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리포트] “설명해도 다짜고짜 욕설”…웨어러블캠 실효성은 ‘의문’

입력 2022-05-3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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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원 담당공무원 89% "적절한 응대에도 지속적으로 불평 제기"
웨어러블캠 도입 속도 내지만 보관ㆍ체계 부실 등 갈 길 멀어

#. “집앞에 인분이 있는데 왜 주민센터에서 안 치워주냐.”
동주민센터에 근무하는 A 씨는 구에서 관리하는 도로나 공공시설만 청소대상이라고 설명했지만, 민원인은 사유지 내 발생한 문제까지 해결하라고 요구했다. 주민센터 소관이 아니라고 정중히 말했지만 막무가내로 요구하며 욕을 해 듣기 힘들었다. 결국 현장에서 가서 치우고 왔다.

#. 공무원 B 씨는 이행강제금 관련 국토교통부에 이의제기해야 되는 상황이어서 안내해드렸으나, 민원인은 그 자리에서 바로 욕설을 하며 해제처리해달라고 요구했다. 너무 심한 욕설이어서 옆에 있는 팀장이 제지했지만 듣지 않았다. 결국 청사 내 방호인력까지 와서 제지를 하고 나서야 돌아갔다.

한국행정연구원이 지난해 11월 24일부터 29일까지 서울시 본청과 자치구 등 민원 담당공무원 519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들은 6개월간 최소 1회 이상 ‘적절한 응대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불평을 제기(89.2%)’, ‘제도적으로 불가능한 민원에 대해 무리하게 요구(89.0%)’, ‘민원인 자신의 불쾌감을 드러내는 무언의 행동(88.6%)’, ‘모든 잘못을 민원 담당 공무원의 잘못으로 탓하는 행위(87.1%)’, ‘직접 관련 없는 나와 우리 조직에 대해 맹목적으로 비난(85.2%)’, ‘모욕적인 비난, 고함, 욕설 등 의 행위(80.9%)’ 등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물리적 폭행을 경험한 공무원은 10명중 3명꼴인 29.7%에 달했으며,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의 협박(23.3%)이나 원치 않는 신체접촉이나 성희롱(18.1%)도 10명중 2명꼴로 집계됐다.

이 같은 악성 민원은 업무 효율성 저하 등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민원담당 공무원들의 직무와 관련해 느끼는 심리적 피로도(7점 척도)를 확인한 결과, ‘업무 수행에 있어 정서적으로 지쳐있음을 느낌(5.15점)’에 가장 강하게 동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직무에 대해 실망감을 느낌(4.89점)’, ‘현재 직무를 시작한 후 업무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었다고 생각함(4.52점)’ 순이었다.

정부는 매년 증가하고 있는 행정기관 악성 민원인의 폭언과 폭행 등으로부터 민원 업무 담당자를 보호하고 지원하기 위해 ‘민원 처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 일부 개정안을 마련해 지난달 14일 입법예고했다. 개정안에는 안전한 민원환경 조성을 위한 △영상정보처리기기·녹음전화·호출장치 등 안전장비 설치 및 안전요원 배치 △위법행위 증거 수집 등을 위한 휴대용 영상음성기록장비 운용 △폭언·고성 등으로 업무 지연하는 민원인 퇴거 조치 등을 신설해 민·형사상 처벌이 가능토록 할 예정이다.

앞서 3월 행안부는 CCTV, 비상벨 등 안전시설 설치 의무화, 안전요원 배치 등 내용이 담긴 민원행정 및 제도개선 기본지침을 각 자치구에 전달했다. 이와 함께 웨어러블캠 관련 사례를 공유했다.

4월 서울 자치구 중 최초로 웨어러블캠을 도입한 동대문구는 33개의 웨어러블캠을 22개 부서에 배부했다. 현장 지도 점검이 필요한 보건 위생과, 건설관리과 등과 강성 민원이 발생하는 동주민센터에서 신청이 많았다. 웨어러블캠은 배달업무를 하시는 분들이 주로 사용하는 목걸이 형태로 대당가격은 50만~60만 원대다. 민원 담당자들이 웨어러블캠을 항시 착용하고 근무하는 것은 아니다. 악성 민원인이 폭언, 폭행 등을 할 경우 다른 직원이 목에 걸고 촬영을 고지한 후 영상촬영을 시작하는 식이다. 구 관계자는 “몸에 부착이 가능하고 녹음기능도 있어 예방효과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기대했다. 다만 아직 사용된 사례는 없다.

강남구도 33대를 운영 중이다. 최근 마을주민들이 민원을 제기하며 동주민센터를 점거하는 상황에 폭언 등 위험성이 있어 착용 후 촬영했다. 관계자는 “CCTV는 녹음 기능이 없다”며 “추후 형사 처리할 일이 생기면 증거 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착용했다”고 말했다.

앞으로 자치구에 웨어러블캠 도입이 늘어날 것으로 보이지만 실효성이나 관리 부분에서는 아직 갈길이 멀어 보인다. 동주민센터에 근무하는 한 공무원은 “민원인이 화가 난 상태에서 촬영을 고지하는 게 쉽지 않을 거 같다”며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될까 걱정된다”고 우려했다.

웨어러블캠을 도입한 지 1년이 돼가는 타 지자체의 경우 실제 사용이 적다보니 기록대장은 있지만 이용 건수나 이용 사례를 기록해 보관하고 보고하는 체계는 부실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웨어러블캠을 도입한 함안군는 “과마다 사용 기록을 하는 정도인데 그런 경우가 아직 없었다”라며 “보고 체계나 규정은 없다”고 전했다. 서울의 한 자치구도 “촬영보관 기간이 따로 있지는 않다. 형사고소 등이 생기는 경우 등 필요에 따라 보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사용 후 기록대장에 작성하는지 일일이 확인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고 밝혔다.

서울시 관계자는 “웨어러블캠 관련 검토하고 있지 않다”며 “영상이나 장치 관리, 개인정보 유출 등에 대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사전예방 조치 등 선제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면서도 웨어러블캠에 대해서는 사회적 합의나 홍보가 더 필요하다고 봤다. 염지선 한국행정연구원 연구위원은 “공공기관에서 웨어러블캠은 악성 민원을 예방하는 차원에서 사용하지만 주민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한다는 불쾌감도 공존할 수 있다”며 “그동안 행안부 지침은 공직자보다 주민 입장 대응 메뉴얼에 가까웠다. 공직자가 피해를 당했을 때를 대비해 웨어러블캠이나 고소 얘기가 나오는데 일선 주민센터에서 당장 반응하기에는 시민들 눈치가 보이는 게 사실”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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