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로] 조세형평, 원칙과 힙스러움 사이

입력 2022-03-2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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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동 배재대 경영학과 교수

요즘 힙(hip)하다는 말을 많이 한다. 원래는 유행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개성을 추구하는 행위를 뜻하는 단어였다. 지금은 조금 의미가 바뀌어 최신 유행에 밝거나 개성이 강하다는 다소 복합적인 뉘앙스로 쓴다. 힙함의 반대말로 원칙을 꼽을 수 있다. 물론 두 단어가 엄밀히는 서로 대립하는 관계는 아니다. 원칙주의자에게 ‘꼰대’라는 이미지가 따라붙는 까닭에 그렇게 보아도 아주 무리는 아닐 터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원칙을 언급하면 고리타분하거나 불편하게 여기는 분위기가 있다.

최근 공금 횡령 사건이 뉴스에 많이 오르내린다. 기업 규모나 민관을 따지지 않는다. 상장기업인 오스템임플란트와 계양전기의 직원들은 각각 2200억 원과 240억 원, 강동구청 소속 공무원은 115억 원을 횡령했다. 횡령이 발생하는 주된 원인 중 하나는 ‘segregation of duties’, 즉 권한분산 원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권한분산 원칙은 말 그대로 권한을 여럿에게 나눠 서로 견제시키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가령 자금인출과 승인을 한 사람이 도맡으면 횡령 위험이 증가한다. 내부회계관리제도를 잘 갖춘 회사는 권한분산 원칙을 제대로 설계해서 운영한다. 앞의 사건들도 권한분산 원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기실 위 원칙이 최근에 등장한 것도 아니고 실행 역시 어렵지 않다. 오랜 기간 굳은 원칙을 가벼이 여긴 결과 탈이 난 사례다.

요즘 정치인들은 기존 관례나 이미지에서 벗어나 힙해지려 노력한다. 패션과 언행, SNS 등 여러 면에서 그렇다. 고리타분해 보이지 않고 소통하는 젊고 역동적인 이미지를 갖기 위함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후보 시절 SNS에 ‘주식양도세 폐지’ 딱 한 줄을 올렸다. 그런데 2023년 시행 예정인 주식양도세는 그대로 두고 증권거래세를 완전히 폐지하겠다는 것이 원래 공약이었다. 갑자기 이를 뒤엎어 주식양도세를 없애고 거래세는 존치하겠다고 나서니 모두가 의아할 수밖에 없으리라.

대선 TV토론에서 그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윤 당선인은 주식양도세 폐지로 급선회한 이유로 개미(개인투자자)들이 원하고 주식시장에 큰손을 끌어들일 수 있는 점을 내세웠다. 일부 인터넷 게시판에서는 당시 윤 후보의 결정을 두고 힙한 것으로 보고 열광했다. 소득에 과세하는 원칙과 스스로 세운 공약도 개인투자자들이 원하면 확 뒤집어버리는 것을 소통하고 역동적인 것으로 본 까닭이다.

그런데 이런 식의 정책 결정이 매우 우려스럽다. 현행법이 대주주가 양도하는 상장주식의 차익에 대해서만 과세하는 것을 두고 그간 학계에서 꾸준히 문제로 지적해왔다. 소득이 있는데 과세하지 않으면 형평성 시비를 낳는다. 초기의 주식시장을 활성화한다는 취지에서 상장주식을 처음에는 모두 비과세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명분은 약해지기 마련이다. 과세 범위를 꾸준히 넓힌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주요국들 역시 주식양도소득에 제한을 두지 않고 과세한다. 마침내 2020년 말 법을 개정해 내년부터는 범위 제한 없이 대주주 외에도 주식양도차익을 본 다른 개인들도 세금을 내도록 한 것이다. 윤 당선인은 시간을 완전히 되돌려 전면 비과세로 하겠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세금을 적게 내면 다른 누군가가 그만큼 더 내야 한다. 한쪽에서 세금 내기 싫다고 해서 줄이거나 없애 버리면 다른 쪽에서도 똑같이 요구한다. 개인 처지에서 주식양도차익은 완전히 비과세하고 가령 근로소득은 과세하는 식의 차별을 왜 둬야 하는지 수긍하기 어렵다. 이런 곤란을 해결하는 것이 원칙이다. 조세원칙 중 하나는 소득 있는 곳에 과세하는 것이다. 원칙을 버리고 당장 눈앞의 환호와 지지, 조세저항에만 눈을 두는 것은 이후 다른 더 큰 반대와 조세저항에 맞닥뜨리게 된다.

국민과의 소통, 배려도 중요하지만 모든 이를 만족시킬 순 없다. 국정을 책임지는 자리는 그래서 늘 고뇌하는 자리일 수밖에 없다. 대통령 선거는 끝났다. 선거는 대중의 인기를 끌어야 하는 특수한 시기다. 이제부터는 윤 당선인의 시간이다. 조세정책 수립에서 힙스러움을 버리고 원칙으로 돌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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