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춘욱의 머니무브] 일본 부동산시장의 양극화는 어떻게 된 일일까?

입력 2022-04-0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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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활동인구 줄면서 주택 수요 감소로 장기 침체…산업 클러스터 모인 수도권은 달랐다

1990년대 초반부터 이코노미스트 생활을 하다 보니 일본 경제에 유독 관심을 갖게 된다. 직장생활 초년에는 “1등으로서의 일본(Japan as No.1)”이라는 말이 아무 거리낌 없을 정도로 일본 경제가 잘나갔던 데다, 2000년대에는 이른바 ‘잃어버린 10년’이라는 신조어가 유행할 정도로 일본이 망가졌기 때문이었다. 특히 공교롭게도 생산활동인구의 감소를 전후해 시작된 부동산 시장의 장기 침체는 한국도 벗어날 수 없다는 식의 분석이 크게 부각되기도 했다.

토지·주택가격 하락이 멈춘 까닭

1990년대부터 시작된 일본 부동산 시장의 장기 침체는 어디에서 기인했을까? 일단 첫 번째 후보는 생산활동인구, 다시 말해 15~64세 연령대 인구의 감소가 주택 수요를 감소시켰다는 가설이다. 그런데 <그림1>의 가로축 끝부분을 보면 생산활동인구가 계속 감소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토지 가격의 반등이 나타났음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놀라운 것은 도쿄나 오사카 등 핵심 지역의 아파트 가격이 상승세로 돌아섰다는 것이다.

부동산 조사기관인 부동산경제연구소에 따르면 2020년 수도권 신축 분양 아파트의 평균 가격은 6084만 엔을 기록해, 부동산 시장이 정점에 달했던 1990년(6123만 엔)에 이어 사상 두 번째 수준에 도달한 바 있다.

생산활동인구가 1990년대부터 줄어든 데 이어 총인구도 2010년대 후반부터 감소하기 시작했는데 어떻게 된 일일까? 이 의문을 푸는 데 가장 도움이 되는 정보는 바로 주택 공급 감소다. 1992년 이후 일본 주택 공급 흐름을 살펴보면, 2007년부터 본격적인 감소 국면에 접어든 것을 발견할 수 있다.(그림2) 주택 가격이 끝없이 떨어지는데 주택 공급이 크게 늘어난 이유는 경기부양 정책 시행 과정에서 공공주택 공급을 크게 늘렸기 때문이다. 즉 주택 공급 확대를 통해 고용을 늘리고 건설업의 도산을 막아 보려 했던 것이, 역설적으로 주택 시장의 수급 불균형을 유발한 셈이다.

이런 상황을 바꾼 것은 200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고이즈미 정권의 구조조정 조치였다. 고이즈미 정부가 공기업을 민영화하고 금융기관의 구조조정을 단행한 것은 비단 기업의 경쟁력만 개선시킨 것이 아니라, 부동산 시장의 회복을 유발했던 것이다.

전국 부동산 빠지는데 수도권은

그런데 이 대목에서 “전국 주택가격은 빠지는데 왜 수도권 주택가격은 오르는가”라는 의문을 품은 독자들이 있을 것이다. 수도권과 오사카 등 일부 지역 집값만 상승세를 보이는 이유는 바로 ‘클러스터’의 힘에서 찾을 수 있다. 예전에는 학문과 일자리의 중심지가 원재료 생산 지역에 분포되어 있었다. 예를 들어 영국 셰필트(Sheffield)에는 칼을 만드는 이들이 모여들고, 한국의 중화학공업 단지는 다른 나라로부터 원재료를 수입하기 쉬운 포항부터 여천까지 이어지는 남동벨트에 집중되어 있다.

이런 식으로 일자리가 특정 지역에 집중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 요인 때문이다. 무엇보다 함께 비슷한 분야 기업들이 모여 있으면 필요로 하는 기술과 부품을 언제든지 조달할 수 있으며, 비슷한 일을 하는 근로자와 기술자를 쉽게 뽑을 수 있고, 주변의 대학이 발전하면서 창의적인 기술 혁신을 유발시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한 국가에 거대한 클러스터, 다시 말해 산업과 학문의 중심지가 많이 존재하기는 어렵다. 즉, 더 잘 발달되고 규모도 큰 클러스터로 집중되는 경향이 지속된다. 그리고 이런 클러스터에서 성장한 혁신 기업들은 고소득의 일자리를 만들어내며, 혁신 산업의 일자리가 하나 생길 때마다 또다시 다섯 개의 일자리를 만들어 낸다고 한다.

미국 대도시 지역 320곳의 근로자 110만 명에 대한 분석에 기초한 연구 결과, 대도시 지역 한 곳에서 첨단기술 일자리가 한 개 늘어날 때마다 장기적으로 다섯 개의 추가적인 일자리가 첨단기술 분야 밖에서 창출된다. 이 다섯 개의 일자리는 다양한 근로자 조합에 이득을 준다. 승수효과에 의해 창출된 일자리 가운데 두 개는 전문직인 데 반해 나머지 세 개는 비전문직 일자리였다.

물론 혁신 성장산업의 일자리에 비해 새로 생기는 일자리가 모두 좋은 일자리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혁신이 멈추면서 신규 고용이 줄어들고, 또 다른 클러스터에 경쟁력을 잠식당하는 곳과는 전혀 다른 일자리 환경이 벌어질 것임을 금방 알 수 있다.

도쿄-요코하마, 세계 1위 클러스터

그렇다면 일본에서는 어떤 곳에 그런 클러스터가 형성되어 있는지 살펴보자.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의 발표에 따르면, 도쿄-요코하마가 세계에서 가장 큰 클러스터인 것으로 나타났다. 도쿄-요코하마 다음으로 큰 클러스터는 오사카-고베-교토로 세계 6위였으며, 나고야(세계 12위)가 그 뒤를 이었다. 참고로 한국의 서울은 세계 3위의 클러스터로 이름을 올렸으며, 대전이 세계 22위를 차지했다.

물론 세계 최상위 클러스터에 이름을 올렸다고 해서 꼭 부동산 가격이 오르는 것은 아니다. 1990년대의 일본처럼 강력한 주택 착공이 지속되면 기술 혁신의 중심지 주택 가격도 내릴 수 있다. 다만 기회비용의 관점에서 볼 때, 고소득 일자리가 늘어나는 곳일수록 주택 가격도 오를 개연성이 높다는 것 또한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시간당 임금이 1만 원인 근로자가 출퇴근에 2시간을 보낸다면, 그가 잃어버린 기회비용은 2만 원에 불과하다. 그러나 만일 억대 연봉을 받는 근로자가 출퇴근에 2시간을 쓰면, 그가 희생한 기회비용은 이보다 훨씬 더 클 것이기에 그는 점점 직장과 가까운 곳에 주택을 구입하려 들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 시간에는 베이비붐 세대 은퇴 이후 미국 부동산 시장에서 벌어진 일을 살펴볼 것을 약속하며, 일본 이야기는 이 정도에서 마무리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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