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금 못 받고, 선적 못한 물건 재고로...러시아 제재에 中企 ‘비명’

입력 2022-03-06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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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에 플라스틱을 수출하는 A기업은 대금 지급이 이뤄지면 물건을 선적하는 선결제 방식으로 거래를 해왔다. 그러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서방 국가들이 러시아에 경제 제재를 가하면서 대금 결제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선적은 중단됐고, 이미 생산한 수출품은 모두 재고로 떠안게 돼 자금 운용이 어려워졌다.

#B기업은 A기업과 반대로 선적 후 대금을 받는 후결제 시스템으로 러시아 업체와 거래를 해왔는데, 선적을 하고도 대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세계 각국이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를 가하면서 국내 중소기업들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자금 운용에 여유가 없는 중소기업들은 현 사태가 장기화하면 대금 회수가 막혀 유동성이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에 노심초사 하고 있다.

6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대금 결제 문제 등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 각 기관이 접수한 기업 애로는 지난 3일 기준 668건에 달한다. 산업통상자원부의 러시아 데스크가 232건(수출통제), 코트라와 한국무역협회가 377건(무역투자 등), 비상금융애로센터(금융제재)는 59건을 접수했다.

이들 애로사항에선 중소기업의 민원이 대부분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방 주요국이 러시아 은행들을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에서 퇴출하기로 한 지난주 급격하게 늘었다.스위프트는 해외 금융기관을 연결하는 일종의 통신망인데, 이번에 배제된 은행을 통해 거래를 해온 경우 달러 결제가 불가능하다. 여기다 루블화 가치 폭락으로 러시아 기업들이 대금 지급을 미루거나 거부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중기업계 관계자는 “대기업과 달리 중소기업은 현금흐름이 원활하지 않아 대금을 제때 받지 못하면 자금난에 직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의 대(對)러시아 수출액은 27억5000만 달러로 전체의 2.8% 수준이다. 러시아는 중소기업 10대 수출국(작년 기준 10위) 중 한 곳이다. 자동차(중고차) 수출 비중이 24.4%로 가장 높고, 화장품(9.9%), 철강판(5.1%), 자동차부품(4.7%), 플라스틱(3.8%) 등이 뒤를 잇는다. 그러나 이번 사태로 중소기업의 대 러시아 수출액 감소는 불가피해 보인다.

앞서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강제 합병 사태로 세계 각국이 러시아에 경제제재를 가하면서 이듬해 국내 기업의 대 러시아 수출액은 101억 달러에서 47억 달러로 반토막이 났다. 자동차부품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업계 3위 수출국인 러시아에 과거 이란과 같은 수준의 제재가 가해지면 현대차와 러시아에 동반진출한 협력업체들은 수출 감소와 루블화 결제에 따른 환차손 피해가 예상된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러시아의 스위프트 복귀가 언제쯤 가능할 지 예측이 어렵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전쟁이 단기에 끝난다고 해도 금융제재는 쉽게 풀리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체력이 약한 중소기업들은 제재가 길어질수록 충격파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중소벤처기업부 관계자는 “금융제재가 3달 가면 파급은 6개월, 6개월 안팎으로 지속되면 파급력은 1년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번 사태로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서며 폭등하는 점도 우려를 키운다. 플라스틱의 원재료인 합성수지의 가격이 유가 급등으로 크게 뛰고 있는 데다 수급 마저 원활하지 않다고 업계는 호소하고 있다. 양순정 한국플라스틱산업협동조합 상무는 “플라스틱 제품 생산의 경우 생산비의 83%를 원료비가 차지한다”며 “원료비가 경영을 좌지우지한다는 점에서 심각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사태가 장기화 할 경우 경제 충격이 전방위로 확산할 수 있는 만큼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홍운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글로벌 경제 여건과 맞물려 파급효과가 예전에 비해 클 가능성이 높다”며 “환율변동에 따른 손해를 구제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대금 우회결제에 대한 비용을 지원하는 등 신속한 집행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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