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00개 기업 최근 탈세계화 관련 언급 17년 만의 최고 수준
포럼 참석자들 ‘세계화 시대’ 종말 이구동성
코로나19로 차질을 빚었던 기간이 길었던 만큼이나 세상은 2년 전 마지막 대면 포럼 때와 전혀 다른 모습이라고 22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다. 장기간 이어진 저금리 기조와 낮은 물가는 사라지고 치솟는 인플레이션과 전쟁 여파가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 한층 누그러지긴 했지만 코로나19 위협은 여전히 남아 있다.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하듯 이날 개막한 포럼은 ‘전환기의 역사: 정부 정책과 기업 전략’을 주제로 논의를 진행하게 된다. 일각에서 전환기의 역사라는 주제의 올해 포럼이 30년간 명맥을 이어왔던 ‘세계화 시대’의 종말을 시사하는 자리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전 세계 상당수 기업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 혼란, 경제 전망 악화 등 온갖 변수 속에서 세계화 전략을 포기를 검토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 센티오가 전 세계 9000개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올해 1분기 실적 발표와 투자자설명회와 같은 공식 행사에서 니어쇼어링, 온쇼어링, 리쇼어링 등 탈(脫)세계화 관련 언급 건수는 2005년 이후 17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리쇼어링은 해외에 진출했던 기업이 다시 자국으로 생산기지를 옮기는 본국 회귀 현상을 말하는 것이고, 온쇼어링은 해외 기업의 생산기지를 본국에 유지하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니어쇼어링은 생산기지를 본국과 근접한 국가로 재배치하는 것을 말한다.
포럼 참석자들도 이구동성으로 ‘세계화 시대’의 종말을 언급했다.
전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자 현재 골드만삭스 인터내셔널 의장인 조제 마누엘 바호주는 FT와 인터뷰에서 “팬데믹으로 미국과 중국 사이의 긴장이 높아졌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며 “이런 모든 상황은 세계의 디커플링(분리화)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고조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온쇼어링, 재국유화, 지역화가 기업의 최신 트렌드가 되면서 세계화 속도를 늦추고 있다”면서 “현재로선 무엇이 승리할지는 알 수 없다”고 덧붙였다.
세계 최대 사모펀드 워버그핀커스의 찰스 칩 케이 최고경영자(CEO)는 “수년간 시장에 매우 강력한 순풍으로 작용했던 저물가와 저금리 시대가 이제 종말에 접어들면서 지정학적 이슈가 투자 결정의 핵심 요소로 자리잡게 됐다”고 분석했다.
아시아 최대 제약회사 다케다의 크리스토프 웨버 CEO는 “원가절감을 위해 아웃소싱을 기반으로 하던 세계화 시대는 끝났다”면서 “앞으로도 계속 국제시장, 특히 중국에서 성장을 추구하겠지만 초점을 세계화에서 좀 더 지속 가능한 형태의 세계화로 옮기고 있다. 공급망 위험을 어떻게 제거할 것인가가 문제”라고 설명했다.
그동안 글로벌 브랜드화 전략을 취했던 명품 회사들도 세계화에 대해 재고하고 있다. 발렌티노와 발망 브랜드를 보유한 라쉬드 모하메드 라쉬드 회장은 “사업이 지역화하고 있다. 현재 런던과 파리, 밀라노 매장들은 과거 어느 때보다 더 지역 주민에게 더 많은 제품을 팔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