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전주기 걸쳐 탄소 배출량 따져야
전기차 배터리 폐기 때도 탄소 쏟아져
친환경 에너지 사용 때 전기차 가치↑
배터리 전기차는 이제껏 친환경차의 최종 목표였다. 실제로 전기차는 타이어와 제동장치의 분진 등을 제외하면 주행 중 탄소 배출이 사실상 제로에 가깝다. 이 때문에 우리가 친환경차를 이야기할 때 언제나 그 중심에는 전기차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이런 이상과 사뭇 다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자동차의 조립생산과 운행은 물론 폐기 단계까지 '생애 전주기'를 따졌을 때 전기차는 뜻밖에도 친환경차와 괴리감이 크다.
이 때문에 오히려 전기차보다 ‘내연기관+전기모터’가 결합한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더 친환경적이라는 논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학계에서 시작한 이런 주장은 점진적으로 산업계로 확산 중이다.
2022년 기준으로 학계의 이런 주장에 대해 반대의견을 제기하는 곳도 적지 않다. 당장 유럽연합(EU)은 친환경차 정책을 확대하면서 하이브리드 자동차에 대한 세제 혜택을 축소한다고 밝혔다. 더 나아가 판매규제 카드까지 만지작거리는 중이다.
그러나 관점을 확대해 전기차 이면에 숨겨진 통계와 수치를 따져보면 의문점이 이어진다. 수치와 통계가 전기차보다 하이브리드의 손을 들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먼저 전기차는 주행 중 탄소 배출이 없다. 그러나 이들이 쓰는 전기는 어디에서 나올까.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전기는 발전소에서 만든다. 이 과정에서 나오는 탄소량이 어마어마하다는 뜻이다.
실제로 지난해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 결과는 전기차를 향한 우리의 맹목적인 지향성에 경고장을 날렸다. 먼저 주요국 정부가 기후변화의 주범으로 지목된 석탄화력발전을 단계적으로 폐지하자는 데 실패했다.
특히 주요 자동차 생산국인 미국과 중국, 독일, 일본, 프랑스 정부가 내연기관 폐지에 반대하고 나섰다.
한국도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40% 이상(2018년 대비) 감축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를 지속해 2050년에 탄소 중립을 이루겠다는 게 정책의 골자다. 그러나 당장 온실가스 배출현황을 분석해 보면 이를 달성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탄소 중립을 주도하고 있는 서유럽 국가는 온실가스 통계관리에 나선 1990년 이래 배출량이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증가세가 역력하다.
예컨대 프랑스의 경우 전체 탄소배출 가운데 발전소가 내뿜는 비율이 12.8%다. 이와 달리 교통부문이 차지하는 탄소배출 비율이 41.5%에 달한다. 영국도 이 비율이 각각 23.2%와 34.6% 수준이다. 친환경차 보급으로 탄소 배출을 축소할 여력이 있는 셈이다.
이와 달리 우리나라는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 가운데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부문이 무려 37%를 차지한다. 거꾸로 자동차를 비롯한 교통수단에서 배출하는 온실가스는 13% 수준에 불과하다. 유럽처럼 전기차를 확대하는 것보다 석탄화력발전을 줄이고 친환경 재생 에너지를 확대하는 게 오히려 효과적이라는 뜻이다.
무턱대고 전기차만 늘린다고 능사는 아니라는 주장도 이 시점에서 설득력을 얻고 있다.
천문학적 예산을 앞세워 전기차 보급 확대를 추진하는 만큼, 석탄화력발전을 줄이고 친환경 에너지에 대한 투자도 병행돼야 한다는 의미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경우 유럽과 달리 전기차가 늘어난다고 전체 탄소배출량을 크게 줄일 수 없는 구조다.
실제로 자동차공학회에서 전기차와 하이브리드 자동차의 생애 전주기 탄소배출량을 분석해 내놓은 보고서를 보면 2021년 기준으로 하이브리드가 오히려 유리하다. 재생 에너지가 많은 유럽에서는 전기차가 유리하지만, 석탄발전소가 많은 한국에서는 사정이 다른 셈이다.
전기차는 폐기 단계에서도 탄소를 배출한다. 내연기관 자동차는 철과 플라스틱을 다양한 방식으로 재활용할 수 있지만, 전기차 배터리는 애물단지다.
에너지 저장 시스템, 이른바 ESS(Energy Storage System)로 재활용할 수 있으나 ESS로 수명을 다하면 결국 최종 단계에서는 폐기가 불가피하다. 코발트와 망간 등 배터리의 10% 수준을 재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나머지 90%는 결국 ‘산업 폐기물’이 된다.
전기차 시대가 돼도 동력원 대부분은 수입해야 한다. 자동차 연료를 100% 수입에 의존하듯, 전기는 물론 전기차 배터리의 주원료인 △니켈과 △코발트 △망간 등도 사실상 전량을 수입하고 있다.
배터리 생산의 핵심인 희귀 토양, 즉 ‘희토류’의 대부분은 중국과 아프리카가 틀어쥐고 있다. 한때 사우디와 쿠웨이트, 이란, 이라크 등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국제유가를 뒤흔들었던 것처럼 이제 전기차 시대가 본격적으로 도래하면 중국과 아프리카가 이 주도권을 거머쥘 것으로 관측된다.
이웃 나라 중국에 주요 원료를 의존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 이런 의존도가 더 커질 것으로 우려된다. 미국과 중국 등 글로벌 G2의 헤게모니 싸움에서 자칫 유탄을 맞을 우려도 존재한다는 뜻이다.
결국, 전기차가 탈탄소 수송수단이 되기 위해서는 화력발전을 줄이고 온실가스가 배출되지 않는 재생에너지 등으로 전력구조를 개선하는 한편, 경제성 및 안전성을 보완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를 준비하는 동안까지는 하이브리드 자동차와의 공존이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환경만 강조해 내연기관차를 축소하고, 전기차 보급에만 힘을 쏟다가 자칫 화력발전소의 탄소배출에 발목이 잡힐 수 있다는 우려도 이 때문에 나온다.
한국자동차공학회는 지난 2020년 ‘자동차 기술 및 정책 개발 로드맵 연구’를 열고 자동차 시장 예측, 규제 및 정책 분석, 동력원별 온실가스와 유해물질 배출에 대한 분석을 공유했다.
배충식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는 “2030년 이후에도 엔진 기술의 진화와 하이브리드차의 성장, 전기차 비중 확대 등으로 다양한 동력원이 공존할 것으로 전망된다”며 “다양성이 큰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특정 기술에 선택과 집중을 하기보다는 균형 잡힌 정책과 연구개발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맹목적인 전기차 추종 대신 실제 탄소 중립을 실현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에 대한 논의가 이어져야 한다는 자동차 공학계와 환경단체의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