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통신] “문제는 인플레야, 이 바보야”

입력 2022-04-0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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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 안갯속 방향 잃은 美 경제

금리인상 불구 물가 40년 만의 최고치

주부들, 돼지고기 대신 닭고기 구입

집값 폭등에 모기지 부담 늘어 이중고

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 재연 경고도

뉴욕시 교외 멜빌에 있는 대형 할인점 코스트코에 장을 보러 온 애쉴리 브라운. 돼지고기를 연거푸 들었다 놨다 하다 결국 닭고기를 카트에 담은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요즘 고기 값이 너무 올라 쇠고기는 물론 돼지고기조차 사먹기 힘들어졌다”며 “이대로 가면 닭고기조차 먹기 어려울 거 같다”고 말했다. 애쉴리가 집었던 돼지갈비값은 파운드당 5달러(약 6000원). 한 해 사이 25%가량이나 올랐다. 코스트코뿐 아니라 슈퍼마켓을 찾은 쇼핑객들은 육류가 진열돼 있는 냉장고 앞을 지나치기 일쑤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물가에 미국 소비자들은 시쳇말로 죽을 맛이다. 코로나로 인한 대량 화폐 발행, 공급 대란으로 가뜩이나 폭등하던 물가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유가 상승과 공급 부족이 겹치면서 사상 최악으로 치솟았기 때문이다. 2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년 새 7.9%가 올라 40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고삐 풀린 물가는 2월 한 달 만에 1.5%가 올랐다. 금리를 올린 이후에도 이렇다 할 변화가 없다. 소비자들이 비명을 지르는 건 당연하다.

물가상승은 비단 미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에 따르면 지난해 식료품 가격은 무려 21%나 올랐다.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유가 상승과 식물성 기름 등 국제 원재룟값 폭등이 원인. 우크라이나가 주산지인 식물성 기름값은 2월 한 달 새 8.5%나 올랐다. 고기와 유가공 식품값 상승도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어서 인플레이션은 세계 경제를 위협하는, 공포의 대상으로 부상하고 있다. 소비자들이 당국자들을 향해 “문제는 인플레야, 이 바보야”라고 외칠 만도 하다.

휘발윳값은 이미 갤론당 4.5달러(캘리포니아주 6달러)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 바클레이, 골드만삭스 등 대형 은행들은 지난달 초 배럴당 130달러를 돌파한 브렌트 유가가 200달러를 넘을 수도 있다고 내다보고 있다.

▲뉴욕시 교외 지역에 있는 대형할인점 코스트코 매장 정육 코너. 고기 값이 폭등함에 따라 주말인데도 불구하고 한산하다.
▲뉴욕시 교외 지역에 있는 대형할인점 코스트코 매장 정육 코너. 고기 값이 폭등함에 따라 주말인데도 불구하고 한산하다.

물가를 잡기 위해 통화당국이 취한 첫 번째 조치는 금리 인상. 미 연방 통화당국은 지난달 중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렸다. 하지만 약발이 먹히지 않고 있다. 상승폭이 예상을 훨씬 뛰어넘고 있고, 금리 인상에도 불구하고 식료품값은 연내 4.5~5.5%가 더 오를 전망이다.

이대로 가면 스태그플레이션이 올 수 있다는 비관론이 커지고 있다. 물가도 못 잡고 성장이 둔화돼 침체 수렁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다. 경제학자 모하메드 엘 에리안은 물가를 잡겠다고 통화정책을 잘못 썼다가는 통제불능 상태를 맞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다음 달 0.5%포인트, 연내에 금리를 2.5%포인트까지 더 올린다는 게 통화당국의 방침인데,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채권 가격이 하락할 경우 투자자들이 채권을 대거 매도, 큰 혼란이 초래될 수 있다는 것. 그는 물가와 성장 두 마리 토끼를 다 못 잡는 1970년대판 스태그플레이션이 재연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부동산 시장의 버블도 불안 요소의 하나. 지난해 3.2% 수준이었던 30년 고정 모기지 이자율이 금리 인상으로 5% 수준으로 껑충 뛰었고, 거래는 눈에 띄게 줄었다. 가뜩이나 고물가에 시달리는 주택 소유주들의 모기지 이자상환 부담이 늘어날 경우 가계 파산이 이어질 수 있고, 2008년의 금융위기를 다시 맞게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전국 케이스-실러 주택지수에 따르면 집값은 2000년에 비해 1.8배가 올랐다. 같은 기간 소비자물가지수보다 높은 수치다. 대도시 상승폭은 훨씬 크다. 로스엔젤레스는 2.85배, 시애틀은 2.65배나 올랐다.

팬데믹 상황에서의 집값 폭등은 사실 전문가들도 예상치 못했다. 특히 대도시 주변의 집값은 입이 딱 벌어질 정도. 2020년 25만6000달러였던 플로리다의 한 주택은 지난달 말 45만4000달러로 올랐다. 2년 새 77%나 오른 셈이다. 시장은 자연스럽게 매도자가 주도하는 이른바 셀러스 마켓으로 돌변했다. 집을 사려면 대기자 명단에 올려야 하고, 호가보다 5~6%를 웃돈으로 얹어 줘야 거래가 성사될 정도다. 현금 거래도 크게 늘었다.

경제전문지 울프스트릿은 제2의 금융위기 그림자가 미국 경제에 짙게 드리워져 있다고 비관론을 내놨다. 신용평가기관 피치는 그러나, 항공, 자동차, 교통, 물류 부문은 침체에 빠질 우려가 다소 높지만, 실업과 수요가 건실하기 때문에 경제 전반으로 확산될 시나리오는 크지 않다고 보고 있다. 미국 경제가 짙은 인플레 안개 속에서 방향을 잃은 형국이다.

wanseob.ko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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