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우크라이나 전쟁에 입 가벼운 대통령들

입력 2022-06-0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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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영 국제경제부 기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직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월 16일 침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통상 전쟁 관련 기밀 정보를 미국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발설하는 것은 이례적이었던 만큼 발언을 두고 여러 평가가 오갔다. 당시 뉴욕타임스(NYT)는 러시아의 계획을 사전에 차단하는 효과가 있다고 평했지만, 정작 전쟁 피해국인 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정세를 불안하게 하는 정보가 지나치게 쏟아지고 있다며 불편함을 호소했다.

전쟁 후 서방국 수장들의 ‘입’은 우크라이나 상황을 더 험난하게 하고 있다. 대표적인 게 바이든 대통령의 러시아 정권 교체설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겨냥해 “이런 사람은 집권을 유지할 수 없다”고 밝혔고, 다수는 그의 발언이 외교를 망치고 있다고 비난했다. 러시아와 서방의 충분한 대화가 진행되지 않은 가운데 나온 발언인 만큼 자칫 러시아만 자극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백악관은 정권 교체를 시사한 게 아니라고 해명했고, CNN과 프랑스24 등 주요 외신은 바이든 대통령이 분쟁을 해소하려는 노력을 흔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엔 어떤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러시아에 굴욕을 안겨선 안 된다는 발언을 내놨다. 최소한의 외교 채널을 마련해 러시아에도 탈출구를 만들어 줘야 한다는 설명이었다. 하지만 상황을 볼 때 가해자 입장을 살피는 발언이 벌써 나온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현재 우크라이나 국방부와 동유럽 전문가들은 전쟁이 최소 연말까지 이어질 수 있다며 장기 소모전을 예상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영토 일부를 탈환했다는 소식과 키이우가 한 달여 만에 미사일 공격을 받았다는 소식 등이 혼재하며 전쟁이 예측 불가능한 상황으로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해당 발언은 러시아의 기세가 꺾인 것이 객관적인 지표로 확인됐을 때나 나와야 했다.

비대면 형식이 늘어 발언에 대한 무게감이 줄어서인지, 인터뷰를 요청하는 매체들이 많아져서인지는 모르겠다. 분명한 건 과거 물밑 협상이나 비공개회의에서 나올 법한 얘기들이 지금은 공개적으로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계획됐든 아니든 예민한 시기 나오는 발언은 자칫 협력과 동맹을 흔들 수 있다.

말 한마디에 유럽연합(EU)이 대러 금수 조치를 완전히 합의하는 데 실패하고 말 한마디에 관계부처들이 해명 기관으로 전락하고 있다. 서방을 대표하는 지도자들이 더 신중히 말해야 할 때다. kodae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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