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루블화의 가치가 최근 치솟고 있습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1달러에 143루블 수준으로 급락했던 화폐 가치는 다시 무섭게 올라 4년 만의 최고 수준을 기록했습니다.
서방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는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를 강화하고 있는데요. 그런데도 러시아 루블화의 가치가 급등하는 이유가 뭘까요?
루블화뿐만이 아닙니다. 러시아 증시도 회복 중입니다.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증시 급락을 우려해 한달 간 휴장을 결정했던 것이 무색할 지경입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국제사회로부터 전방위적 경제제재를 당하고 있는데요. 오히려 루블화 가치는 급등하는 이상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겁니다. 폭락했던 루블화 가치는 올해 들어 약 30% 상승했는데요. 이는 전 세계 화폐 가운데서도 가장 높은 상승률입니다.
러시아 증시도 좋은 흐름을 보이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침공 전 러시아 대표 주가지수인 RTS 지수는 1400선에 거래됐는데요. 침공 후 한때 700선까지 떨어졌다가 최근 1270선까지 회복됐습니다.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증시가 급락하고 있는 것과는 반대되는 양상입니다.
러시아산 가스와 원유에 대한 수입 의존도가 30~40%에 달하는 유럽연합(EU)은 러시아 측의 요구를 무시할 수 없는 처지입니다. 24일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유럽이 에너지 대란을 피하기 위해 러시아의 루블 결제 요구를 수락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습니다. 러시아 측은 러시아 가스를 사는 외국 기업 중 절반가량이 루블화 결제를 위한 계좌를 개설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러시아 정부의 강력한 환율방어 정책도 루블화 가치를 올리는 데 한몫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는 루블화 유출을 막기 위해 내국인에게는 환전을 금지했고, 외환 계좌 인출도 제한했습니다. 외국인에게는 보유주식 매도를 금지했죠. 또 통화가치 방어를 위해 한때 기준금리를 20%까지 끌어올리기도 했습니다.
특히 러시아 정부는 자국 에너지 수출 기업들에 외화 수입 대금 80%를 루블화로 환전하도록 의무화했는데요. 이 같은 조치가 루블화에 대한 수요를 더욱 끌어올린 것으로 보입니다.
증시가 오르고 있는 것도 에너지자원 덕분입니다. 최근 러시아 증시 상승을 끌고 있는 종목들이 가스프롬과 로즈네프트, 루코일 등 에너지 관련 기업들이기 때문입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서방의 제재 효과를 공개적으로 조롱하고 나섰습니다. 23일 러시아 소치에서 알렉산더 루카센코 벨라루스 대통령과 회동한 푸틴 대통령은 “서방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경제는 잘 돌아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루카센코 대통령은 “서방 제재가 오히려 양국의 경제 개발에 집중할 수 있는 추진력이 됐다”고 맞장구쳤습니다.
실제로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올해 사상 최대 무역흑자를 기록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에너지 가격 급등이 주된 이유인데요. 국제금융협회(IIF)는 올해 러시아의 무역흑자가 2500억 달러(약 321조 원)로, 지난해 1200억 달러의 2배가 넘을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같은 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국제 사회에 러시아 제재에 적극적으로 동참해 줄 것을 호소했습니다. 그는 세계경제포럼(WEF) 연차총회인 다보스포럼 화상 연설에서 “석유 금수, 러시아 은행 차단, 러시아와의 완전한 무역 중단을 포함해 러시아의 공격을 멈추기 위한 추가 제재가 필요하다”면서 “제재는 최대한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