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창근 칼럼] ‘나는 바담풍(風), 너는 바람풍’ 인사청문회

입력 2022-04-1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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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윤석열 정부의 첫 내각 인선이 마무리됐다. 비판이 많다. 참신하지도 다양하지도 않고, 지역과 성별, 세대의 포용도 안 보인다. 국민통합과 거리가 멀다. 윤 대통령 당선인은 처음부터 “할당이나 안배를 하지 않겠다”고 말했었고, 장관 내정자들에 대해서도 “국가와 국민을 위해 해당 분야를 가장 잘 이끌 분들을 모셨다”고 강조했다.

전문성과 능력에 초점을 맞춘 실용내각이라지만, 논란을 무릅쓴 인사의 책임은 오롯이 윤 당선인의 몫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심각한 경제와 안보의 위기, 사회불안에 직면한 상황이다. 그런 만큼 새 내각은 중첩된 난관을 극복해 새로운 미래를 열 수 있는 국정 운영과 정책 역량을 보여주고 성과로 입증해야 할 책무가 어느 때보다 크다.

이제 국회의 인사청문회 정국인데 정치 지형은 지뢰밭이다. 한덕수 국무총리와 18개 부처 장관 후보자에 대한 청문절차가 본격화된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나름 사전 검증을 거쳤음에도 쏟아지는 의혹과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결함들이 심상치 않고 말썽도 커진다. 일부 낙마를 각오해야 할 것이다. 특히 당선인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한동훈 검사장의 법무부 장관 지명, 또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 등에 곧 거대 야당이 될 더불어민주당이 극렬히 반발하면서 정면충돌하고 있다. 정국이 급속히 얼어붙고 청문회의 파행을 예고한다.

순조로워야 할 새 정부 출범의 최대 걸림돌이다. 인사에 발목 잡히면 정부 초기부터 국정동력이 타격을 입고 흔들린다. 민주당은 ‘송곳 검증’을 공언한다. 고위 공직자들에 대한 엄격하고 철저한 검증은 당연하다. 그들의 능력 이전에 도덕성과 청렴, 준법의무는 마땅히 지켜져야 할 본분이다. 공직자들에 높은 도덕적 잣대를 적용하는 것은 공익을 지키기 위함이다. 부당한 방법으로 다른 사람들의 혜택을 빼앗았거나 법을 지키지 않은 이들에게 공익을 추구해야 할 자리를 맡길 수는 없다. 공직자 처신의 도덕성에 대한 국민 신뢰가 안정적 국정운영의 최우선 전제다.

민주당은 ‘7대 기준’을 들고 나와 장관 후보들의 낙마를 벼른다. 문재인 정권이 고위 공직자 원천 배제 사유로 제시했던 병역 면탈, 불법 재산증식, 세금 탈루, 위장 전입, 연구 부정행위, 성범죄, 음주운전 등이다. 모두 실정법을 어긴, 공직 부적격의 중대 흠결이다.

그런데 이 원칙을 그들 스스로도 제대로 지킨 적이 없다. 문재인 정부 첫 조각 때부터 그랬다. 이낙연 국무총리, 강경화 외교부 장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등이 말썽이 됐고, 이후에도 계속 내 맘대로 인사였다. 지난 5년간 7대 기준에 걸려 국회 청문회의 야당 동의를 얻지 못했음에도 문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한 장관급만 34명이다. 역대 정권에서 가장 많다. 처지가 궁색해진 민주당은 청문회의 도덕성 검증은 비공개로 하고, 공개 청문회는 정책과 능력을 따지자는 법안도 내놓았다. 하지만 지난 대선에서 패배하면서 없던 일이 되고 있다.

이제 공수(攻守)의 입장이 바뀌었다고 자신들이 팽개친 검증 잣대의 날을 세운다. ‘나는 바담풍(風), 너는 바람풍’의 자가당착이자 낯 두꺼운 몰염치다. 결국 민주당이 국회의 다수 의석으로 갈 길 바쁜 새 정부 출범 초부터 힘을 빼고 계속 발목을 잡으면 ‘식물 정부’가 될 수밖에 없다. 국가적 불행이다. 그럼에도 윤석열 정부가 잘못된 인사의 면죄부를 얻을 수는 없다. 어떤 명분으로도 ‘공정과 상식’에 어긋난 사람은 쓰지 않아야 한다. 국민들이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뽑은 가장 큰 이유는, 문재인 정권에서 망가진 그 공정과 상식의 가치가 바로 세워질 것이란 기대였다. 새 정부 인사는 달라야 할 당위성이다.

기실 국회 인사청문회의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지켜지지도 않고 솔직하지도 않은 보여주기식 기준으로 매번 흠집내기와 망신주기에만 매달려 낙마가 되풀이되고 유능한 인재를 사장(死藏)시키는 덫으로 변한 지 오래다. 청문회가 두려워 장관 않겠다는 인물들이 많았고 쓸 만한 인재 풀은 갈수록 좁아졌다. 결국 국민적 공감대로 우리 사회의 보편적 상식이 납득할 수 있는 제도 개편을 반드시 서둘러야 할 과제다.

사족(蛇足)이다. 200여 년 전 다산(茶山) 정약용이 쓴 목민심서 율기(律己)편 청심(淸心)조에 ‘관리등급론’이 있다. 최상은 봉록 외에 아무것도 탐내지 않고, 벼슬을 그만둘 때에도 가진 게 없는 청백리다. 두 번째는 명분 있는 재물은 받는, 법에 저촉되지 않는 한 벼슬로 말미암아 생기는 이익을 마다 않는 경우다. 최하는 벼슬을 이용해 탈법과 부정을 저지르지 않아도 관례를 핑계로 뇌물을 탐하는 관리다. 다산은 첫째 덕목을 지키는 관리를 찾기 어려운 세태이니 중간 등급만 되어도 괜찮고, 최하 등급은 옛 법도로 팽형(烹刑)감이라고 했다. 법의 경계를 넘지 않아도 그러한데, 오늘날 우리 관리들의 윤리와 도덕성에 대해서는 더 무슨 말이 필요하겠나. kunny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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