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코노미] ‘영부인의 이름으로’...3인3색 美대통령 아내 이야기 ‘퍼스트레이디’

입력 2022-03-11 15:12 수정 2022-03-11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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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코노미는 넷플릭스와 왓챠 등 OTT(Over The Top) 서비스에 있는 콘텐츠를 통해 경제와 사회를 바라봅니다. 영화, 드라마, TV 쇼 등 여러 장르의 트렌디한 콘텐츠를 보며 어려운 경제를 재미있게 풀어내겠습니다.

한국 20대 대통령 선거 캠페인 내내 개인적 스캔들로 잠행을 이어온 윤석열 당선인의 배우자 김건희 씨. 3월 9일 대선에서 남편이 당선되자 ‘유세 한번 안 하고 퍼스트레이디가 됐다’는 말이 나옵니다.

김 씨, 아니 이제 김 여사라고 해야죠? 김 여사는 최근 한 언론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대통령 배우자로서 내조에만 전념하겠다며 일체의 정치적 의미가 담긴 발언도 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대통령의 아내를 의미하는 ‘영부인(퍼스트레이디)’이라는 호칭도 안 쓰고 ‘대통령 배우자’로 불러달라고 합니다.

반평생을 예술과 예술품 전시 사업에 쏟아온 김 여사가 자신의 경력을 잠시 내려놓고 남편의 내조에만 전념하겠다는 것인데요. ‘성공한 남성의 아내는 안에서 뒷바라지를 잘 해야 한다’는 우리의 사회적 통념에 따르는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김 여사의 경우는 대선 내내 남편의 발목을 붙잡았던, 자신을 둘러싼 논란들을 아예 차단하려는 의도도 있겠지요.

하지만, 모든 퍼스트레이디들이 다 ‘그림자 내조’를 한 건 아닙니다. 내조에도 다양한 모습이 있습니다. 세계 최고 경제대국 미국만 보더라도 ‘퍼스트레이디’로서 여느 여장부 못지 않게 활약했던 이들이 있습니다. 누군지 짐작이 갈 것입니다.

단지 대통령의 배우자로 남을 것인지, 새 정부의 영부인으로서 새로운 역사를 써나갈 것인지 생각해봄직 합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부인 김건희씨.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부인 김건희씨. 연합뉴스
미국 케이블TV 쇼타임은 내달 17일 새 시리즈 ‘퍼스트레이디(Firtst Lady)’를 방영합니다. 보통, 대통령이 등장하는 드라마는 대통령이 주인공이지만, 이 드라마는 대통령 뒤의 숨은 권력자 퍼스트레이디 3명이 주인공입니다. 미국 44대 대통령을 지낸 버락 오바마의 부인 미셸 오바마(배우는 비올라 데이비스), 38대 대통령 제럴드 포드의 부인 베티 포드(미셸 파이퍼), 32대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부인 엘러너 루스벨트(질리언 앤더슨).

드라마는 ‘FLOTUS(First Lady of The United States)’란 타이틀을 가진 이 세 여성의 렌즈로 미국 리더십을 재조명합니다. 이들이 FLOTUS 활동을 통해 얻은 정치 경력과 미국과 세계에 미친 영향, 성취까지요.

◇‘엄마 대장에서 국모로’ 미셸 오바마

▲미셸 오바마 전 미국 영부인이 2020년 8월 17일(현지시간) 민주당 전당대회 기간 화상으로 조 바이든 대선 후보 지지 연설을 하고 있다. AP뉴시스
▲미셸 오바마 전 미국 영부인이 2020년 8월 17일(현지시간) 민주당 전당대회 기간 화상으로 조 바이든 대선 후보 지지 연설을 하고 있다. AP뉴시스
드라마 속 세 영부인 중 가장 최신은 2009년부터 2017년까지 영부인이었던 미셸 오바마입니다. 그는 2018년 회고록 ‘비커밍(Becoming)’을 출간하는 등 남편의 퇴임 후에도 활발한 활동을 하며 대선 후보 물망에도 올랐었죠.

오바마 부부는 역대 미국 대통령 중 최연소인 40대 때 백악관에 입성했습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백악관 입성 전 ‘엘리트 흑인 여성’으로 왕성한 정치·사회 활동을 했던 미셸 오바마에 회의적인 시선을 보냈습니다. 프린스턴대와 하버드대 로스쿨 출신의 미셸 오바마가 대통령 남편 일에 너무 나댄다는 것이었죠. 진보 성향 언론인 뉴욕타임스(NYT)조차 ‘엄마 대장이 정책에 손댄다(Mom in Chief’ Touches on Policy)’는 기사를 내보낼 정도였습니다.

이런 비판적 여론이 고조되자 미셸 오바마는 진짜 ‘국모’의 모습으로 변신했습니다. 소녀들이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한 ‘렛 걸스 런(Let Girls Learn)’, 군인 가족들을 돕는 ‘조인팅 포스(Jointing Force)’ 캠페인이 그녀의 작품이었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많은 호응을 받은 건 ‘렛츠 무브(Let’s Move)’입니다. ‘아동 비만 퇴치’와 ‘급식 개혁’을 표방한 이 캠페인을 위해 미셸 오바마는 유기농 채소를 기른다며 백악관 텃밭을 가꾸는가 하면 코미디쇼에 나가 ‘아이 건강을 위해 함께 추는 엄마 댄스’라는 코믹 춤을 선보이는 등 망가진 모습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이 캠페인은 미국에서 먹거리에 대한 중요한 변화를 일으켰습니다.

◇‘행동하는 용기’ 베티 포드

▲제럴드 포드 전 미국 대통령의 부인 베티 포드 여사. AP뉴시스
▲제럴드 포드 전 미국 대통령의 부인 베티 포드 여사. AP뉴시스
리처드 닉슨(37대) 정권에서 부통령이었던 제럴드 포드는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닉슨이 사임하자 대통령직을 승계하며 그야말로 ‘어쩌다 대통령’이 된 케이스였습니다. 부인 베티 포드도 ‘어쩌다 영부인’이 됐지요.

나중에 베티의 사후 NYT는 부음 기사에서 “베티는 가식 없는 솔직함으로 지금까지 존경받는 몇 안되는 퍼스트레이디에 손꼽히게 됐다”고 평가했습니다.

실제로 베티 포드는 미국에서 문화정치 시대의 상징으로 꼽힙니다. 여성의 평등권을 주장한 그는 마약과 낙태, 혼전 성관계에 대해 소리 높여 고민했던 네 아이의 엄마였습니다. 그는 남편 포드가 대통령에 취임하고 며칠 뒤 유방암 판정을 받았습니다. 당시는 유방암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호의적이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이 사실이 대중에 알려질 경우 백악관 안주인의 부재를 알리는 것과 다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베티 포드는 이를 숨기기보다 오히려 자신의 가슴 절제술 사실을 알리고 기자들을 병원으로 불러 사진을 찍고 인터뷰까지 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유방암은 감춰야 할 치부가 아니지만, 당시에는 유방암으로 여성이 사망하면 부고란에 ‘장기 질환’, ‘여성 질환’ 같은 병명으로 게재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유방암 투병 사실을 공개한 베티 포드의 행동은 매우 용기 있는 행동이었고, 더 나아가 유방암 연구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1987년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에 따르면 당시 포드의 쾌유를 바라는 카드 5만5800통이 배달됐습니다.

◇‘가장 위대한 영부인’ 엘러너 루스벨트

구글에서 ‘위대한 미국인(Greatest Americans)’을 검색하면 리스트 상위에 미국 최장수 영부인 ‘엘러너 루스벨트’가 있습니다. 남편 프랭클린 루스벨트야 당연하다 싶지만, 부인이 상위에 랭크된 건 좀 의외네요.

하지만, 그런 만큼 그는 특별한 사람이었습니다. 남편이 미국 대통령 자리에 있는 동안 엘러너 루스벨트는 ‘영부인’의 역사를 새로 썼습니다.

프랭클린 부부는 1933년부터 1945년까지 12년 간 백악관에 살았습니다. 당시는 대공황과 뉴딜, 2차 세계대전 등 미국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였지요.

엘러너는 사회운동가와 정치가로서 미국과 세계 무대에서 매우 영향력 있는 인물로 활약했습니다. 칼럼니스트로서 신문에 연재(MY DAY)하였고, 라디오와 TV에도 자주 등장했습니다. 또 소외된 소수 민족들을 위한 인권 투쟁을 벌이기도 했고, 2차 세계 대전 중 미군을 위문하느라 전 세계를 순회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NYT는 “그녀는 미국에서 가장 근심 많은 여성으로서 따스함, 성실함, 열정, 인내심을 미국 땅 구석구석, 그리고 전 세계에 가져왔다”고 했습니다.

엘러너 루스벨트의 진정한 영향력은 남편 사후에 나왔습니다. 그는 1945년 유엔 총회의 첫 미국 대표로 임명됐는데, 1953년까지 활동하면서 유엔인권이사회 초대 의장으로서 세계인권선언을 쓰는 데 기여했습니다. 이런 공로를 인정해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1961년 그를 유엔의 미국 사절단으로 다시 임명하는 등 그녀의 헌신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습니다.

그녀는 내조의 여왕이기도 했습니다. 남편을 위해 전면에 나서기도 했지만, 때로는 남편의 비공식 사절이기도 했습니다. 일례로, 루스벨트 대통령이 부인이 케이프코드로 여행을 간다고 했는데, 사실은 뉴펀들랜드에서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를 만났다고 합니다.

NYT는 엘러너 루스벨트에 대해 “그녀는 세계에서 여성들이 해야 할 새로운 롤모델이었다”며 “특히 세계의 소수민족을 위해 일한 결과, 이 존경심은 국경을 초월해 사실상 전 세계로 퍼졌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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