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안보라는 용어 자체가 최근에 생겨난 것은 아니다. 이는 2차 세계대전 중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에 의해 제시된 사회 및 경제안보에서 정책적 개념으로 등장하였다. 당시 루스벨트 대통령은 인간의 본질적 자유와 벗어나야 할 결핍을 사회 및 경제안보의 미래 비전으로 제안한 바 있다. 이후 개인 차원에서의 경제안보는 인간안보의 개념으로, 사회공동체 차원에서의 경제안보는 복지국가의 경제적 안정과 사회적 안전망 구축 개념으로 진전되었다.
경제안보는 급속한 글로벌화의 진전에 의해 또 다른 의미로 사용된다. 2000년대 전후 세계화에 의해 각국의 시장이 급격히 개방되는 시기, 경제안보는 개인, 가정 및 지역사회가 생활에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요소를 지속 가능하게 충족시킬 수 있는 능력으로 정의되었다. 특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예상치 못한 경제적 충격에 의한 대량실업, 소득변화, 자산가치의 급격한 하락 등 경제적 혼란에 대응하기 위한 개념으로 재정의되었다. 즉, 경제안보의 개념을 시민들이 처한 경제위기와 손실에 대한 대응 차원으로 접근한 것이다.
이와 같이 기존의 경제안보는 경기의 급격한 변화에 의한 개인과 사회의 경제적 안정성에 초점이 맞추어졌으나, 최근 미·중의 외교, 안보, 통상, 기술 등 다방면에서의 패권경쟁이 격화된 이후 경쟁적 차원의 경성권력으로서 경제안보가 다루어지기 시작하였다. 트럼프 정부 시기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무역제한목록(Entity List)을 공표하고, 이에 따라 무기, 통신장비, 반도체, 5G 등 핵심품목의 거래 제한에 나섰다. 중국은 이에 대응하여 반도체, 군수물자 및 원자재 수출 제한을 통한 공급망 지배력을 통해 경제안보 역량을 과시하였다. 중국은 희토류 등 희소 광물질 수출제한 가능성을 통해 민주주의 국가 연대를 견제하고 있으며, 굳이 희소성이 없더라도 값싼 원자재 공급처로서 세계시장 점유율이 높은 원자재에 대한 수출 제한을 전략적으로 활용해 왔다.
지난해 연말 우리나라의 요소수 대란은 이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미·중의 극한 경쟁에 더해 코로나19 팬데믹은 그동안 규범과 협력의 분야였던 보건·방역 영역에까지 영향을 미치며, 다수의 국가가 자국의 배타적 이익을 위해 이기적인 산업정책을 취하는 것에 주저함을 덜어주었다.
이전 산업화 시기, 먼저 발전한 자유주의 시장의 압력을 견제하기 위해 제시되었던 경제민족주의는 현재 경제안보라는 새로운 국가정책으로 재탄생하였다. 경제민족주의가 수입 대체, 관세 및 보조금 등 산업 및 통상정책의 발전 전략이었다면, 지금의 경제안보는 전통안보와 비전통안보 이외에 안보의 한 영역으로서 구축되고 있는 것이다. 경제안보의 학제적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가운데, 이제 경제안보의 범위는 글로벌 공급망(supply-chain) 불안, 기술혁신 분야의 무한경쟁 등 다양한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유럽연합(EU) 또한 유럽 배터리 동맹(European Battery Alliance) 및 디지털 컴퍼스(Digital Compass)에 대한 공공투자를 통해 역내 경제안보를 구축하고 있다. EU는 역내 국가의 글로벌 반도체 시장 점유율이 10% 정도에 그치고 있다는 점과 EU 디지털 데이터의 90%가 역외에서 저장·처리되고 있다는 점에 대해 강경한 조치가 필요함을 인식해 왔다. 글로벌 시장을 통한 효율성의 경제가 안전성과 안정성, 복원력을 담보한 경제안보의 개념으로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 경제안보는, 첫째, 국가가 첨단산업에서 기술적 우위를 점하여 주요 산업에서 안정적으로 공급망 진영 내에 포진할 수 있는가, 둘째, 공급망에 대한 물리적·기술적 도발에 맞서 안전성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셋째, 지역화 및 내재화된 공급망을 운영하며 이에 대한 외생적 충격에 어느 정도 복원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인가의 관점에서 다루어질 수 있다. 우리 정부도 지금까지의 자유무역 질서에 의한 국제 통상규범과 국익을 위한 경제안보 구축의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전략적 선택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