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중

입력 2009-03-03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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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현실적인 캐릭터들이 철학적인 대화를 나누더니 초현실적인 결론으로 치닫는다. 불치병, 해바라기 사랑, 사랑의 증표들…. 슬픈 영화의 공식들을 빼놓지 않고 사용했건만, 별로 슬프지 않다는 것이야말로 이 영화의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다.

내레이션으로 시작해 내레이션으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길고 장황한 설명들이 영상 언어를 대체한다. 불치병에 걸린 남자의 슬픈 사랑이야기는 구구절절 독백에서 출발한다. 사랑하는 여자를 다른 남자에게 시집보내야 했던 사연은 무엇일까.

영화는 액자 구성으로 전개된다. 정준호와 이승철이 옛날 이야기를 경청하듯 이들의 러브스토리에 빠져드는 방식이다. 영화 프롤로그에 해당하는 이 장면을 코믹하고 장난스럽게 처리한 것은 그 자체가 NG다. 카메오로 등장하는 남규리의 존재는 영화의 진정성을 의심케 한다.

타이틀이 올라오는 즉시 내레이션으로 이어진다. ‘케이’(권상우)의 자기소개 같은 것을 들어줘야 한다. 내 이름은 케이이고 사랑하는 여자는 ‘크림’(이보영)인데, ABCDEFGHIJ ‘K’할 때 그 K는 아니고라는 철학적인 이야기다. 불치병에 걸렸다는 사실까지 초반에 드러난다. 내레이션만 들어도 영화 내용의 절반은 숙지했다고 해도 무방하다.

영화 본문은 시(詩)와 닮아있다. 주인공들은 다시 태어나면 뭘로 태어나고 싶어?, 결혼이란 뭐라고 생각해?, 시간이 멈춘다면 뭘 하고 싶어? 따위의 비현실적 대화를 나눈다. 반지로 태어나고 싶다, 결혼은 칫솔꽂이라는 진지한 대답은 차라리 코미디다.

영화는 할 말이 참 많아 보인다. 여느 영화보다 많은 내레이션도 내레이션이지만,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 수 차례 시를 띄우는 방식은 욕심으로도 보여진다. 시인 원태연의 감독 데뷔작은 시와 영화의 경계선에서 어정쩡하게 자리하고 있다.

케이의 시선에서 서술된 영화는 크림의 이야기로 전환되며 반전을 만들어낸다. 영화 전반을 쓰윽 훑어주며 이면의 진실을 알린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편지하듯 독백하며 슬픔을 꺼내보인다. 감수성 예민한 관객들은 이 부분에서 눈물을 흘릴 수도 있다.

진부한 불치병 소재에 사랑하기 때문에 떠나 보내야 한다는 통속적 이야기, 철학적인 대화들은 총체적 난국이다. 소설 속 명대사를 평소에 즐겨 쓰는 상황은 지나칠 경우 코미디가 될 수 있다. 비현실적인 인물들이 자기들끼리만 엄청나게 심각할 경우 웃길 수도 있다는 것은 개그의 제1법칙이다. 문어와 구어는 그래서 다르다.

새 두 마리가 강가에서 하늘로 날아가는 장면이 에필로그다. 카메라가 우연히 잡은 듯하다. 11일 개봉한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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