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디폴트(채무 불이행) 우려가 커지고 있다. 러시아의 국가 부도를 의미한다. 한국의 대(對) 러시아 신용위험노출액(익스포저)은 크지 않지만, 디폴트 선언에 따라 익스포저 규모가 큰 국가들이 영향을 받을 경우 우리나라도 악영향을 받을 수 있다.
세계 3대 신용평가사 중 하나인 무디스는 3일 이후 사흘 사이에 러시아의 신용등급을 10계단이나 강등해 'Ca' 등급으로 낮췄다. 무디스 평가 체계상 Ca 등급 밑으로는 통상 파산 상태를 의미하는 'C' 등급만 있다. 무디스는 러시아의 디폴트 위험이 증가했다면서 "러시아가 채무를 상환할 능력과 의지가 있는지를 둘러싸고 심각한 우려가 나와 이러한 강등 결정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국책연구기관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도 러시아가 디폴트를 선언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놨다. 정민현 KIEP 부연구위원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러시아의 스위프트(SWIFT) 배제, 자산 운용 경직성 심화로 충분한 재정 여력과 외환보유고에도 불구하고 디폴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러시아는 이달 7억 달러 규모의 국채가 만기를 맞지만, 전방위적인 금융제재로 상환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KIEP에 따르면, 러시아 외환보유액의 60% 이상인 약 4000억 달러가 금융제재에 동참한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등 해외 금융기관에 예치돼 있다. 1년 안에 만기 예정인 국채, 회사채 미상환 채무 규모는 약 1400억 달러 수준이다.
러시아 디폴트가 현실화하더라도 당장 한국 경제에 미치는 직접적인 타격은 미미할 것으로 예측된다. 정부에 따르면, 국내 금융회사의 대 러시아 익스포저는 작년 말 14억7000만 달러로 전체 대외 익스포저의 0.4% 수준에 불과했다. 그마저도 올해 2월에는 11억7000만 달러로 감소했다.
다만, 대 러시아 익스포저가 큰 국가들이 디폴트로 인한 충격을 받을 경우엔 연쇄 효과로 인해 우리나라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정민현 부연구위원은 "디폴트가 실제로 발생할 경우에 익스포저가 큰 국가들을 중심으로 부정적인 충격이 글로벌 자본 시장에 파급되는 것은 당연하다"며 "우리나라의 직접적인 노출도는 낮지만, 디폴트에 따른 연쇄적인 파급 효과는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도 7일 발표한 '경제동향 3월호'에서 "최근 우리 경제는 코로나19 확산에도 완만한 경기 회복세를 유지하고 있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에 따른 대외 여건 악화로 경기 불확실성이 크게 확대되는 모습"이라고 진단했다.
KDI는 "서비스업이 다소 둔화됐지만, 제조업이 양호한 증가세를 지속하고 건설업도 부진이 완화되면서 경기 회복세가 유지됐다"며 "자동차가 부품 수급 차질 등에 따라 부진함에도 불구하고, 반도체가 높은 증가세를 보이며 제조업의 개선을 견인했다"고 밝혔다.
다만 "지정학적 위험에 주로 기인해 대내외 금융시장이 불안정해지고 원자재가격도 급등함에 따라 경기 불확실성이 확대됐다"며 "우크라이나 사태 발발로 인해 주요국의 주가가 하락하는 등 금융시장이 불안정한 흐름을 보였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국제유가를 비롯한 주요 원자재가격이 수급 불안에 대한 우려로 급등하면서 우리 경제에 경기 하방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