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테라-루나,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입력 2022-05-16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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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와 디지털 자산의 궁합은 최악이다. 테라-루나 사태 이후 더 명확해졌다. 디지털 자산 시장의 역동성을 따라갈 수 없다. 수습차 내놓은 대안을 보면 더욱 명확해진다. 당장 촌각을 다퉈 해법을 내놔야 할 시점에 '디지털 자산 기본법'을 제시했다. 몇 년이 걸릴지 모를 기본법 제정에 나선들 시시각각 변하는 디지털 자산 시장에 대처할 수 있을까.

업계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스테이블 코인의 뇌관을 윤 정부의 인수위 시절부터 지적해왔다. 미국의 CBDC(중앙은행 디지털화폐), 스테이블 코인에 대한 태도 변화가 감지된 탓이다. 그간 미 바이든 정부는 중국이 CBDC 도입에 박차를 가하자 달러와 연동된 스테이블 코인 쪽에 방점을 찍어왔다. 이후 테라와 같은 사설 스테이블 코인 업체들이 기세를 불리자 관련 규제를 강화하고 CBDC 개발로 선회하는 모양새였다. 전문가들이 물밑으로 인수위에 여러 우려를 타진해왔지만, 디지털 자산 시장에 대한 몰이해로 수습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더욱 우려되는 점은 수습 방식이다. 2018년 비트코인 1차 부흥기로 박상기의 난이 발생했을 때의 일이다. 가상자산 거래소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각 정부 부처가 의견을 모아왔다. 법무부의 입장은 '가상자산 거래소 전면 폐지'였다. 금융위원회 등 금융 당국의 담당자들이 실명계좌 도입으로 대표되는 양지화 전략을 내놓으며 무산되긴 했다. 다만 새로운 영역을 대하는 법 집행자의 태도에 주목해봄 직하다. 정밀한 수술보다 환부 자체를 도려내 버리는 과격한 방식이, 과연 디지털 시장에 적합할까.

'윤석열 정부 국정과제 세부 이행계획서'를 보면 더욱 암담하다. '디지털자산 기본법' 관련 국회 논의에 적극 참여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국제기구 및 주요국 규제 논의 동향을 반영한 정부안 마련 △BIS(국제결제은행), FSB(금융안전위원회), 미국ㆍEU 규제 당국과의 적극적인 협의 및 공조체계 구축 추진 병행이 전부다. 디지털 자산에 능통한 교수들에게 몇 개월짜리 용역을 맡겨 주요국 규제를 파악하고, 다시 몇 개월에 걸쳐 보고서를 작성하고, 무난한 내용을 골라 정부안으로 빚어내는 뻔한 그림이다. 그 사이 디지털 자산 시장은 법망을 벗어난 서비스들로 채워질 것이다. 제2의 테라-루나 사태가 발생했을 때, 개입 권한이 없다 항변하기 너무도 쉽다.

금융당국과 정부 관계자들은 '디지털' 이야기만 나오면 눈을 굴린다. 가상자산 이야기엔 흥미를 보이면서도 답을 내놓기 주저한다. 2018년, 글로벌 최초로 가상자산에 대한 규제를 만들어내던 태도와 사뭇 다르다. 관성에 기대기보다,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역동성을 기대한다.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기에는, 외양간이 너무도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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