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전날 종가보다 4.5원 오른 달러당 1301.8원에 거래를 마쳤다. 원·달러 환율이 1300원대에서 마감한 건 2009년 7월 13일(1315.0원) 이후 12년 11개월 만에 처음이다.
역대로 원·달러 환율이 1300원 위로 치솟았던 사례는 세 차례에 불과하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받았던 1997년 말 외환위기 시절과 일본의 제로금리 정책에 따른 엔저 여파가 있던 2001~2002년, 글로벌 금융위기 시절인 2008∼2009년이다.
글로벌 물가 상승세 지속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가파른 긴축 기조,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인해 고환율 현상은 장기화될 것으로 관측된다.
백석현 신한은행 연구원은 “경기 침체 전망이 시장을 지배하고 한국의 수출 전망도 악화해 원화 약세 압력이 커지는 상황”이라며 “달러당 1350원까지 상단을 열어둘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국내 주식을 팔아치우고 있는 것도 원·달러 환율 급등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날 코스피와 코스닥은 이틀 연속 연저점으로 추락했다.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28.49포인트(1.22%) 내린 2314.32에 장을 마쳤다. 종가는 2020년 11월 2일의 2300.16 이후 1년 7개월여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코스닥지수는 전날보다 32.58포인트(4.36%) 급락한 714.38에 마감하며 이틀 연속 4%대 하락률을 기록했다. 종가는 2020년 6월 15일의 693.15 이후 최저치이자 연저점이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의 전날 발언은 금융시장의 위험회피 심리를 더욱 높였다.
제롬 파월 의장은 상원 은행위원회에서 경기침체 가능성을 묻는 엘리자베스 워런 의원의 말에 “확실히 가능성이 있다”며 “경기침체 없이 경제 연착륙을 달성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려워졌다”고 밝혔다. 도이체방크와 씨티은행은 내년 글로벌 경기침체 확률을 50%로 제시했다.
환율 상승은 수입 증가에 영향을 미친다. 원화값이 떨어져 똑같은 수량을 사더라도 돈을 더 줘야 한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수출입물가지수 통계에 따르면 5월 수입물가지수(2015년 수준 100)는 원화 기준으로 153.74로 작년 같은 달보다 36.3% 상승했다. 그러나 계약통화 기준으로는 각각 1년 전보다 23.1%, 20.5% 상승해 오름폭이 더 작았다.
원·달러 환율의 상승이 수입 물가의 오름폭을 더 키우고 있는 셈이다. 이는 생산자 물가와 소비자물가 상승에 영향을 미친다.
한국은행이 이날 발표한 ‘2022년 5월 생산자물가지수’에 따르면 지난달 생산자물가지수는 119.24로 전월 대비 0.5% 상승했다. 이는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최고치다. 올해 1월부터 5개월 연속 상승했다.
손진식 한국은행 경제통계국 물가통계팀장은 “우크라이나 사태와 공급망 차질에 따른 국제유가 등 원자재 가격 상승이 수입 가격에 반영되면서 생산자물가를 밀어 올렸다”고 설명했다.
소비자물가의 선행지표인 생산자물가가 상승하면서 6월 물가도 5~6% 수준의 높은 오름세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