큰둥했다면 서둘러 가격을 낮춰 발표합니다.

이 사전계약에는 자동차 회사의 꼼수도 숨어있습니다. 폭발적인 사전계약 신기록을 세웠지만 이런 수요가 전부 팔리지는 않습니다.

자동차 회사의 사전계약은 계약금 10만 원(고급차 브랜드는 50만 원)이면 충분합니다. 사전계약을 하면 회사 이름과 계약자 이름으로 된 가상계좌가 나옵니다. 여기에 입금을 마치면 사전계약이 끝납니다.

물론 요즘처럼 반도체 부족에 따라 출고 시점이 미뤄지면 이 계약이 파기되기도 합니다. 사전계약 1만 대 가운데 1호차 출고가 시작되면, 상대적으로 뒷순위인 1만 번째 고객부터 역으로 계약이 파기되기도 하니까요.

차 회사의 홍보 전략도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됩니다. 예컨대 현대차는 8세대 쏘나타 출시 때 '사전계약 5일 만에 1만 돌파'라며 대대적인 홍보에 나서기도 했는데요.

그런데 그거 아시나요? 이는 5세대 NF쏘나타(첫날 7300대)→6세대 YF쏘나타(첫날 1만2000대)→7세대 LF쏘나타(3일 만에 1만 대) 등과 비교하면 2000년대 중반 이후 가장 저조한 사전기록이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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