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승규의 모두를 위한 경제] 임금피크제의 무효화와 그에 따른 대안

입력 2022-06-0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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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아오야마학원대 국제정치경제학부 교수

임금피크제 관련 논란이 뜨겁다. 한 국책연구원 퇴직자가 자신이 재직했던 연구원을 상대로 낸 임금 소송 상고심에서 대법원이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하면서 합리적 이유 없이 고령 근로자의 임금을 삭감하는 것은 고령자고용법상 차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그러한 법리에 입각한 판단과는 별도로 현실적으로는 그동안 임금피크제로 불이득을 받았던 고령근로자나 퇴직자들에 대한 보상 문제뿐 아니라 향후 임금피크제를 대신할 새로운 제도 마련까지 그 후폭풍은 결코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임금피크제 도입 이전의 호봉제하에서는 공무원, 공공기관 종사자, 그리고 민간기업 정규직 종사자들의 대부분은 나이에서 일하지 않았던 기간을 차감한 호봉을 산정하여 각 직급별로 그 호봉에 따라 결정되는 임금을 지급받았다. 지속적으로 일을 하는 경우 임금은 나이가 듦에 따라 자동으로 상승하였다. 이러한 호봉제는 근로자들의 장기근속을 유도하고, 특화와 숙련을 통한 생산성 향상에 기여했다. 그리고 이는 한국과 일본 등에서 제조업 중심의 수출지향적 공업화와 이를 통한 경제 발전에 밑거름이 되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호봉제는 여러 문제점을 노출했다. 특히 표준화된 제품을 대량 생산하는 제조업에서는 잘 작동하는 듯했던 호봉제는, 경영 환경이 급변하는 첨단 IT 산업, 고부가가치 서비스 산업 등에서는 나이와 무관하게 창의적인 도전에 대한 충분한 유인을 제공할 수 없다는 한계에 부딪혔다. 더 나아가 2000년대 이후 경제성장이 둔화되면서 베이비부머 세대들의 호봉은 높아지지만 청년층의 취업난은 가중되고, 기업의 입장에서는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는 데 있어서 노동비용만 급증하는 고비용 저효율의 문제가 대두되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정부가 고령 근로자들의 임금을 꺾어 내림으로써 청년 고용을 촉진하고자 임금피크제를 도입하였다.

호봉 상승에 따른 임금의 상승은 경력에 따른 생산성 향상분에 대한 반영이라고 하지만, 사실 임금을 지급하는 측과 지급받는 측 어느 누구도 호봉 상승에 따른 생산성 향상 정도를 입증하는 자료를 제시하지 않는다. 결국 호봉제도 이미 생산성 향상 정도에 근거하지 않은 연령에 따른 임금 차별의 한 형태였다. 임금을 생산성이 아닌 나이에 따라 차등 지급하는 근본적인 문제점은 외면한 채, 나이에 따라 임금이 오르기만 하면 ‘불륜’이고, 임금이 내리기도 하면 ‘로맨스’라는 안일한 인식이 임금피크제라는 대증적 처방을 도출했다. 그리고 이는 결국 취업규칙을 불리하게 바꿨다는 점에서 이번 대법원 판결을 통해 무효화되었다.

나이에 따라 임금을 삭감하는 임금피크제가 무효화되었다고 호봉제로 회귀할 수는 없다. 일반적으로 임금 체계는 생산성에 연동되는 성과급과 그 외에 호봉이나 기타 다른 특성을 반영하는 기본급으로 구분된다. 생산성 향상에 기반하지 않는 임금의 상승이 부담된다면 기본급의 비중을 줄이고, 성과급의 비중을 높이는 방향으로 고용 계약 형태를 개혁하여야 한다. 가령 기본급은 경력이나 호봉 등을 반영토록, 성과급은 인사고과와 기업의 매출액 증감률 등에 연동하도록 설계하되, 장기근속과 숙련이 더 요구되는 직종과 직급에는 기본급의 비중을 높이고, 끊임없는 도전과 응전이 중시되는 직종이나 직급에는 성과급의 비중을 높일 필요가 있다.

명시적인 호봉제가 없는 미국 노동시장에서도 호봉제적 성격에 의한 임금 상승분이 생애주기 임금 상승분 중 10~30% 정도를 차지하는 것으로 여러 논문에서 보고되고 있다. 또 그러한 호봉제적 성격에 의한 임금 상승분은 이직이 잦은 젊은 층에 집중된다는 논문도 있다. 즉 미국 노동시장에서도 근로자들의 장기근속을 유도하기 위하여 호봉제적 요소가 활용되고 있지만, 그 적용 대상과 범위는 합목적적으로 제한된다는 의미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호봉제 vs 연봉제 혹은 기본급제 vs 성과급제의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 각 요소를 합목적적으로 혼합한 합리적인 임금제를 고려하여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더 이상 정부 주도가 아닌 민간 자율로 결정되어야 한다.

이번 대법원의 판결로 당분간은 임금피크제로 불이득을 받았던 고령근로자나 퇴직자들에 대한 보상 문제가 논란의 중심이 될 것이다. 그러나 임금피크제 그리고 순수 호봉제를 대신할 새로운 제도를 마련하여야 한다는 더 심각한 과제에 직면하고 있음을 직시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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