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자살연구협회에 따르면 한 사람의 극단적 선택이 가족, 친지, 동료 등 가까운 사람들 6명에게 정신적으로 심각한 영향을 끼친다고 한다. 세계보건기구도 극단적 선택 사망자 1명이 발생할 경우 5~10의 유족과 지인에게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고 경고하고 있다.
2015년부터 3년간 한국에서 최초로 자살생존자 실태조사를 진행한 한 교수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스스로 목숨을 끊은 1명이 약 6명의 가족에게 영향을 미치고, 평균 20명 정도의 주위 사람들이 자살생존자로 영향을 받게 된다’고 한다. 자살생존자란 주변인의 극단적 선택 이후 남겨진 사람, 즉 주변의 중요한 사람이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을 떠난 뒤 사회 심리적 스트레스를 겪는 사람을 뜻한다. 우리나라처럼 인구밀도가 높고 관계지향적인 사회에서는 자살생존자의 범위가 더 넓다고 한다. 코로나바이러스만 전염되는 게 아니라 극단적 선택도 전염력이 매우 강하다는 뜻이다.
2020년 기준 극단적 선택을 한 사망자는 1만3195명. 그런데 극단적 선택 시도자 수는 실제 극단적 선택으로 인한 사망자 수의 20~40배로 추정되고 있다. 이를 기준으로 본다면 한 해 동안 극단적 선택을 결심하고 실행에 옮긴 사람은 26만 명에서 52만 명에 이른다는 계산이 나온다. 게다가 이들이 가족이나 친구 등 주변인들에게 미치는 영향까지 생각하면 극단적 선택의 영향권에 있는 위험자는 더욱 늘어난다. 극단적 선택의 위험성을 이렇게 확대해서 보는 이유는 실제로 가족 중에 극단적 선택을 한 사람이 있는 경우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극단적 선택을 할 확률이 4.2배 높았고, 최근 1년간 주변인, 건강, 포부 등 상실경험이 있는 경우는 9.8배가 높았으며, 친구나 동료를 잃었을 때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자살 생각 척도가 3.7배에 달했기 때문이다.
극단적 선택을 한 사람이 주변인에게 미치는 영향은 친밀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더 강하게, 더 오래 받는다고 한다. 처한 여건이 경제적 문제나 건강 악화, 실패 또는 상실, 지지체계 미흡 등 취약한 상황이라면 영향이 더 크다고 한다. 한 사람의 극단적 선택을 가볍게 볼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우리가 극단적 선택을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제로 인식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현주 서울 강서구보건소 사회복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