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연아, 뭐가 그리 바빠서 빨리 갔니…” 영화인파에 눈물바다된 강수연 영결식

입력 2022-05-11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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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작이 된 '정이' 촬영 당시 고인의 모습 (박꽃 기자 pgot@)
▲유작이 된 '정이' 촬영 당시 고인의 모습 (박꽃 기자 pgot@)
11일 오전 고 강수연의 영결식이 열린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 영화인파가 몰려들어 눈물바다를 이뤘다. 강릉국제영화제 김동호 이사장, 임권택 감독, 배우 설경구, 문소리, 연상호 감독의 추도사가 차례로 이어지는 동안 곳곳에서 훌쩍이는 울음소리가 끊임없이 터져 나왔다.

김동호 이사장 “월드스타라는 왕관 쓰고 명예, 자존심 지키려 끝까지 버텨”
임권택 감독 “수연아, 뭐가 그리 바빠서 빨리 갔니… 편히 쉬어라”

배우 유지태가 사회를 맡아 진행된 이날 영결식은 고인을 기리는 참석자 전원의 묵념 이후 강릉국제영화제 김동호 이사장의 추도사로 시작했다.

김 이사장은 "모스크바에서 처음 만난 지 33년이 흘렀습니다. 당신은 월드 스타라는 왕관을 쓰고, 명예와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 끝까지 잘 버티면서 살아왔습니다.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를 장착하고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도 평화로운 모습으로 누워있는 당신을 보면서 만감이 교차했습니다"라며 슬퍼했다.

▲고 강수연 영결식에서 발언하는 김동호 이사장(왼쪽) 사회보는 배우 유지태(오른쪽) (박꽃 기자 pgot@)
▲고 강수연 영결식에서 발언하는 김동호 이사장(왼쪽) 사회보는 배우 유지태(오른쪽) (박꽃 기자 pgot@)

김 이사장과 고인은 부산국제영화제가 ‘다이빙벨’ 상영 문제로 정치적 위기에 빠졌을 때 함께 투입돼 영화계 구원투수 역할을 했다.

그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장시간 머물며 영화제의 상징이 되었습니다”면서 “강한 리더십과 포용력으로 후배들을 사랑하고 믿음으로 뒤따르게 하면서 살아왔습니다”고도 했다.

‘씨받이(1986)', ‘아제아제 바라아제(1989)' 등 강수연의 상징과도 같은 작품을 연출하며 오랜 연을 이어 온 임권택 감독은 “수연아, 뭐가 그리 바빠서 빨리 갔니… 편히 쉬어라”며 말을 길게 잇지 못했다.

설경구 “나는 영원히 선배님의 조수, 알려지지 않은 배우일 때 하나부터 열까지 알려줘”
문소리 “그곳에서 고 이춘연, 김지석과 한잔 하길…”

‘송어(1999)'에서 고인과 처음 만난 배우 설경구는 “영화 경험이 거의 없고 알려지지도 않은 배우였던 저에게 하나부터 열까지 세세하게 가르침과 도움을 주며 이끌어주셨다”고 20여 년 전의 기억을 돌이켰다.

그는 “예산이 적어 모든 게 열악한 상황에 속상해하면서 촬영을 마칠 때까지 팀 막내, 써드, 세컨, 퍼스트의 회식을 주기적으로 챙기셨습니다. 저를 그 자리에 함께 참석시켜 직접 보여주고 알려주고 가셨습니다. 저는 선배님의 조수였던 것이 너무 행복했습니다. 영원히 선배님의 조수였습니다”라고 고인과의 추억을 회상했다.

▲고 강수연 영결식을 찾은 영화인파 (박꽃 기자 pgot@)
▲고 강수연 영결식을 찾은 영화인파 (박꽃 기자 pgot@)

배우 문소리는 고인의 사망 소식을 들은 뒤 친구와 함께 ‘미미와 철수의 청춘 스케치(1987)'의 LP를 들었다며 당시 대사인 “야, 김철수. 내가 반말해서 기분 나쁘니?”를 따라 읊조렸다. “그때도 여전히 당당한 언니 목소리가 너무 좋아 울면서 또 웃으면서 LP판 뒤에 쓰인 글도 한참을 들여다봤어요”라고 울먹였다.

또 “거기 가면 이춘연 대표님, 부산국제영화제 김지석 선생님과 한잔 하세요”라며 앞서 영화계를 떠난 ‘여고괴담’ 제작자인 고 이춘연, 부산국제영화제 설립부터 안정화까지 중추 역할을 담당한 고 김지석을 함께 언급했다.

연상호 감독 “영결식 끝나면 작업실로 돌아가 선배님 얼굴과 마주해야 해, 강수연 연기는 현재 진행 중”

마지막 추도사는 연상호 감독이 맡았다. 고인과 가장 최근까지 ‘정이’를 작업했다.

연 감독은 “2011년 제가 만든 독립 장편 애니메이션이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돼 운 좋게 몇 개의 상을 받았는데, 시상식이 끝나고 작품 프로듀서와 함께 담배를 피우고 있을 때 칸영화제의 한 관계자가 저를 불러 영어로 엄청나게 열정적으로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와 프로듀서 둘 다 영어를 전혀 할 줄 몰랐기 때문에 ‘예스’라고 반복할 수밖에 없었는데, 지나가다가 그 모습을 본 강수연 선배님이 다가와 통역을 해주셨습니다”라고 회상했다.

그는 “그때 칸영화제 관계자가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하나의 의문만은 지금까지도 남아있습니다”면서 “한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배우이자 스타가 해외 영화제 관계자 앞에서 쩔쩔매는 독립 애니메이션 감독을 위해 왜 통역을 자처하셨을까 하는 것입니다”라고 했다.

이어 “연기로서 한국 영화를 세계에 알렸고, 그 뒤에는 영화제 일을 하면서 한국 영화를 세계에 알리셨습니다. 마치 자기 일처럼 나서셨고, 자신이 한국 영화인 것처럼 앞서 주셨습니다”고 추모했다.

▲지난 7일 세상을 떠난 배우 故 강수연의 빈소가 8일 서울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돼있다. 조현욱 기자 gusdnr8863@ (이투데이DB)
▲지난 7일 세상을 떠난 배우 故 강수연의 빈소가 8일 서울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돼있다. 조현욱 기자 gusdnr8863@ (이투데이DB)

고인의 유작이 된 ‘정이’의 후반작업을 앞둔 연 감독은 “영결식이 끝나면 저는 강수연 선배님과 영원한 작별을 하는 대신 다시 작업실로 돌아가 선배님과 얼굴을 마주하고 당신에게 선물할 새 영화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합니다”라면서 “배우 강수연의 연기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입니다. 선배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선배님의 새 영화를 선보이기 위해 끝까지 동행하겠습니다”라고 했다.

또 “강수연 선배님께 시나리오를 드린 뒤 ‘한 번 해보자’라고 말씀하셨을 때 정말 뛸 듯이 기뻤고 마치 든든한 백이 생긴 것 같았습니다. 마지막 순간 제가 든든한 백이 되어드리겠습니다”라고 다짐했다.

이날 영결식 이후 발인을 거쳐 고 강수연은 장지인 경기도 용인시 용인공원에 모셔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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