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채운의 혁신성장 이야기] 정피아의 추억

입력 2022-03-1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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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 경영학과 교수

대선이 끝나고 승자와 패자가 갈리었다. 선거는 승자독식의 제로섬 게임으로 그 결과는 처절하고 냉정하다. 승자는 대권을 거머쥐며 전부를 차지하지만, 패자는 상처만 안고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선거 결과에 따라 후보 당사자뿐 아니라 각 진영에 속한 인물들의 운명도 극명하게 대조된다.

이제 대선 이후에 여러 일이 벌어질 것이며 어떤 변화가 나타날지 예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지금까지 변함없고 앞으로 분명히 나타날 사실이 하나 있다. 바로 정피아 군단이 몰려온다는 것이다. 선거에 참여하고 승리에 기여한 공신들에게 논공행상이 이루어지면 이들이 정부 부처와 공공기관의 자리를 차지하러 쏟아져 올 것이다. 그러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벌써 눈에 선하다.

이전에 공공기관에서 일할 때 만난 정치인 출신 임원들이 기억난다. 당시에 기관의 감사는 전직 비례대표 국회의원 출신이었는데 오로지 관심 있는 것은 본인에 대한 예우뿐이었다. 관용차 등급을 올려달라, 사무실에 전용 화장실을 넣어달라 등등의 요구를 끊임없이 해대며 직원들을 괴롭혔다. 규정이나 지침 때문에 본인의 요구가 통하지 않으면 기관장에게까지 찾아와 직접 요구하였다. 감사가 면담 신청했다고 하면 또 무슨 요구를 하여 귀찮게 할까 걱정부터 앞섰다.

문제는 개인적인 혜택을 요구하는 것을 넘어 외부 청탁을 끌고 들어오는 것이었다. 직원들의 부패와 비리를 방지할 책임이 있는 감사가 청탁 창구로 전락하니 한심한 노릇이었다.

비상임 이사들도 정당에 기웃대며 연줄을 댄 정치권 출신이 다수를 차지하였다. 주로 대선 캠프와 지역구에 관여했거나 여당의 당직자나 친여 단체 회원으로 활동하다 한 자리를 얻어 온 것이었다. 정치권 몫으로 배정된 비상임 이사 자리는 기관장도 선임하지 못했다. 모두 최고 권력기관에서 결정해 내려오는 것이었다. 일반 공모는 형식적이었고, 실제로는 정치 권력이 내정했다.

이렇게 임명된 이들의 경력은 길고 화려했지만, 직업은 불분명하였다. 일해서 돈 벌어본 경험이 별로 없었다. 그러다 보니 비상임 이사직을 마치 본업처럼 여기기도 하였다. 이사회를 매달 개최하는데 한 번이라도 건너뛰면 서운해하였다. 회의비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어느 비상임 이사는 임기 동안에 기관의 배지를 하도 달고 다녀 닳기까지 하였다고 자랑했다. 공공기관의 이사라고 얼마나 뻐기고 다녔을까 상상이 갔다. 이런 비상임 이사가 현장 방문한다고 지역 본부를 다니며 직원들에게 대접받고 민원인들과 어울리며 부탁을 물어오기도 하였다. 이들 중 가장 잇속을 밝힌 비상임 이사는 임기 후에 다른 기관의 감사로 옮겨 갔다.

정치권 출신의 감사와 비상임 이사들이 뭉쳐 작은 ‘마피아’를 구성해 힘을 발휘하였다. 이사회를 하면 회의 전에 비상임 이사들이 감사의 방에 먼저 모여 작전회의를 하곤 했다. 이사회에서 감사가 먼저 운을 떼면 정피아 출신의 비상임 이사들이 목소리 높여 한편을 들었다. 감사의 요구나 비상임 이사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을 경우 이사회에서 사소한 트집을 잡아 애를 먹이며 안건 심의를 힘들게 하였다.

그래도 감사나 비상임 이사 정도가 정피아인 것은 약과이다. 기관장이 정피아이면 끝장이다. 기관의 운영이 파행으로 치닫다 막장에 이른다. 지역구 국회의원 출신의 어느 기관장은 취임사에서부터 지역색을 거론하며 직원들을 갈라치기하였다. 인사권을 쥐고 흔들며 지연과 학연을 노골적으로 내세우고 내 편 네 편을 나누었다. 심지어 부서장을 1년에 서너 차례씩 바꾸며 정신을 빼놓았다. 정기 인사가 아닌데도 수시로 부서장을 바꾸는 이유는 본인의 힘을 최대한 보여주어 직원들을 긴장시켜 굴복시키기 위함이었다. 그러면 기관장이 어떤 지시를 내려도 직원들이 규정과 원칙을 들먹이며 거부하는 일이 없어지는 것이었다. 그분의 유일한 관심사는 다시 지역구로 복귀해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는 것이었고 기관의 운영은 거기에 초점을 맞추어 이루어졌다.

정피아들을 직접 경험하며 몇 가지 공통점을 찾아볼 수 있었다. 우선, 이들은 기관의 사업이나 직원의 복지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본인 자신의 이권과 이해를 가장 우선시하며 직위에 있는 동안 최대한의 이득을 챙기려 한다. 이들에게 공직은 전리품이고 직원들은 노획물이다. 업무에 관한 의사결정은 오로지 본인의 정치적 입지에 도움이 되느냐 아니냐가 유일한 기준이다.

정피아의 또 다른 특징은 외부의 청탁에 무력하다는 것이다. 아니 오히려 능동적으로 청탁을 받고 환영한다. 왜냐하면 본인이 그 자리에 오기 위해 신세 진 것을 갚아야 하고 연고를 튼튼히 하여 연임을 하거나 다음 자리로 옮겨 가야 하기 때문이다.

정피아의 성향과 행태는 다 똑같다. 진보건 보수건 여당이건 야당이건 하나도 다르지 않다. 이권을 노리는 자들은 철학과 이념을 가리지 않으며 어디에 붙어 꿀을 빨아야 할지만을 따진다.

대선은 이런 기회주의자들에게 가장 큰 장이 서는 대사이다. 이제 승자 편에 선 정피아들은 벌써부터 어디에 가서 빨대를 꽂을지 물색하고 있을 것이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자리가 수천 개에 이르니 새로운 정피아가 수천 명 배출될 것이 예상된다. 어떤 정당이 집권하고 누가 대통령이 되건 이런 폐단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이런 게 진짜 적폐이고 국정농단이다. 어느 정부건 가장 큰 패착은 인사 실패에 있다. 정책 실패로 민생을 어렵게 만든 것보다 인사를 잘못해 원성을 사면서 인심을 잃는다. 파렴치한 정피아들이 5년 동안 공공기관마다 헤집고 다니며 정부에 욕을 먹이면 정권 교체 바람이 불게 되는 것이다. 정피아 낙하산을 한번 경험하고 시달려 보면 정권 욕하는 심정을 이해한다. 참으로 언제나 이런 낙하산 인사의 고리가 끊어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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