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법무부판 '세도정치'

입력 2022-05-31 05:00 수정 2022-06-01 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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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경제부 기자

새로운 통치 체계나 이념은 선한 의도로 시작하기 마련이다. 소수 권세가를 중심으로 국가를 운영해 백성을 도탄에 빠뜨린 '세도정치' 역시 '정치는 널리 사회를 교화시켜 세상을 올바르게 다스리는 도리'라는 사림(士林)의 통치이념을 근간으로 삼았다. 하지만 권력을 쥔 소수가 전권을 휘두르자 선한 의도는 사라졌다.

정조가 세상을 뜨고 11세에 불과한 순조가 왕위에 오르자, 정조 때 여러 관직을 역임한 김조순이 정조 유탁(遺託·죽은 사람이 남긴 부탁)을 받아 그의 딸을 왕비로 앉힌다. 순조를 보필하면서 '안동 김씨'는 중앙 요직을 모두 독점해 본격적인 세도정치 막을 열었다. 이후에는 '풍양 조씨'가 15년 가까이 세도정치를 하다가 다시 안동 김씨가 권세를 누렸다.

세월이 흘러 왕정 국가인 조선은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한 대한민국으로 변모했다. 하지만 서초동과 과천에서는 '법무부판 세도정치' 초읽기에 들어간 모습이다. 가문이 요직을 차지한 조선과 달리 특정 검찰 라인이 주요 보직에 이름을 올렸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 때부터 거론된 '윤석열 사단'이 본격 등장한 것이다.

법조계에서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시작으로 고검장급부터 법무부 주요 간부들까지 윤석열 라인이 차지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원석 대검찰청 차장검사, 송경호 서울중앙지검장, 금융ㆍ증권범죄 합동수사단을 지휘하는 양석조 서울남부지검장 등은 윤 대통령이 함께 근무했거나 참모로 데리고 있던 인물들이다.

정권 교체기 때마다 '누구 라인'이 등용되는 광경이 벌어진다. 새삼 놀라울 일도 아니다. 특히 윤 대통령부터 한 장관, 그들이 함께 일했던 사람 모두 검찰 내에서는 일 잘하는 사람들로 통한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등 살아있는 권력과 정면대결한 경험이 있고,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윤 대통령 철학도 함께 공유하는 인물들이니 세간의 평가도 나쁘지 않다.

면면을 보면 뛰어난 인물이지만 조선시대 세도정치가 엿보이는 건 기우가 아니다. '윤석열 사단'이 주요 보직을 모두 꿰찬 데다, 법무부가 고위 공직후보자 인사 검증 기능까지 맡으면서 힘도 세졌다. 소위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 통과로 검찰 권력이 약해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검찰은 수사와 기소 권한이 있다. 여기에 검찰 인사를 하는 법무부 장관이 공직자 인사 검증을 진두지휘하면서 법무부 장관이 '소통령'이라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국가 최고 권력인 대통령과 정보ㆍ수사 기능을 가진 검찰을 지휘는 법무부, 요직에 앉은 윤석열 라인까지. 선한 의도대로 인사 검증이 이뤄질지 미지수다. 마음만 먹으면 검찰이 정보를 캐내 특정 인사를 찍어낼 수도 있다. 대통령과 법무부가 권한을 남용해도 견제할 장치도 마땅치 않다. 사실상 한 몸통으로 움직이는 윤석열 라인, 법무부판 세도정치 폐해가 우려되는 이유다.

조선 후기 세도정치 끝은 참담했다. 왕실 외척이 견제 없이 권력을 쥐자 가문이 고위 관직을 독점했고 정치 기강은 무너졌다. 뇌물을 주고 관직을 얻은 관리들이 생겨났고 피해는 고스란히 백성들에게 돌아갔다. 권력이 집중되면 피해는 온전히 소시민에게 돌아간다. 왕정에서 민주주의 국가로 정치체계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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