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국, 우크라발 인플레에 경제 위기…정권마저 흔들려

입력 2022-04-10 14:51 수정 2022-04-10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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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세계 식량가격지수 두 달 연속 사상 최고치
파키스탄, 경제 파탄 책임 물어 총리 불신임안 가결
스리랑카 정권 퇴진 시위, 인니 학생 시위 잇따라
정부 추가 지원책, 재정 악화 부추긴다는 지적도

▲사진은 스리랑카 콜롬보에서 9일(현지시간) 시민들이 정권 퇴진 시위를 벌이고 있다. 콜롬보/로이터연합뉴스
▲사진은 스리랑카 콜롬보에서 9일(현지시간) 시민들이 정권 퇴진 시위를 벌이고 있다. 콜롬보/로이터연합뉴스

전 세계 신흥국들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인플레이션으로 심각한 경제 위기에 직면했다. 곡물과 식용유 가격 상승에 3월 세계 식량가격지수가 2개월 연속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가운데 곳곳에서 정권 퇴진 시위가 벌어지는가 하면 결국 수장이 축출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10일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따르면 파키스탄 의회는 이날 새벽 임란 칸 총리에 대한 불신임안을 가결했다. 의회는 칸 총리가 국가 경제를 위험에 빠뜨리고 잘못된 외교 정책을 펼치고 있다는 이유로 투표를 진행했고, 의원 342명 중 174명이 찬성표를 던져 통과했다. 파키스탄 역사상 총리가 임기를 못 채운 일은 많았지만, 불신임안이 가결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파키스탄은 지난 몇 년간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 건설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생으로 불어난 부채에 허덕이고 있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구제금융 프로그램을 통해 파키스탄의 파산을 막고 있지만, 최근 지원 연장을 위한 조건으로 긴축과 재정 개선을 내걸자 칸 정권은 휘발유와 전기 요금 등을 대폭 인상했다. 그 결과 파키스탄 물가 상승률은 두 자릿수로 치솟았고 칸 총리는 자리에서 물러나게 됐다.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 10일(현지시간) 시민들이 임란 칸 총리 불신임안 가결 직후 의회의사당을 빠져나가는 야당 의원들의 차를 둘러싸고 환호하고 있다. 이슬라마바드/AP연합뉴스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 10일(현지시간) 시민들이 임란 칸 총리 불신임안 가결 직후 의회의사당을 빠져나가는 야당 의원들의 차를 둘러싸고 환호하고 있다. 이슬라마바드/AP연합뉴스

스리랑카에선 연일 현 정권 퇴진 시위가 벌어지면서 고타바야 라자팍사 정권이 흔들리고 있다. 스리랑카는 경제 기반인 관광산업이 코로나19로 부진하면서 극심한 경제난을 겪고 있다. 지난달 말 기준 외환보유고는 19억 달러(약 2조3332억 원)로, 전년 대비 반 토막이 났다. 여기에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인플레이션까지 겹치면서 주민의 불만이 하늘을 찌를 듯 치솟았다.

스리랑카 정부는 사태 수습을 위해 각료쇄신에 나섰지만, 취임한 지 얼마 안 된 재무장관이 이번 주 사의를 표하는 등 혼란은 계속되고 있다. 스리랑카 중앙은행은 급한 대로 이틀 전 예금금리와 대출금리를 각각 7% 인상했다.

인도네시아에선 2월부터 치솟기 시작한 식용유와 가스 가격에 불만을 품은 학생들이 거리로 나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앞서 식용유 수출 제한 조치 등을 펼쳤던 당국은 불만이 커지자 월급 350만 루피아(약 30만 원) 이하 노동자 880만 명을 대상으로 1인당 100만 루피아를 지원하기로 했다.

이 밖에 인구 1억 명 가운데 30%가 빈곤층인 이집트에선 2011년 민주화 운동인 ‘아랍의 봄’이 재현되는 게 아니냐는 불안감이 확산하는 등 곳곳에서 정권 붕괴 조짐을 보인다. 특히 이집트의 경우 2010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실시한 곡물 수출 제한에 따른 식량 가격 상승 불만이 시위의 시발점이었던 터라 현 우크라이나 전쟁이 이들에겐 데자뷔로 비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세계 인플레이션은 좀처럼 안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최근 발표한 3월 세계 식량가격지수는 159.3으로 전월 대비 17.9%포인트 상승, 지난달에 이어 또 한 번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미국 농무부는 우크라이나 연간 밀 수출 전망을 1900만 톤으로 제시해 기존 전망보다 100만 톤 하향하기도 했다. 나아가 2021~2022년 세계 밀 재고가 5년 만에 가장 낮을 것으로 추산해 식량 가격을 중심으로 한 인플레이션 추가 압박을 경고했다.

닛케이는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식량 가격 상승이 신흥국을 흔들고 있다”며 “각국 정부는 커지는 국민의 불만을 경계하면서 지원책을 내세우고 있지만, 이는 코로나19 부양책으로 가뜩이나 악화한 재정에 한층 더 타격을 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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