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은 지금]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란 핵협상 카드

입력 2022-03-2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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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정 동아대학교 국제전문대학원 교수

국제사회의 관심은 늘 다양한 이슈에 골고루 분산되지 않는 듯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사회 관심이 해당 지역에 집중된 가운데, 이전까지 핵협상 테이블 복귀 문제로 난항을 겪어왔던 이란은 핵합의 부활 임박을 예고하고 있다.

2002년 이란 반정부 단체 ‘무자헤딘헐크(MEK)’가 이란 내 우라늄 농축시설과 중수로 시설의 존재를 폭로하며, 당시 이란 핵실험은 국제사회 주요 이슈로 떠올랐다. 1993년 북한이 핵확산방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하며 시작된 북한 핵 관련 협상이 일련의 성과를 거두지 못한 상황에서 또 다른 핵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다. 북한 등 이전의 사례를 반추했을 때 핵실험 단계에서의 핵 포기 협상 완결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서둘러 핵협상에 돌입하였다.

이란은 협상 테이블에 앉으면서도 핵 프로그램을 지속했고, 이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결의안 채택과 서방 중심의 이란산 원유 수입금지 제재 조치가 강도 높은 수준으로 진행되었다. 2013년 제네바에서 개최된 P5+1협상(유엔 상임이사 5개국과 독일)에서 합의안이 도출된 이후 2015년 7월 이란 핵협상안인 ‘포괄적 공동행동 계획(JCPOA)’이 최종 타결되었으나, 2018년 트럼프 정부가 JCPOA에서 탈퇴함으로써 미국의 대이란 제재 ‘스냅백(snap back)’이 진행되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JCPOA 협정문 내 일몰 조항과 이란 내 군사시설 사찰 내용이 포함되지 않고 협상이 타결되었으며, 핵폐기에 대한 확실한 담보가 없는 상황에서 오바마 정부가 이란에 비밀 자금을 지원했다는 점을 지적하며 “최악의 협정”임을 강조했다. JCPOA 타결로 국제사회 제재 해제가 진행된 이후 이란은 2017년 한 해 12%가 넘는 경제성장률을 보였으나, 스냅백 조치 직후인 2018년 1%대로 주저앉았다.

이러한 과정을 거쳤던 이란 핵협상이 새로운 분수령을 맞고 있다. 미국이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중단하고 유럽연합(EU)이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를 줄이려고 하는 상황에서 이란산 원유는 더욱 매력적인 대체원으로 여겨진다. 이란은 세계 4위 석유 매장량을 보유한 산유국으로, 제재가 해제된다면 하루 50만 배럴의 원유를 추가로 수출할 수 있다. 현재 러시아가 이란을 넘어선 수준의 유엔 안보리 제재를 받는 상황에서 이란의 복귀는 세계 원유 공급에 숨통을 틔워 줄 수 있는 방안인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임기 초부터 이란과의 핵협정 복귀를 시사하였으며, 러시아-우크라이나 문제로 에너지 공급에 차질이 예견된 상황에서 협상 테이블은 기울어졌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재개된 협상에서 이란 측 대표단은 미국 측을 마주 대하지도 않은 채 영국 등 유럽국가를 통해 전언하는 방식으로 회담을 진행하며 오히려 느긋한 태도를 보였다. 이란 정부는 제재 해제와 더 많은 지원과 보상을 얻어내기 위해 우크라이나 사태를 관망하며 협상을 조율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오히려 협상의 발목을 잡고 있는 쪽은 러시아다. 유엔 상임이사국이며 P5+1협상단 국가인 러시아가 오히려 서방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이란 핵합의 타결을 조율하고 있다는 것이다. 11일 호세프 보렐(Josep Borrell)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이란 핵협상의 일시 중지가 필요한 상황임을 논평하며, 이는 외부요인 즉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의 영향임을 지적하였다. 이란 국영방송사 IRNA 또한 핵협상 중단이 러시아로 인한 것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P5+1 회담 자체가 난항을 겪으며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진 상태에서 관련국 대표단은 회의장을 떠나 본국으로 돌아간 상태이다. 러시아가 어떤 행보를 보일지 관심이 집중되는 상황에서, 15일 이란과 러시아 양국 외교장관은 회담을 통해 우크라이나 사태와 이란 핵협상은 별개이며, 러시아가 이를 연계해 부정적 영향을 미칠 이유가 없다고 발표함으로써 그간 러시아가 이란 핵협상을 우크라이나 사태의 협상 카드로 사용하고 있다는 의혹을 불식하고자 하였다.

특정 시기 세계 정치경제 무대에 스포트라이트가 주어진 주인공이 있으면, 무대 한쪽 어두운 공간에서 자유로운 움직임이 있기 마련이다. 이란 핵협상이 북핵 협상과 한반도 문제에도 많은 시사점을 제공할 수 있는 만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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