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크래커] 미국의 상대는 러시아가 아니다

입력 2022-04-29 15:57 수정 2022-04-29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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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8일(현지시간) 중소기업 경영자들과 회의를 하고 있다. 워싱턴D.C./UPI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8일(현지시간) 중소기업 경영자들과 회의를 하고 있다. 워싱턴D.C./UPI연합뉴스

"미국, 민주주의 무기고"

미국이 우크라이나 지원을 쏟아내고 있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지금까지 우크라이나에 지원한 자금 규모만 총 400억 달러가 넘는다. 미국 의회는 법까지 통과시켜 우크라이나에 신속하게 무기를 공급할 수 있는 길을 텄다. 미국이 우크라이나 지원에 사력을 다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28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기 위해 330억 달러(약 42조255억 원) 규모의 예산안을 의회에 추가로 요청했다. 군사적 지원 200억 달러, 직접적 경제 지원 85억 달러, 인도주의 및 식량 지원 30억 달러가 포함됐다. 이번 지원 규모는 미국이 우크라이나 전쟁 발생 이후 두 달간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136억 달러의 두 배에 달한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앞선 지원금이 다 고갈됐다”며 “전쟁이 매우 중요한 상황에 처해 있다. 추가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측근 그룹인 신흥재벌 ‘올리가르히’도 겨냥했다. 의회에 이들의 재산을 동결하고 압수하기 위해 사법 단속권을 강화하는 법안을 처리해달라고 요청했다. 미국 정부 조사 결과 이들로부터 압류한 자산 규모만 300억 달러에 달한다. 바이든 대통령은 압수한 자금을 우크라이나 재건을 돕는 데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미 의회도 움직였다. 우크라이나에 신속하게 무기를 지원하기 위해 81년 전 제정된 무기대여법을 발동했다. 미 하원은 이날 찬성 417표, 반대 10표의 압도적 표 차이로 무기대여법 발동을 통과시켰다. 무기대여법은 1941년 나치 독일에 저항하는 동맹을 돕기 위해 프랭클린 루스벨트 당시 대통령이 제안했다. 법안에 따라 대통령은 미국 방위에 필수적이라고 생각하는 외국 정부에 군사 장비를 임대하거나 대여할 수 있다. 필요한 절차를 간소화해 신속하게 물자를 공급할 수 있도록 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미국이 분쟁에 직접 개입하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에도 “미국은 민주주의의 무기고가 될 것”이라고 의의를 표명, 법안에 서명했다. 미국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연합국에 약 500억 달러에 달하는 임대 지원을 제공했다.

상원에 이어 하원을 통과한 무기대여법은 바이든 대통령의 서명만 남겨뒀다. 서명이 끝나면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필요한 무기를 실시간으로 지원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는 원하는 무기를 빌려 쓰고 전쟁이 끝난 뒤 대가를 지불하면 된다.

무기대여법의 압도적 의회 통과는 미 양당이 우크라이나 지원에 전폭적으로 나서고 있음을 반영하고 있다.

민주당의 제이미 래스킨 하원의원은 “해당 법안은 미국이 참전할 때까지 영국과 처칠이 나치의 폭격에서 살아남을 수 있게 해줬다”며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를 지키기 위해 무기를 요청했고 미국은 여기에 응답했다”고 말했다.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28일(현지시간) 옥사나 마르카로바 미국 주재 우크라이나 대사와 얘기하고 있다. 워싱턴D.C./EPA연합뉴스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28일(현지시간) 옥사나 마르카로바 미국 주재 우크라이나 대사와 얘기하고 있다. 워싱턴D.C./EPA연합뉴스

"중국이 지켜보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석 달째로 접어든 가운데 미국이 우크라이나 지원에 두 팔을 걷어붙인 분위기다. 우선 러시아가 화력을 집중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남동부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점이 영향을 미쳤다.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가 군사작전에 속도를 올리고 있다”며 “남동부를 둘러싸고 모든 방향에서 격렬한 포격을 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제2의 도시 하르키우와 이지움을 연결하는 전략 지역인 슬로뱐스크와 도네츠크에 총공세를 퍼붓고 있다.

러시아가 서방과의 갈등을 확대할 가능성을 내비친 점도 미국을 자극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가 대리전을 치르려 한다고 주장했다. 3차 세계대전과 핵전쟁 위협이 실재한다는 위협성 발언도 쏟아냈다.

러시아는 이날 수도 키이우에 또다시 미사일을 퍼부었다. 러시아의 목표가 우크라이나 남동부 점령에 국한된 게 아님을 상기시켰다. 서방과의 갈등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의미기도 했다.

무엇보다 미국은 러시아 너머를 보고 있다. 미국 고위 인사들의 잇단 발언에서 그 의도를 엿볼 수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전쟁의 비용이 적지 않지만 공격에 굴복할 경우 더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말했다.

존 코닌 공화당 상원의원은 “민주주의를 위협한 세력을 어떻게 다루는지는 중국 등 다른 위협국에 보내는 메시지”라며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원하는 미국은 우크라이나 시민을 보호할 수 있는 무기를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그 잠재적 위협자 중 하나가 중국임을 분명히 했다. 그는 전날 의회에 출석해 우크라이나 전쟁 결과가 대만에 대한 중국 입장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블링컨 장관은 “중국이 우크라이나 사태를 매우 주의깊게 지켜보고 있다”며 “40개 이상 국가들이 러시아의 침공에 막대한 대가를 묻기 위해 단결했고, 이것이 대만 문제에 있어 중국의 셈법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마크 밀리 미국 합참의장도 “이번 전쟁으로 국제안보질서가 중대한 위기에 처했다”며 “러시아 침공에 대응하지 않고, 대가를 묻지 않으면 2차 대전 이후 구축된 안보질서가 사라진다”고 지적했다.

우크라이나를 돕는 일이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는 길이고, 이를 위협한 러시아에 대가를 치르게 하는 일이 곧 미래의 잠재적 위협을 예방하는 길이라고 보는 것이다. 미국은 결국 미래의 적을 상대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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