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채운의 혁신성장 이야기] 누구를 위한 최저임금인가?

입력 2022-06-0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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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 경영학과 교수

최저임금의 계절이 돌아왔다. 노동계는 6월 9일에 열리는 최저임금위원회에서 내년도 최저임금을 1만 원 이상으로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1인 가구 임금노동자의 한 달 최소 생계비 247만9000원을 기준으로 할 때, 적정 시급이 1만1860원은 되어야 한다는 연구를 근거로 내세운다. 올해 시간당 최저임금인 9160원보다 30%가량 올라야 맞출 수 있는 수준이다.

이에 대하여 경영계는 동결 또는 소폭 인상으로 맞서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내년도 최저임금을 올해와 같은 수준으로 ‘동결’해야 한다고 응답한 중소기업인의 비율이 53.2%에 이른다. 소상공인연합회도 코로나19 위기가 아직 종식되지 않았기 때문에 최저임금을 동결해야 한다는 의견을 발표했다. 더 나아가 최저임금의 적용을 업종별 지역별 규모별로 차등화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최저임금법에는 ‘최저임금을 사업의 종류에 따라 차등 적용할 수 있다’라는 규정이 있으나 지난 30여 년 동안 논의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

최근 우리나라의 최저임금은 급격히 인상되어 선진국보다도 높은 수준에 도달한 것으로 밝혀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의하면, 2016~2021년 5년간 한국의 최저임금 인상률은 44.6%에 달한다. 한국의 평균임금 대비 최저임금 비율은 2020년 기준 49.6%로 OECD 30개국 중 3위로 올라섰다. 중위임금 대비 최저임금의 비율도 62.5%로 OECD 30개국 중 7위에 해당한다. 최저임금 수준이 급상승하면서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근로자의 비율이 2020년 기준 15.6%로 나타났다. 일본 2.0%, 영국 1.4%, 미국 1.2%에 비하여 월등하게 높다.

강제력을 갖는 최저임금은 일종의 가격 규제(price regulation)로 그 수준이 과도하게 높아져 중위임금에 다가갈수록 부작용이 크게 발생한다. 무엇보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은 사용자의 인건비 부담을 가중시켜 일자리 감소로 연결된다. 최저임금이 노동생산성 이상으로 인상할 경우 사용자는 자동화·무인화 및 사업장의 해외이전으로 대응한다.

근로자를 보호한다는 취지의 최저임금 인상이 일자리를 걷어가 노동 약자의 실업을 증가하고 취업자와 미취업자 간의 경제적 불균형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는 속언이 딱 맞는 상황이다.

최저임금의 업종별 지역별 규모별 차등적용이 거론된다는 것 자체가 최저임금 수준이 비현실적으로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 최저임금이 현실과 괴리되는 근본적 원인은 최저임금 결정 제도에 있다.

현재 최저임금은 근로자 위원, 사용자 위원, 공익위원이 각각 9명씩 총 27명으로 구성된 최저임금위원회에서 결정한다. 여기서 최저임금을 놓고 근로자 측과 사용자 측이 치열한 공방을 벌인다. 근로자 위원들은 대폭 인상을 요구하고 사용자 위원들은 동결 또는 소폭 인상을 주장한다.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기준은 법에도 규정되어 있으나 각자 자기에 유리한 근거와 자료를 들고 와 팽팽하게 맞대결한다. 매년 한 회사에서 노사가 임금투쟁 하듯이 ‘강 대 강’으로 충돌하는 대립적 구도가 전개되며 양보에 의한 합의는 정치적 패배로 간주된다.

회의가 결렬되는 몇 번의 파행 끝에 공익위원이 중재에 나서 최저임금의 인상폭을 조정한다. 형식적으로는 공익위원이 객관적 위치에서 타협과 합의를 끌어내 조율하는 모양새를 갖추지만, 실질적으로는 정부가 어느 쪽에 힘을 실어주느냐에 의해 인상률이 결정된다.

지난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성장’의 기치를 내세우며 초반에 최저임금을 급격히 인상하였다. 이에 최저임금의 부담을 감당하지 못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이 대대적으로 반발하였다.

우리나라 일자리의 대부분을 기여하는 중소기업은 중하위 노동시장으로 최저임금이 전반적인 임금수준에 영향을 미친다. 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에서 중소기업은 최저임금의 급격한 상승에 따른 인건비 부담을 흡수하거나 전가할 여력이 부족하다. 대기업의 납품단가 압력과 최저임금 상승 압박 사이에 껴 고사할 처지에 놓인 중소기업의 반발은 생존투쟁에 가까울 만큼 처절하였다.

소상공인은 저임금 노동시장으로 최저임금 자체가 임금수준과 직결된다. 우리나라 소상공인 대다수는 노동시장에 진입하지 못해 생계를 위해 자영업에 종사하는 영세 사업자이다. 본인의 인건비 정도 수익을 올리는 것이 목표이나 최저임금 이상의 소득을 올리는 자영업자는 많지 않다.

영세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지급능력을 고려하지 않은 최저임금의 인상은 경제적 약자들 간의 대립과 갈등을 촉발하는 역설을 보여주었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에 따른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경영부담을 완화하고자 정부 예산으로 ‘일자리 안정자금’을 지원한 것은 자가당착이다. 불균형 경제구조와 일자리 문제가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끝없이 최저임금을 인상하는 것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존립을 위협하여 경제기반을 훼손하고 양극화를 고착화한다. 최저임금의 인상에 앞서 대·중소기업의 경제적 격차를 해소하고 소상공인의 자생력을 강화해 ‘일자리-임금의 선순환 고리’가 강화되도록 해야 한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분야에서 일자리가 늘어나고 인력 수요가 증가하여 최저임금이 상승하도록 유인하는 것이 바람직한 정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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