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크래커] ‘낙태권 폐지’ 판결에 두 쪽 난 미국…한국도 논란 ‘ing’

입력 2022-06-27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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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연방대법원이 여성의 임신중단권(낙태권)을 보장한 판례를 뒤집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미국은 발칵 뒤집혔습니다. 찬성과 반대로 갈라져 극심한 내부 갈등을 빚고 있는데요.

특히 이번 대법원 판결이 미국 사회에 큰 충격인 이유는 임신중단권이 미국에선 약 50년 가까이 보장되던 권리였기 때문입니다. 오랫동안 미국 헌법이 보장하던 임신중단에 대한 권리가 이렇게까지 뒤바뀐 이유는 무엇일까요. 또 바다 건너 한국까지 미국의 임신 중단권 논란으로 시끄러운 이유는 무엇일까요.

논쟁 끝에 뒤집힌 ‘로 대 웨이드’ 판결

▲‘나의 몸, 나의 선택’을 얼굴에 적은 한 여성이 미국 연방대법원의 판결에 항의하고 있다. (워싱턴/REUTERS연합뉴스)
▲‘나의 몸, 나의 선택’을 얼굴에 적은 한 여성이 미국 연방대법원의 판결에 항의하고 있다. (워싱턴/REUTERS연합뉴스)
미국은 1973년 ‘로 대(對) 웨이드’ 판결 이후 사실상 임신중단을 보장해왔습니다. 미국은 우리나라(대륙법)와 달리 영미법을 따르고 있어 이전 판례를 법적 근거로 삼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로 대 웨이드 판결은 이는 미국 텍사스의 ‘제인 로(Jane Roe)’라는 가명을 쓴 여성과 주 정부 입장을 대변한 담당 검사 ‘헨리 웨이드(Henry Wade)’의 이름을 딴 판결입니다. 당시 성폭력으로 원치 않는 임신을 한 로는 텍사스 주법 때문에 낙태를 거부당하자 주 정부에 소송을 걸었습니다. 이에 미국 연방대법원이 텍사스주가 아닌 로에 손을 들어주면서 미국은 헌법이 임신 당사자의 임신중단권을 보장하는 나라가 됐는데요.

이를 계기로 미국은 임신 6개월까지 임신 중단을 연방 차원에서 합법화했습니다. 각 주가 낙태 금지 입법을 해도 사실상 금지되거나 사문화된 것입니다.

문제는 로 대 웨이드 판결 이후에도 임신중단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됐다는 점입니다. 대륙법상 이전 판례를 법적 근거로 삼을 수 있다는 점은 해당 판례의 판결을 번복할 수도 있다는 의미니 말이죠.

실제 임신중단권을 반대하는 진영에선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기 위한 소송을 꾸준히 제기해왔습니다. 더불어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임기 동안 보수 성향의 연방대법관을 뽑으면서 임신중단에 대한 논쟁은 더욱 격화했습니다.

논쟁의 귀결은 임신중단 규제였습니다. 2018년 보수 성향이 강한 미시시피주는 임신 15주 이후의 임신중단을 전면 금지했습니다. 이 법은 강간, 근친상간 등으로 인한 임신이더라도 임신중단을 금지해 파장이 일었는데요. 이에 시민단체 ‘잭슨여성건강기구’는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를 해친다며 소송을 냈습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든 24일 미국 연방대법원은 미시시피주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임기 때 연방대법관 9명 중 6명이 보수 성향으로 채워진 탓에 이미 결과는 예상된 상황이었습니다.

새뮤얼 알리토 대법관은 “우리는 로 판례가 뒤집혀야 한다고 본다”며 “헌법은 임신중절을 언급하지 않고, 헌법적으로 이런 권리를 암묵적으로 보장하지도 않는다”라고 밝혔습니다. 또 “로 판례는 처음부터 터무니없이 잘못됐고, 그 추론은 매우 약했다”며 “그 결정은 해로운 결과를 불러왔다“고 말했습니다. 로 대 웨이드 판결이 완벽히 번복된 채 임신중단 허용 여부에 대한 결정권은 주 정부와 주 의회로 넘어갔습니다.

갈라진 미국 시민들...‘환영 vs 퇴보’역주행·퇴보 평가

▲24일(현지시각) 미국 연방대법원이 임신중단권을 폐지하자 이에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시위대들이 연방대법원 청사 앞에서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워싱턴/AP연합뉴스)
▲24일(현지시각) 미국 연방대법원이 임신중단권을 폐지하자 이에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시위대들이 연방대법원 청사 앞에서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워싱턴/AP연합뉴스)
이 같은 판결에 미국 전역에선 파장이 강하게 일고 있습니다. 특히 미국 사회는 둘로 쪼개진 상황입니다.

대법원 판결에 반대하는 시민들은 ‘부당한 판결’(Unjust decisions)이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거리로 뛰쳐나왔습니다. 여성의 몸에 대한 자율권을 빼앗는 ‘역주행 판결’이란 주장이 많습니다. 워싱턴DC 연방대법원 청사 옆에는 임신중단권 옹호자 수천 명이 시위를 이어나가는 분위기고, 뉴욕이나 로스앤젤레스 등의 미국 전역의 대도시에서도 시위가 격화하는 분위기입니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판결 직후 “대법원이 미국을 150년 전으로 돌려놨다. 국가와 법원에 슬픈 날”이라며 유감을 표했고, 토니 블링컨 장관은 성명을 발표한 뒤 거주지와 상관없이 산부인과 시술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심지어 마이크로소프트(MS)나 나이키, 골드만삭스 등 미국 주요 기업들은 합법적 임신중단 시술이 가능한 곳에서 ‘원정 시술’을 할 수 있도록 직원들에게 비용을 지원하겠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다만 이번 판결에 찬성하는 시민들도 적지 않습니다. 교황청·공화당 등 보수 진영을 포함해 많은 시민이 환영의 목소리를 내놓고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폭스뉴스에서 “(이번 판결은) 헌법에 따른 것이자 오래전에 했어야 할 권리를 돌려주는 것”이라며 “결국 모두에게 도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나아가 동성애 금지 등 보수 진영의 숙원 사업을 공격적으로 추진하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로 대 웨이드 폐기에 찬성한 토머스 클래런스 대법관은 판결 직후 “부부간 피임이나 동성애·동성혼을 인정한 대법원 판례도 향후 재검토해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국내도 논란은 ‘ing’

▲낙태죄 폐지 1년 4.10 공동행동이 4월 10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뉴시스)
▲낙태죄 폐지 1년 4.10 공동행동이 4월 10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뉴시스)
미국의 임신중단권 논쟁은 우리나라와 별개의 문제가 아닙니다. 한국 역시 임신중단권을 둘러싸고 찬반 논쟁이 진행 중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는 2019년 헌법재판소가 형법상 임신 중단을 전면 금지한 것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에 헌법재판소는 국회에 2020년 말까지 관련 법 조항을 개정할 것을 요청했습니다.

다만 이후 국회의 보완 입법이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현재로선 낙태에 관한 규정도, 처벌도 없는 ‘입법 공백’ 상태를 이어오고 있는 것입니다. 국회에는 정부안과 의원안 등 개정안이 발의돼 있지만, 아직도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2020년 10월 내놓은 정부안은 임신 14주 이내 낙태는 허용하되 15~24주인 경우 사회, 경제적 이유가 있을 때 일정 조건에서만 가능하도록 했습니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낸 법안도 일정 기간 이후 임신중단을 금지토록 했고요. 반면 민주당과 정의당 의원들은 낙태죄 전면 폐지를 주장했습니다.

한편 입법 공백이 장기화하면 여성들만 피해를 본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법의 사각지대는 결국 당사자인 여성들에게 피해라는 것이죠. 미국에 이어 우리나라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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