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나쁜 장애인, 참 나쁜 정치인

입력 2022-03-31 05:00 수정 2022-03-31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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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나쁜 장애인입니다”

지난해 말부터 출근길에 휠체어를 타고 기습 승하차하는 시위를 벌여온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는 스스로를 나쁜 장애인이라고 칭한다. 그들은 왜 스스로를 나쁜 장애인이라고 칭할 수밖에 없었을까.

최근 부각되고 있으나 사실 그들의 투쟁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2001년 서울 지하철 4호선 오이도역에서 장애인 1명이 리프트 추락사고로 숨진 뒤부터 무려 20여 년간 이어진 투쟁이다. 20여 년간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봤다고 한다. 누군가 말한 것처럼 국회 앞에도 가봤고, 해당 관계부처 장관 집 앞에도 찾아갔단다. 그러면서 수많은 정치인과 공무원들을 만났다. 하지만 무시와 냉대가 대부분이었다.

물론 선거철에는 잠깐 이목을 끌며 철석같은 약속을 받은 적도 있다. 금방이라도 관련 법안을 통과시키고, 예산을 집행할 것처럼 약속했지만 선거가 끝나면 매번 흐지부지됐다.

그러면서 이들의 외침은 힘을 잃어갔다. 세상은 더는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시민들을 ‘볼모(?)’로 잡기로 했다. 그래야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준다고.

1분 1초가 아까운 출근길에 이뤄지는 지하철 시위가 시민들로서는 당연히 불편할 수밖에 없다. 뭐가 그렇게 중요한 일이길래 이 바쁜 아침에 시위를 하는지, 자신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을 수도 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그런데 그래서는 안 되는 사람이 있다. 적어도 정치인이라면 비장애인과 같은 선상에서 논할 수 없는 그들의 현실적 객관적 불편함과 한계를 먼저 생각할 필요가 있다. 말뿐일지도 모르나 “장애인들의 시위는 장애인들에게 이동권조차 보장하지 못한 정치권에 잘못이 있다”고 말한 한 정치인처럼 말이다.

더구나 곧 집권 여당의 대표가 될 정치인이라면, 그들의 옳고 그름을 가리기 전에 그들이 왜 시위에 나설 수밖에 없었는지를 살펴봤어야 했다. 그런데도 그들을 비난할 수밖에 없었다면 그 자리에 걸맞은 해결책을 함께 내놓았어야 했다. 비단 주머니 3개까지는 아니더라도 말이다.

무엇보다 장애인들의 권리는 법으로도 보장돼있다. 이런 법적 권리는 장애인이 약자이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들 역시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구성원이기 때문이다. 혹자는 핸디캡을 가진 소수, 장애인을 배려할 때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을 먼저 고려하기도 한다. 하지만 사회는 효율성만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장애와 상관없이 사회 구성원 모두가 평등하게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회는 그렇지 않은 사회보다 더 생산적이고 안정적이다. 그런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배려의 혜택은 결국 돌고 돌아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돌아간다. 당장 장애인들의 이동권 보장을 위해 역사에 설치됐던 승강기를 임산부나 노약자 등이 두루 이용하게 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이제 우리도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이다. 그런데도 장애인 예산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고, 정치인들은 당연한 권리를 내세우는 장애인들을 ‘나쁘다’고 몰아붙이고 있다.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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