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억의 유러피언 드림] 18. 유럽을 뭉치게 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입력 2022-03-1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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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 수용·군사 원조…외부 위기가 유럽통합 촉진

▲대구대 국제관계학과 교수·팟캐스팅 안쌤의유로톡 운영자
▲대구대 국제관계학과 교수·팟캐스팅 안쌤의유로톡 운영자

지난달 27일 일요일. 독일 베를린에서 연방하원이 특별 회기를 가졌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대응을 토론한 자리에서 폭탄 선언이 나왔다. 올라프 숄츠 총리는 올해 1000억 유로, 약 135조 원의 국방비 증액을 발표했다. 또 우크라이나에 500기의 지대공 스팅어 미사일과 1000기의 대전차 미사일을 지원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앞서 노르트스트림 2(Nordstream 2), 러시아산 북해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가동을 불허했다. 그동안 독일의 대러시아 유화정책으로 비판받아 온 정책이 모조리 번복됐다.

‘탈냉전 후 독일 외교안보정책의 가장 큰 변화이다’

지난달 이 난(‘유러피언 드림’ 17. 독일, 우크라이나 위기에 왜 주저하나 / 2월 10일 자)에서 필자는 독일이 국제 정세 및 여론 변화에 따라 대러시아 유화정책을 바꿀 것으로 전망했다. 이런 예상이 적중했다. 신호등 연정에 속한 녹색당은 대표적인 평화주의자들인데도 말이다. 제1당이자 집권 여당인 사회민주당도 침략 이전까지 국방예산 증액에 소극적이었다. 그런데 올해 1000억 유로의 국방비 증액을 발표했고 2025년까지 국내총생산 대비 국방비 2% 목표를 달성하겠다고 공약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들은 2%를 준수하기로 공약했다. 따라서 1990년 냉전 붕괴 후 독일 외교안보정책의 가장 큰 전환점이라는 평가가 정확하다.

유럽연합(EU) 최대의 경제대국 독일이 경제력에 걸맞은 외교와 안보정책의 역할을 떠맡게 됐다. 마찬가지로 EU도 러시아의 침략에 적극 대응하며 외교안보정책 분야에서도 통합을 더 앞당기려 한다.

EU, 지정학적 안보 행위자로 국제사회에 각인 중

지난달 말 EU는 우크라이나에 5억 유로의 무기와 원조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지극히 당연한 조치인 듯하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했고 많은 피란민들이 폴란드 및 헝가리, 독일 등 EU 회원국으로 쉴 새 없이 밀려 들어온다. EU 자체의 안보도 위협을 받고 있기 때문에 친서방 및 친EU 정책을 펼쳐 온 우크라이나를 지원해야 한다.

그러나 EU 예산은 국방 및 안보 함의를 지닌 지원을 금지한다. 즉 27개 EU 회원국 외무장관들이 수차례 회동을 갖고 러시아의 침략에 맞서 결사항전 중인 우크라이나를 돕기 위해 예외에 합의했기에 무기 지원이 가능해졌다. EU 역사상 처음이다. EU는 전투기와 각종 무기를 구매해 우크라이나에 지원하려 한다. 27개국이 대러시아 강경제재에 합의해 시행 중이다. 러시아 중앙은행 및 주요 은행을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결제망에서 배제했고 푸틴과 라브로프 외무장관도 제재했다.

호세프 보렐 EU 외교·안보 정책 고위대표는 EU의 이런 외교안보적 행보를 ‘지정학적 각성’으로 규정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이 EU 차원의 외교안보정책에 촉진제가 됐다. 이를 계기로 EU는 단순한 경제블록이 아니라 국제안보에서도 나름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행위자라는 위상을 강력하게 각인시키려 한다. 탈냉전이 시작된 1990년대 초반부터 EU는 공동외교안보정책을 꾸준하게 강화해 왔다.

EU의 이런 역할 변화는 우크라이나 침략 이전에는 거의 상상조차 어려웠다. 그만큼 외부의 위기가 통합을 촉진한다. 코로나19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EU가 2020년 7월 7500억 유로의 유럽경제회생기금(ERF)에 합의한 것과 유사하다. ERF는 규모뿐만 아니라 EU가 국제자금시장에서 유로화 단일 채권을 발행해 EU의 재정통합을 앞당겼다. 그럼에도 이번 침략 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EU의 단일대오에 균열이 생길 우려는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12일째인 7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접경인 루마니아 동북부 도시 시레트에서 눈발이 날리는 가운데 한 소방대원이 우크라이나에서 피란 온 아기를 품에 안고 있다.    시레트(루마니아)/AP연합뉴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12일째인 7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접경인 루마니아 동북부 도시 시레트에서 눈발이 날리는 가운데 한 소방대원이 우크라이나에서 피란 온 아기를 품에 안고 있다. 시레트(루마니아)/AP연합뉴스

EU, 피란민 보호 등 과제 산적, 제재 장기화하면 균열 발생도 우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2주가 지난 현재 170만 명이 훨씬 넘는 우크라이나 피란민이 발생했다. 국경을 맞댄 폴란드가 이들을 대거 수용 중이다. 인근의 헝가리나 루마니아, 독일 등도 마찬가지다.

EU는 피란민들에게 임시보호 지위를 주기로 신속하게 합의했다. 피란민들은 3년간 체류할 수 있으며 사회복지 등 각종 혜택을 지원받는다. 일단 침략전쟁 초기이기에 EU의 강경대응 정책이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EU의 제재가 회원국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크게 끼칠 경우 회원국 간에 이견이 노출될 수 있다. EU 회원국들은 천연가스의 30% 정도를 러시아에 의존한다. 러시아의 국영가스회사 등도 EU와 미국의 제재를 받고 있기 때문에 가스 가격이 크게 오른다. 제제가 계속될수록 일부 회원국들은 경제적 악영향을 이유로 제재 완화 등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야심 찬 EU의 군사 지원도 일부 난관에 봉착했다. 전투기 등을 구매해 우크라이나에 제공하기로 했지만 누가 이 전투기를 우크라이나에 인도해 줄 것인가가 쉽지 않다. 일부 회원국 조종사들이 전투기를 우크라이나에 인도해 주는 문제를 논의했으나 채택되지 못했다. 5일 나토는 우크라이나 상공에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해 달라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요구를 수용하지 못했다. 러시아 전투기가 이 지역에 들어올 경우 나토 회원국 전투기가 이를 격추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러시아와 나토가 전쟁을 벌이게 된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침략 이전부터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군을 파견하지 않을 것이라고 수차례 강조했다. 러시아와 나토, 즉 미국이나 독일, 영국 등의 나토 회원국들이 직접 교전하면 우크라이나 전쟁이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고 3차 세계대전으로 비화할 수 있다. 최악의 시나리오이다. 아무도 이를 원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우크라이나 전쟁을 하루빨리 외교적으로 해결해야 하는데 이게 난제이다.

우크라이나가 요청한 EU 신속 가입도 거의 불가능하다. 가입에는 최소 몇 년이 걸리고 정치와 경제 등 여러 가입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EU는 경제적·군사적으로 우크라이나를 계속해서 지원할 뿐이다.

우크라이나인과 시리아인을 차별 대우하는 이중성

피란민 보호에서 폴란드의 역할이 그 어느 회원국보다 두드러진다. 지금까지 폴란드는 100만 명이 넘는 우크라이나 피란민을 수용했다. 우크라이나 서부의 대도시 리비프는 이전에 폴란드의 영토이었다가 우크라이나에 귀속되었다. 폴란드 국민 가운데 우크라이나인의 비율은 전체 인구의 16% 정도로 추정된다. 이 정도로 양국은 역사적으로 밀접하다. 단순히 이웃나라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깊은 역사적 관계 때문에 폴란드는 형제자매처럼 우크라이나 난민을 대우한다. 이웃 헝가리도 피란민을 꽤 많이 수용했다.

그럼에도 유럽통합 연구자로서 일말의 씁쓸함을 느낀다. 2015년 후반기 시리아와 에리트레아,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이 유럽에 대거 몰려왔을 때의 대응과 지금의 대응이 너무 극과 극이다. 당시 독일은 100만 명 정도의 난민(신청자)을 수용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국경을 개방해 이들을 환영했다. EU는 당시 약 16만 명의 난민 신청자를 회원국의 경제력과 인구 등에 비례해 의무할당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폴란드와 헝가리는 단 한 명의 난민 신청자도 받지 않았다. 양국의 포퓰리스트 민족주의 정부는 기독교 문명을 수호한다거나, EU의 강압을 수용하지 않겠다는 등의 각종 이유를 들어 끝까지 거부했다.

당시 시리아인들도 아사드 독재정권의 탄압과 3년 넘게 지속된 전쟁을 피해 자유를 찾아 유럽으로 건너왔다. 그런데 폴란드와 헝가리는 이들이 이슬람인이고 이슬람은 유럽이 아니라며 EU 법을 위반했다.

역사적 상황과 관계는 다르다. 그러나 같은 난민 신청자이고 전쟁을 피해 왔다. 폴란드와 우크라이나는 역사적·인종적으로 관계가 깊고 이번 침략이 유럽 안보에 직접 위협이 된다는 차이점이 있다. 그러나 가치공동체이고 보편적 인권을 내세우는 EU 회원국 폴란드와 헝가리가 난민 수용을 이처럼 임의적으로 차별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연구자로서 크게 실망했고 계속해서 연구할 주제다.

팟캐스트 ‘안쌤의 유로톡’ 제작·진행자, ‘하룻밤에 읽는 영국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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