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지붕 수리하라” 지시 따르다 추락사…경찰 ‘불입건’에 검찰도 못 들여다본다

입력 2022-05-25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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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에서 주차장 지붕을 공사하던 한 노동자가 추락해 사망했다. 사진은 사고가 일어난 현장의 사진으로 지붕을 구성하던 천막이 찢어져 있다. (법무법인 씨케이 제공)
▲경기도 부천에서 주차장 지붕을 공사하던 한 노동자가 추락해 사망했다. 사진은 사고가 일어난 현장의 사진으로 지붕을 구성하던 천막이 찢어져 있다. (법무법인 씨케이 제공)

지난 3월 경기도 부천 한 주차장에서 지붕 공사를 하던 노동자 A 씨가 추락해 사망한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다. 철강금속도금업 B 사의 C 대표 지시에 따라 지붕 위로 올라갔다가 떨어지며 사고를 당한 것이다. 경찰은 이 사건을 단순 ‘사고사’로 보고 종결했으나 A 씨의 유족들은 제대로 된 경찰수사로 사고의 책임 소재를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25일 이투데이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은 당시 사고 정황과 경위를 봤을 때 범죄 혐의점이 없는 사고로 판단했다. 그러나 유족 측의 이야기는 다르다. 안전조치 없이 부실한 천막 위에 올라가 지붕 공사를 지시한 도급인 C 대표에게 그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유족의 고소장에 따르면 도급인인 C 대표는 개인사업자인 A 씨에게 업무를 구체적으로 지시했다. 기존 주차장을 확대하고 주차장 지붕을 보강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당시 현장 사진과 고소장 내용 등을 살펴보면, 주차장은 애초에 안전한 건물이 아닌 가구조물 형태였다. 쇠파이프 등을 세워 골격을 만들고 지붕에는 노후화된 천막이 씌워진 모습이다. 그러나 유족들은 C 대표가 A 씨에게 지붕 천막 위에 판넬을 올리고, 다시 천막을 덮어 보강해달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설명했다.

바닥에는 사다리도 안전매트도 없었다고 한다. 아무런 안전장치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A 씨는 5m 높이의 천막 위로 올라갔고,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한 낡은 천막은 그대로 찢어졌다. 아래로 떨어진 A 씨는 곧바로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치료를 받던 중 결국 숨을 거두고 말았다.

유족의 법률 대리인인 최진녕‧이영주 법무법인 씨케이(CK) 변호사는 B 사와 C 대표에게 업무상과실치사 위반 소지가 있다고 보고 있다. 천막은 사람이 올라가기에 위험한 상태였다. 경찰불입건결정서에도 ‘노후된 천막’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하지만 사고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의무는 이행하지 않았다는 것이 유족과 변호인들의 주장이다. ‘작업 위치의 높이가 2미터 이상일 경우 작업발판을 설치하거나 안전대를 착용하게 하는 등 위험 방지를 위해 필요한 조치를 할 것’이라고 규정한 산업안전보건법에도 어긋난다.

그러나 경찰은 ‘혐의없음’으로 불입건하고 사건을 종결시켰다. 사건 책임 소재를 따질 수 없게 된 것이다. 경기부천오정경찰서는 불입건결정서를 통해 “변사자의 사인에 대한 범죄혐의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유족과 관련자 진술, CC(폐쇄회로)TV 녹화 자료 등을 통해 A 씨가 작업을 하던 중 추락한 사실은 확인됐지만, 범죄 혐의는 없다고 봤다. 산업재해 등 사고성 사망 가능성에 대한 언급도 없었다.

▲경기도 부천에서 주차장 지붕을 공사하던 한 노동자가 추락해 사망했다. 사진은 사고 전 현장 사진. (법무법인 씨케이 제공)
▲경기도 부천에서 주차장 지붕을 공사하던 한 노동자가 추락해 사망했다. 사진은 사고 전 현장 사진. (법무법인 씨케이 제공)

A 씨의 둘째 아들은 사건 발생 당시 현장에서 아버지의 일을 돕고 있었다. B 사 직원들이 아버지에게 업무를 지시하고 요구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봤다.

“B 사에서 아버지에게 유독 지시사항이 많았고 무리한 요구도 있었습니다. 지붕의 낡은 천막 뿐 아니라 용접과 기둥 건물 균형을 잡을 때 등 많은 상황이 위험하지만 B 사는 저희 아버지에게 와서 ‘조심하라’는 말은 없었습니다. 업무 지시만 여러 차례 했습니다.”(둘째 아들)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사고 순간까지 목격했다. 바닥에 떨어진 아버지를 발견하고선 직접 심폐소생술을 했고 구급차로 이송될 때도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봤다. 병원에서 ‘어렵다’는 말을 들으며 아버지를 보내게 됐다.

그런데 사고 직후 진행된 경찰 조사가 다소 허술하고 미흡한 느낌이었다고 둘째 아들은 말했다.

“경찰 조사는 한 시간에 걸쳐 진행됐던 것 같은데 굉장히 단순하고 빠르게 끝내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왜, 어떻게 떨어졌는지’에 대한 이야기만 물었지 ‘왜 올라갔는지’ ‘누가 시켰는지’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습니다. 물론 저도 아버지의 사망으로 충격도 받고 경황이 없어서 그런 내용을 먼저 말하지도 못했지만 경찰은 먼저 물어보고 살펴봤어야 했던 거 아닌가요.”

검찰은 경찰을 감시하고 견제한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검찰의 감시를 받을 수 없다. ‘불입건’으로 수사가 종료된 것으로 검찰도 들여다볼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1월 시행된 검경수사권 조정 이후 생긴 허점이다. 검경수사권 조정 이전에는 경찰이 1단계 의견을 내면 검찰은 사건을 살펴본 뒤 최종 처분을 내렸다. 조정 이후에는 경찰이 사건을 1차 종결하면 검찰은 고소‧고발인의 이의신청 등 예외적인 경우에만 다시 사건을 들여다봤다. 그러나 검수완박이 시행되고 나면 이러한 예외도 없어질 것으로 보인다. 설령 경찰에서 혐의점을 발견해 입건한다 할지라도 검찰에서 사건을 한 번 더 살피기 어려워질 수 있다.

이를 보완할 제도도 아직 마련되지 않았는데 4개월 뒤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이 시행된다. 최진녕 변호사는 검수완박 시행으로 서민들의 피해가 더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검수완박 입법으로 힘없는 서민들이 경찰수사단계에서 제대로 권리 구제를 받지 못해 형사 피해자가 될 수 있습니다. 범죄가 은폐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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