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에너지 협박 먹히나... 유럽, ‘최후통첩’ 수용 움직임

입력 2022-04-29 16:55 수정 2022-04-29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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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 지급 후 루블로 환전 ‘제재 우회’
독, 러시아산 수입 중지 시 “경제 침체 우려”
오스트리아, 연료 수입의 80% → 러시아산
EU “제재 위반 가능성 여전”

▲독일 시민활동가들이 4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산 에너지를 수입해선 안 된다는 메시지를 담은 "살인자들을 위한 돈은 없다. 석유와 가스 거래를 중단하라"(NO MONEY FOR MURDERERS, STOP THE OIL AND GAS TRADE)는 구호를 프랑크푸르트의 러시아 영사관 건물 벽면에 붉은색 조명으로 비추고 있다. 프랑크푸르트/AP연합뉴스
▲독일 시민활동가들이 4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산 에너지를 수입해선 안 된다는 메시지를 담은 "살인자들을 위한 돈은 없다. 석유와 가스 거래를 중단하라"(NO MONEY FOR MURDERERS, STOP THE OIL AND GAS TRADE)는 구호를 프랑크푸르트의 러시아 영사관 건물 벽면에 붉은색 조명으로 비추고 있다. 프랑크푸르트/AP연합뉴스

유럽 국가들이 러시아 은행 가즈프롬방크에 계좌 개설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기업들은 이미 계좌 개설을 마쳤다. 러시아산 가스 공급 중단 사태를 막기 위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요구한 조건을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28(현지시간) CNN에 따르면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가스 유통사들이 유럽연합(EU)의 제재를 준수하면서도 루블로 결제해야 한다는 러시아의 최후통첩을 받아들일 방법을 찾고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 후 서방 제재에 동참하는 비우호국 EU 리스트를 만들고, 이들에게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구매하려면 루블로 지급할 것을 통보했다. 이를 어길 시 가스 공급을 중단하겠다고 위협했다.

실제로 러시아는 전날 폴란드와 불가리아에 가스공급을 중단했다. 양국은 러시아의 루블 결제 요구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EU는 러시아의 에너지 무기화에 강경한 입장이다. 지난주 러시아산 에너지 구입 시 유로화로 비용을 지불하자는 지침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탈리아, 헝가리, 독일 등에서 러시아의 요구를 받아들이려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러시아의 제안을 받아들이려는 국가들은 EU 제재를 위반하지 않고도 러시아의 요구를 들어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

3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만든 법령에 따르면 러시아 기업과 거래하는 소비자는 러시아 은행인 가즈프롬뱅크에 2개의 계좌를 개설해야 한다. 소비자가 한 계좌에 유로나 달러로 대금을 지불하면 가즈프롬뱅크가 이를 루블로 환전한 후 나머지 계좌를 이용해 최종적으로 러시아 기업에 변환된 루블로 결제하기 위함이다. 러시아는 루블로 결제가 돼야 거래가 완료된 것으로 간주한다.

가디언은 28일 헝가리는 이 방법에 긍정적이며 독일, 이탈리아, 오스트리아의 에너지 대기업은 러시아 은행 계좌 개설을 고려 중이라고 보도했다.

독일 에너지 기업 우니퍼는 러시아산 가스를 구매할 때 환전 계좌를 이용해 유로화를 사용할 수 있다며 “자사는 거래처와 구체적인 결제 방식에 대해 논의중이며 독일 정부와도 긴밀히 협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우니퍼 대변인은 “유럽에 본사를 둔 은행이 아니라 러시아에 본사를 둔 은행에 유로로 지불하는 것”이라며 “러시아산 가스를 수입하지 않으면 단기적으로 문제가 생길 수 있을 뿐 아니라 독일 경제에 엄청난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오스트리아 에너지 기업인 OMV과 이탈리아 최대 에너지 기업 에니도 루블화로 비용을 낼 준비를 하고 있다.

28일 블룸버그에 따르면 EU 회원국에 해당하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4개 유럽 기업이 이미 루블로 러시아 에너지 기업과 거래를 마쳤고, 10개 기업이 가즈프롬뱅크에 계좌를 개설했다.

유럽에서는 폴란드와 불가리아를 보며 다음 타자가 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퍼지고 있다. 많은 유럽 국가들의 러시아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만큼 경제 위축에 대한 불안도 있다.

독일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전 전체 가스 수입의 약 55%를 러시아에 의존했다. 전쟁이 시작된 후로는 35%로 줄였으나 극심한 경기 침체를 피하기 위해서는 최소 내년까지 러시아산 가스를 수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석유 수입량의 35%, 석탄 수입량의 절반을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전날 “러시아산 원유와 가스 수입이 중단되면 독일이나 유럽 전체에 사회경제적으로 여파가 클 것”이라며 “독일에서는 수십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수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오스트리아 연료 수입에서 러시아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80%에 달한다.

하지만 제재 우회가 생각만큼 간단치 않다는 분석도 있다. 거셜 라메시 리스타드에너지 선임 애널리스트는 “환전 과정에 제재 대상이 엮일 가능성이 있다”며 “소비자 측에서는 구체적인 상황을 확인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EU도 환전 계좌를 이용한 우회는 제재 대상인 러시아의 중앙은행이 개입된 채 이뤄지기 때문에 제재 위반이 될 수 있다고 본다. EU는 이달 초 “환전에 얼마나 소요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외화(유로‧달러)가 러시아 정부 혹은 중앙은행에 묶여있는 상태가 지속될 수 있다”며 “자칫하면 EU 기업들이 러시아에 승인한 대출로 간주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논란의 여지는 남아 있다. 지난주 발표된 EU 지침에 따르면 러시아 법령도 유럽 기업들이 유로나 달러로 지불한 그 단계에서 거래가 완료된 게 아니라고 주장할 수 없다고 명시하기 때문이다. 이후 루블화 전환이 이뤄지더라도 기술적으로 유럽 기업들이 제재를 위반한 건 아니라는 의미다.

다만 지침은 유럽 기업들이 1차적으로 유로‧달러로 대금을 지불하고 거래가 완료됐음을 선언하더라도 “러시아로부터의 확인”을 요구하고 있어 이 역시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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