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찬의 미-중 신냉전, 대결과 공존 사이] ⑥ 글로벌 기술표준 둘러싼 힘겨루기

입력 2022-06-1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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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한발 앞선 6G 기술·일대일로 연선국가 포섭에…美 “차이나 스탠더드 막아라” 넥스트G동맹

5G(5세대 이동통신) 시대가 아직 정착되지 않은 시점에서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일본, 한국 등 6G를 선점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고 있다. 통신표준의 선점은 국가경제 발전과 미래안보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2G는 유럽이 먼저 선점하면서 기술적 우위를 확보했었고, 3G는 일본, 4G는 2011년 미국이 시장을 장악한 바 있다. 세계가 깜짝 놀랄 만큼 5G는 중국이 선점해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미국이 조급해질 수밖에 없다. 6G는 아직 한국과 중국이 주도하고 있는 형국이다.

유럽연합이 어느 쪽을 선택할까

6G는 지상통신과 위성통신의 통합된 형태로 무엇보다 위성통신기술 개발이 6G 표준의 핵심이다. 6G는 우주상업시대와 연동되는 통신 네트워크로, 그만큼 저궤도의 인공위성이 있어야 가능하다.

6G의 데이터 전송 속도는 5G의 100배에 달한다. 6G는 5G보다 1000배 bps 높은 테라헤르츠 주파수 대역 전송 용량을 사용하며 네트워크 지연도 밀리초에서 마이크로초로 확연히 줄어들어 새로운 통신 네트워크 환경과 디지털 생태계를 만들게 된다.

그런데 중국이 6G 개발속도에 있어 두각을 보이고 있다. 2020년 세계 최초로 우주에서 테라헤르츠 통신 적용을 검증한 국가가 바로 중국이다. 6G 시험 위성 발사에 성공한 최초의 국가가 중국인 것이다.

2021년 닛케이에서 6G 핵심 특허 출원건수를 분석한 결과 화웨이를 비롯한 중국 기업이 40.3%, 미국 기업이 35.2%, 그리고 일본 9.9%, 유럽 8.9%, 한국 4.2%였다. 6G 핵심 특허 출원에는 통신 및 기지국 기술, 인공지능(AI)을 포함한 6G 관련 분야의 2만 개 특허가 포함되어 있는데, 중국이 미국을 추월하며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은 앞서가는 중국의 6G 기술을 따라잡기 위해 2020년 동맹국들과 함께 이른바 ‘넥스트 G 동맹’을 구축했다. 동맹의 전략적 과제는 6G 전략 로드맵 수립, 관련 정책 및 예산 추진, 기술 및 서비스의 글로벌 확산 등으로 애플, 인텔, 퀄컴, 삼성, LG 등 글로벌 정보통신 기업을 회원으로 참여시켰다. 미국과 일본은 이미 6G 기술 연구개발을 위해 45억 달러의 공동 투자를 발표했다.

결국 향후 6G 기술표준은 미국과 중국 주도 국면에서 ‘유럽연합(EU)이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확장성은 떨어지지만 한국의 빠른 6G 기술 상용화가 어떻게 시장을 변화시킬 것인가?’에 달려 있다.

EU는 미국과 중국 어느 특정 국가의 기술표준에 합류하기보다 EU 시장과의 호환성을 기준으로 선택하되 두 나라 사이에서 중립을 지킬 가능성이 커 보인다. 미·중 간 기술표준 경쟁은 6G를 넘어 이제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다.

표준화기구서 영항력 커진 중국

중국이 주도적으로 만든 국제표준이 650개를 넘어섰고, 국제 표준화기구에 대한 영향력도 점차 확대되고 있다. 국제전기통신연합(ITU), 국제전기기술위원회(IEC) 등 관련 기구의 수장을 중국인이 차지하고 있으며, 한때는 국제표준화기구(ISO)의 회장을 맡기도 했다. 10년 전과 비교해 보면 국제표준화 관련 기구 산하 사무국에서 의장이나 간사 역할을 하는 중국인의 수가 2배 이상 늘어났다. 예를 들어, 국제통신표준을 제정하는 ITU 사무총장에 중국인 훌린 자오가 2019년 4년 임기에 재선임되었고, 각종 표준화 기구의 기술위원회는 중국 전문가들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며 상임이사국으로서 막강한 파워를 구사하고 있다. 국제 표준화기구에 대표로 선출되면 의제를 설정하거나 차기 의장 지명을 주도할 수 있기 때문에 영향력이 매우 클 수밖에 없다.

중국의 현대판 실크로드 구상인 일대일로도 결국 세계 표준화의 꿈을 실현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인도네시아나, 나이지리아 등 일대일로 인프라 사업 지원국가에서 보조금 지원을 통해 철도나 송전사업 프로젝트를 수주한 뒤 중국의 표준을 현지에 적용하는 방식이다. 중국은 스마트시티, 스마트팩토리, 자율주행차, 헬스케어 등 5G 중심의 4차 산업혁명 기술을 동남아 및 중앙아시아 등 일대일로 연선국가들에 그대로 적용할 가능성이 크다.

중국이 이처럼 적극적으로 국제 표준화기구에 참여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과거 미국 주도의 기술표준을 넘어서 자체적인 기술표준화를 통한 국제적 영향력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둘째, 관세를 통한 자국 산업 보호는 제한적인 반면 기술표준은 매우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 기술을 사용하기 위해 미국 기업에 지불해야 하는 막대한 로열티는 중국 기술에 기초한 표준정책과 국제 표준화의 필요성을 더욱 절실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셋째, 과거 일본처럼 ‘갈라파고스 신드롬(Galapagos syndrome)’에 빠져들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갈라파고스 신드롬은 전 세계적으로 쓸 수 있는 제품인데도 자국 시장만을 염두에 두고 제품을 만들어 글로벌 표준과 시장 경쟁에 뒤처지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중국표준 2035’에 바짝 긴장한 미국

2020년 3월 중국 정부는 ‘2020년 국가 표준화 작업의 요점’이라는 문서를 공개한 바 있다. 사물인터넷, 클라우드 컴퓨팅, 빅데이터, 5G, AI 등 4차 산업혁명 기술표준을 선도해 나가는 ‘중국표준 2035’의 서막을 알리는 것이었다. 당시 매체들은 ‘중국표준 2035’이 2020년 말에 공개될 것이라며, 미·중 기술패권의 핵심인 ‘중국표준 2035’을 통해 기술표준전략을 더욱 세분화·구체화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는 곧 미·중 간 기술패권 경쟁 2라운드의 시작과 함께 미국·중국·유럽 간 기술표준화를 둘러싼 패권다툼의 새로운 단초가 되었다.

2020년 3월 문서가 공개되자 미국 의회는 한 달 만에 중국 기술표준화 선점을 막아야 한다는 관련 법안을 일사천리로 발의했다. 또한 2021년 4월 민주·공화 양당 의원이 힘을 합쳐 중국의 글로벌 기술표준화에 대응해 백악관 내 기술표준을 전담하는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야 한다는 법안을 발의했다.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실 내 전담팀을 신설해 5G나 AI 등 중국의 첨단기술 분야 표준 선점을 막고 미국의 경쟁력을 증진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연방기관을 포함해 기술표준 전문 학자와 엔지니어 등을 참여시켜 국제표준 관련기구에서 중국의 세력 확산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2년이 지난 지금까지 중국은 아직 구체적인 중국표준 2030 계획을 대외적으로 공개하고 있지 않다. 발톱을 숨기고 있는 것이다. ‘중국제조 2025’가 미·중 신냉전의 단초가 된 것처럼 ‘중국표준 2035’가 미·중 기술패권 경쟁을 더욱 악화시키는 것을 중국은 원치 않는다. 세부 내용이 공개되지 않았지만 데이터 보안, 스마트카, 산업 인터넷의 데이터 수집에 있어 국가표준을 제정하고, 디지털 트윈과 공급망 관리의 표준화를 통해 일대일로 연선국가들에 스마트 제조 표준체계를 이식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동맹·지역블록…갈라파고스화 우려

미·중 간 표준전쟁은 자칫 잘못하면 미국 중심의 동맹블록과 중국 중심의 지역블록 간 자신들만의 표준만 고집함으로써 세계시장에서 폭넓게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권역별로 고립되는 이른바 갈라파고스화가 고착화할 수도 있다. 미국 주도의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도 결국 중국의 국제 기술표준 선점을 막기 위한 의도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서방국가의 반중국 정서가 계속 확산될 경우 중국의 국제표준 참여가 제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최근 가상화폐와 메타버스 등 신기술 출현 속도가 빨라지면서 미·중 양국의 표준화 선점 경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불붙은 미·중 기술패권 경쟁 2라운드의 중심에는 바로 국제표준화 경쟁이 자리 잡고 있다. 글로벌 표준 선점은 미래 4차 산업혁명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핵심이다. 우리 정부의 발 빠른 대응과 기업들이 적극 참여할 수 있는 글로벌 표준 플랫폼의 구축이 시급하다.

박승찬

중국 칭화대에서 박사를 취득하고, 대한민국 주중국대사관 경제통상관 및 중소벤처기업지원센터 소장을 5년간 역임했다. 또한 미국 듀크대학에서 교환교수로 미중관계를 연구했다. 현재 사단법인 중국경영연구소 소장과 용인대학교 중국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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