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로] 징용의 사도광산, 포용의 피란수도

입력 2022-03-2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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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현 (재) 부산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유네스코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지닌 자연유산 및 문화유산들을 발굴 및 보호, 보존하고자 1972년 세계 문화 및 자연유산 보호 협약을 채택하였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은 문화유산, 자연유산, 복합유산으로 구분되며 세계유산 운영 지침에서 유산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Outstanding Universal Value)를 평가하기 위한 10가지 가치 평가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이 기준에 따라 등재된 세계유산은 해당 유산이 어느 특정 국가 또는 민족의 유산을 떠나 인류가 공동으로 보호해야 할 가치가 있는 중요한 유산임을 증명받게 된다.

최근 일본이 사도(佐渡)광산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해 탁월한 보편적 가치가 있는 유산으로 인증받으려는 무리수를 쓰고 있다. 일본 내에서도 이번 등재 추진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있으나 일본 정부는 이를 강행하고 있다. 사도광산은 일본 내에서는 유명한 광산으로, 우리의 동해에 접해 있는 니가타현(新潟縣) 앞바다 사도섬에 있다. 1989년 광산이 폐쇄된 뒤 400㎞의 갱도 중 300m가량을 관광 루트로 사용하고 있으며, 일본은 앞으로 이곳을 세계적인 관광지로 활용할 욕심이다.

사도광산은 1603년 에도 막부가 광산 일부를 직영화한 이후 1896년 미쓰비시 합작회사에 매각되었다. 태평양전쟁 시기에는 구리와 철, 아연 등 전쟁 물자를 조달하는 데 활용되면서 당시 조선인 1200~2000명이 동원돼 가혹한 노역으로 혹사를 당한 곳이다. 일제강제동원 평화연구회가 출판한 ‘탐욕의 땅, 미쓰비시 사도광산과 조선인 강제 동원’에는 ‘진폐증을 불러오는 가혹한 환경과 광산 지형을 변형시킬 정도의 중노동, 그리고 낙반과 매몰 등 사고로 대부분이 생명을 잃어 40세를 넘을 때까지 살아남은 광부는 거의 없었다’라고 기술되어 있다. 이처럼 역사는 ‘징용의 사도광산’이라고 명백하게 증언하고 있다.

2015년 세계유산에 등재된 일본의 군함도로 알려진 하시마(端島)탄광은 이미 많은 문제를 드러내었다. 일본 정부는 등재할 때 강제노역의 역사를 알리고 희생자를 기리는 후속 조치를 하겠노라고 약속했지만 이를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하시마 문제가 발단이 되어 유네스코는 관련국들의 반발이 있을 경우 등재를 보류한다는 원칙을 마련하였다. 이를 의식하여 사도광산은 대상 기간을 에도시대(1603~1868년)로 못 박아 논란이 되는 일제강점기의 조선인 강제노동 역사를 빼는 꼼수를 부리고 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모양새다. 매우 후안무치한 행동이다.

반면에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준비 중인 ‘대한민국 피란수도 부산 유산’은 ‘포용의 세계유산’ 자격을 갖추고 있다. 부산은 20세기 냉전 시대에 인류애의 발현으로 국제 원조의 길을 열었던 최초의 전쟁인 6·25 전쟁의 과정에서 탄생된 피란수도이다. ‘부산 유산’은 6·25 전쟁 시기 1023일 동안 대한민국의 수도이자 피란 생활의 상징적인 물증이다. 전쟁으로 인한 피란민의 유입, 수용, 정착, 적응, 확산의 전반적인 사이클 속에서 피란민, 현지 주민, 피란 정부, 국제원조기구 등의 주체들이 삶의 역경을 이겨내기 위해 보여준 산출물들의 집합체이다.

부산 유산은 수도의 기능과 다양한 피란 생활의 흔적들을 보여주는 14개소의 유산으로 구성되어 있다. 부산 임시수도 정부청사, 부산 임시수도 대통령 관저, 재한유엔기념공원, 영도대교 등이 있다. 고향을 떠나온 피란민의 애환, 구호와 국제 원조 등 휴머니즘의 흔적들로서 피란민들의 삶에 대한 애절한 희망, 처절한 삶의 영위와 치유, 정부 기능의 지속성 유지, 그리고 유엔의 지원과 전쟁 후유증 극복을 위한 인류애와 관련된 유산들이다.

우리나라의 세계유산은 1995년에 등재된 ‘해인사 장경판전’, ‘종묘’, ‘석굴암·불국사’를 비롯하여 최근에 등재된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2018년)’, ‘한국의 서원(2019년)’ 등으로 총 14점이 있다. 하나하나가 탁월한 보편적 가치가 있는 유산들이다. 이렇게 세계 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해서는 사전 조치로 잠정목록을 작성하게 되어 있다. 세계유산목록 등재를 희망하는 회원국들이 작성한 자국의 유산 후보목록이다. 회원국의 잠정목록에 포함되지 않은 유산은 세계유산목록에 등재될 수 없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사도광산은 이미 2010년 11월 22일에 잠정목록에 올라가 있다. 10년 전부터 준비를 해왔다는 말이다. 일본이 치밀한 계획하에 이를 실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앞으로 모든 외교력을 발휘해서 등재를 막아야 할 것이다. 나아가 ‘징용의 사도광산’이 아닌 ‘포용의 피란수도’가 인류 보편적 가치를 지닌 유산으로서 세계유산으로 등재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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