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원호의 세계경제] 러시아의 오판과 핀란드화 논의

입력 2022-02-2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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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돈바스 해방 운운하던 러시아는 결국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러시아는 이유를 불문하고 전쟁을 일으킨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이는 미국의 주장처럼 처음부터 계획되어 있었던 전쟁으로 보여진다.

소련 붕괴 직전 16개국이었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나토) 회원국은 1999년 19개, 2009년 28개, 2020년 30개국으로 확대되며 동진을 거듭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정부의 나토 가입 추진을 우려하는 러시아 정부의 안보이익을 고려하더라도, 우크라이나 정부의 결정이 마음에 안 든다고 전쟁을 통해 정권을 전복시키고 새 정권을 세우려는 러시아의 방약무인한 행동은 정당화될 수 없다.

‘전쟁’은 사실 경제학에서 잘 다루는 주제가 아니다. 근본적으로 합리성(rationality)을 가정한 경제학에서는 효율적인 파괴가 아닌 효율적인 생산에 대해 분석한다. 그러나 경제학적 시각에서 “왜 국가 간에 파괴적인 갈등이 여전히 존재하는가”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다. 역사상 전쟁은 실제로 계속 반복되어 왔기 때문이다. 가장 손쉬운 답은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에서 찾을 수 있다. 애덤 스미스는 “예상되는 이익이 비용보다 클 경우 국가가 전쟁에 나선다”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러시아는 이번 침공을 통해 얻는 것이 잃는 것보다 더 크다고 계산했을까. 만약 그것이 러시아 정부의 판단이라면 필자는 그것이 러시아의 오판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미국, 유럽, 일본 등은 대러시아 경제제재에 나섰다. 현실적으로 경제제재만으로 푸틴의 우크라니아 침공을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그러나 미국의 경제제재는 장기적으로 러시아가 상상하는 것 이상의 큰 타격을 줄 가능성이 있다.

일단 미국은 러시아에 대한 반도체 수출을 막았다. 바이든 대통령은 “러시아가 세계경제에 참여할 수 있는 능력을 제한하고, 러시아가 21세기 경제에서 경쟁할 첨단기술 능력을 손상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조치로 미국의 기술력이 사용된 어떠한 반도체도 러시아로 수출이 전면 금지된다. 2020년 미국이 중국의 화웨이라는 일개 기업을 상대로 한 반도체 제재를 이번에는 러시아라는 국가를 상대로 시행하는 것이다. 러시아는 현재 반도체 수입의 70%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지만, 중국의 반도체 회사들도 미국의 원천기술에 의존하고 있는 만큼 러시아는 반도체 수급에 큰 차질을 빚을 것으로 예상된다. 반도체가 인공지능(AI), 5G/6G 이동통신, 슈퍼컴퓨팅, 자율시스템 등 첨단기술의 필수 요소라는 점에서 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러시아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두 번째는 금융제재다. 이미 미국, 유럽연합(EU), 일본의 금융제재를 받는 러시아 은행들의 금융자산을 더하면 전체 러시아 금융자산의 약 80%에 달한다. 26일 부분적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 결제망 배제도 합의되었다. 아직 제재를 받지 않는 300여 개의 은행이 남아 있지만, 며칠 사이 신중했던 독일이 태도를 바꾸는 등 러시아의 전면적 SWIFT 배제 가능성도 있다. 러시아의 1일 외환거래의 80%가 달러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전면적 SWIFT 배제는 러시아에 막대한 타격을 안길 것이다. 이미 8%에 달하는 인플레이션율도 루블화의 폭락으로 더욱 심각해질 가능성이 크다. 2012년과 2018년 핵개발로 인해 SWIFT 배제를 당했던 이란의 경우 인플레이션, 수출 급감, 마이너스 성장으로 고초를 겪은 바 있다.

2014년 헨리 키신저는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는 국제문제에 있어 핀란드와 같은 입장을 취해야 하며, 서방과의 협력은 중요하지만 러시아를 제도적으로 적대시하는 것은 피해야 할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작은 국가가 자주 독립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주변에 있는 큰 나라를 건드리지 않는 대외정책을 펴야 한다는 핀란드화(Finlandization)의 충고였다.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로 한반도의 ‘핀란드화’에 대한 논의도 재점화될 것으로 보인다.

25일 청와대가 뒤늦게 러시아 제재에 나선 이유로 러시아 주재 교민과 교역 확대 등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우리 헌법은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이 국제평화를 유지하고 침략전쟁을 부인하는 국가로 명시하고 있다.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는 무엇이며 원칙은 무엇인지 되돌아볼 때다.

현실은 냉엄하다. 미국은 24일 대러시아 경제제재를 내리면서 이례적으로 대러시아 제재에 즉각적 의사를 밝힌 국가들의 경우 미국의 대러시아 제재 적용에 예외로 분류했다. 호주, 일본, 독일, 프랑스, 영국 등과 함께 중립국인 핀란드, 스웨덴, 오스트리아 등 35개 국가가 포함되었다. 대한민국은 리스트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국가이익에는 현재 이익과 미래 이익이 존재한다. 미래 세대를 위해서라도 국격에 맞는 행동에 나섰다면 좋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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