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크래커] 푸틴이 친 ‘철의 장막’...‘황금아치’ 이론도 무너졌다

입력 2022-03-16 14:51 수정 2022-03-16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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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10월 동서 독일이 통일되면서 사라졌던 ‘철의 장막’이란 표현이 부활했다. 철의 장막이란, 냉전 시대에 유럽의 분단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표현이었으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되살아났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러시아는 다시 철의 장막 너머로’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고, 미국 공영 라디오 방송 NPR는 ‘맥도날드 등의 기업이 제휴를 해소하며 러시아에 경제적 철의 장막이 내려졌다’고 했다. 미국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는 ‘새로운 철의 장막? 러시아의 침공은 세계를 어떻게 바꾸는가’라는 기사에서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푸틴의 고립이 깊어지게 됐다고 했다.

◇다시 ‘철의 장막’ 안에 갇힌 러시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15일 한 소년이 문닫힌 맥도날드 매장 창문에 붙은 ‘전쟁금지’ 메모를 읽고 있다. AP연합뉴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15일 한 소년이 문닫힌 맥도날드 매장 창문에 붙은 ‘전쟁금지’ 메모를 읽고 있다. AP연합뉴스
러시아 내 지식인과 서방의 정보에 정통한 러시아인들은 “그동안 러시아에 있던 자유주의가 막을 내리고, 자신들이 철의 장막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고 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의 자체 조사에 따르면 러시아 국내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지지자는 58%로 반대편의 23%를 크게 웃돌았다. 다만 러시아에서 맥도날드와 스타벅스가 철수하고, 월트디즈니가 러시아에서 모든 사업을 중단함으로써 일반 시민이 철의 장막에 의해 큰 영향을 받게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동영상 공유 사이트 틱톡은 동영상 업로드를 중단하고, 일부 슈퍼마켓에서는 밀가루와 설탕 구입량을 제한하기 시작했다. 세계적인 회계법인 KPMG와 PWC(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도 러시아에서 철수하겠다고 밝혔고 미국 대형 신용카드회사 비자와 마스터카드도 카드결제 사업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동안 러시아 정부의 언론 통제로 우크라이나 상황을 전혀 알지 못했던 러시아인들도 이쯤 되면 이상 기류를 감지했을 것이다. 특히 맥도날드의 철수가 가장 뼈아플 것이다.

◇라스트 콘서트

▲맥도날드가 러시아 매장을 폐쇄하기 전 온라인에 올라온 맥도날드 햄버거 가격들. 출처 : 온라인 커뮤니티
▲맥도날드가 러시아 매장을 폐쇄하기 전 온라인에 올라온 맥도날드 햄버거 가격들. 출처 : 온라인 커뮤니티
맥도날드는 13일을 끝으로 러시아 사업을 잠정 중단했다. 소련 시절인 1990년부터 운영하던 러시아 내 850개 매장 전부를 일시 폐쇄한 것이다. 영업 마지막 날인 13일 일부 맥도날드 매장에서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정장을 한 손님들이 테이블보를 깔고 포크와 나이프로 와인을 곁들인 햄버거 정찬을 즐기는 모습이 인터넷을 타고 번졌다.

14일에는 모스크바에서 한 남성이 푸쉬킨광장에 있는 맥도날드 매장에서 쇠사슬로 매장문과 자신을 연결한 채 “맥도날드를 폐쇄하는 건 나와 내 친구들에 대한 적대 행위”라며 폐쇄에 대한 항의 시위를 벌였다. 알고 보니 그는 러시아 유명 화가 니카스 사프로노프의 아들이자 피아니스트인 루카 사프로노프였다.

맥도날드가 러시아에서 철수를 발표하자마자 버거 사재기도 일었다. 많이 사다가 냉동 보관해놓고 먹으려 매장마다 대기줄이 장사진을 이뤘다. 가격도 치솟았다. 사다가 바로 냉동시킨 치즈버거는 개당 1000루블(약 1만1330원)에서부터 심하면 250만 루블(약 2832만 원)까지 다양한 가격에 팔렸다.

◇러시아인들에게 맥도날드란

▲1990년 1월 30일 모스크바 푸시킨광장에 연 모스크바 최초의 맥도날드 매장앞을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두 달 만에 맥도날드는 모스크바 한복판에 문을 열었다. 그것은 소련에 진출한 최초의 미국 패스트푸드점이었다. AP연합뉴스
▲1990년 1월 30일 모스크바 푸시킨광장에 연 모스크바 최초의 맥도날드 매장앞을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두 달 만에 맥도날드는 모스크바 한복판에 문을 열었다. 그것은 소련에 진출한 최초의 미국 패스트푸드점이었다. AP연합뉴스
러시아인들은 맥도날드가 모스크바 푸쉬킨광장에 처음 문을 열었을 때를 기억한다. 1990년 1월 31일 한겨울이었음에도 사람들이 떼로 몰렸다고 한다. 당시 푸쉬킨광장점은 세계 최대 규모였음에도 손님들로 꽉 찰 정도였다고. 직원 채용에도 2만7000명이 몰렸는데, 그중 약 630명이 뽑혔다. 이들은 매장 문을 열기 한 달 동안 특훈을 받았다. 첫날 3만 명이 매장을 찾았는데, 이는 맥도날드의 개업 첫날 기록으로는 최대였다.

당시 러시아의 레스토랑은 서비스가 형편없었다고 한다. 윌리엄스칼리지의 데라 골드스타인 명예교수는 CNN에 “당시 모스크바에서는 웃는 사람들을 볼 수가 없었다. 무례하고 장소도 지저분했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그러면서 “러시아인들은 맥도날드의 황금아치와 상냥하고 친절한 직원들에 열광했다”며 “맥도날드는 미국식 햄버거를 파는 곳 이상이었다”고 회상했다.

당시 러시아어를 배우기 위해 모스크바에 자주 갔었다는 크리스티나 프랑크판이라는 영국 여성은 “그때 사람들은 맥도날드의 음식보다는 스티로폼 용기에 더 열광했다”고 했다. 겨울 모스크바는 정말 추운데, 사람들이 맥도날드 포장용기를 집에 가져다가 벽에 붙여 단열재로 썼다는 것이다. 그는 빅맥 상자를 얻으려고 15번이나 줄을 선 적도 있다고 했다.

골드스타인 교수는 “모스크바에 맥도날드가 상륙한 건 빅맥과 감자튀김 그 이상의 의미였다”고 말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공산당 서기장이 무너져 가는 러시아를 국제 사회에 개방하려는 ‘글라스노스트’의 대표적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맥도날드는 전국적으로 영역을 넓혀 매장 수를 지난주 기준 850개까지 늘렸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맥도날드의 러시아 철수는 불가피하게 됐다. 맥도날드가 러시아에 상륙하기까지 14년이 걸렸다는데, 철수하기까지는 한 달도 채 걸리지 않은 것이다.

골드스타인 교수는 “1990년 맥도날드 매장 오픈이 소련의 새로운 시대, 더 큰 자유가 있는 시대의 시작을 상징했다면, 이번 철수는 사업 폐쇄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의 폐쇄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깨진 ‘황금아치 이론’

▲러시아 페테르부르크의 맥도날드 매장 마지막 영업일인 13일 사람들이 햄버거를 사려 줄을 서 있다. AP연합뉴스
▲러시아 페테르부르크의 맥도날드 매장 마지막 영업일인 13일 사람들이 햄버거를 사려 줄을 서 있다. AP연합뉴스
크리스 켐진스키 맥도날드 러시아 최고경영자(CEO)는 8일 성명을 통해 러시아인들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그는 “러시아에서 우리는 지역사회에 봉사하기 위해 맥도날드 브랜드에 마음과 영혼을 쏟아부은 6만2000명의 직원을 고용했다”며 “러시아에서 맥도날드가 운영된 지 30여 년 동안 우리는 우리가 운영하는 850개 지역사회의 필수적인 일부가 됐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우리의 가치는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고 있는 불필요한 인간의 고통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850개 러시아 매장을 닫는다고 했다. 그러나 러시아에 있는 직원들에게는 계속해서 급여를 지급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황금아치 이론(Golden Arches Theory)’이 깨졌다고 봤다. 황금아치 이론이란, 어느 특정 국가의 경제발전 과정에서 맥도날드 매장이 많이 들어설 수 있을 정도로 중산층이 두터워지는 단계에 이르면 그 나라 사람들은 전쟁을 원치 않고, 오히려 맥도날드 햄버거를 사려고 줄을 서는 쪽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맥도날드를 통해 상호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서로에게 이익이 된다는 걸 알기에 전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푸틴의 철의 장막이 모든 것을 무너뜨렸다는 비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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