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가 아무리 좋아도 CS(고객 서비스 업무)는 CS다.”
콩국수를 한 그릇 먹고 난 뒤, 한 반도체 장비사 관계자는 자조적 표현과 함께 직원들의 고충을 털어놨다. ‘슈퍼을(乙)’로 불리는 글로벌 반도체 장비사들이 전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지만, 실상 한국 법인 소속 직원들은 ‘진짜乙’이라는 이야기였다.
반도체 장비 업계 빅3로 꼽히는 네덜란드 ASML, 미국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AMAT)와 램리서치(LAM) 등은 한국에도 지사를 두고 있다. 이곳의 직원들은 일부 영업 사원을 제외하곤 대부분 고객사인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에서 반도체 장비의 유지보수 업무를 맡고 있다.
최근까지 이들 장비사에서 인력 유출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대부분 근로 환경에 대한 불만이 원인이다. 실제로 모 장비사의 경우 지난해 연간 퇴사율이 입사자의 절반에 달했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보다 나아졌지만, 여전히 갑을 관계가 현장에선 형성되고 있다”며 “화장실을 가거나 식사하는 시간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이를 항의하면 (CS 직원이 근무하는) 회사로부터 불이익을 받기도 한다”고 토로했다.
기본적으로 교대 근무하는 장비사 직원들은 퇴근 후에도 고객사로부터 콜이 올 수 있어 대기한다거나, 주 52시간 초과 근무 등의 불안정성은 물론 식사 시간까지 허락을 받아야 하는 것이 힘들다고 호소한다.
고객사 입장에선 최대 수천억 원에 달하는 장비로 최대 효율을 내려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고 해서 정해진 식사 시간이나 개인 용무 등의 ‘기본권’이 침해돼도 되는 것은 아니다. 이에 대해 항의할 경우 고객사의 요구로 혹은 회사에서 직접 인원 교체, 연봉 동결 등의 조치를 취해 직원들이 소속 회사로부터 큰 실망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한쪽에서는 반도체 인력을 모으기 위해 처우 개선 등을 제시하며 임금 경쟁을 펼치지만, 또 다른 쪽에서는 기본적인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상황이 씁쓸하다.
5월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 공장을 방문했을 때 주요 반도체 장비 회사 엔지니어, 기술을 소개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장비사들은 한국에 생산·연구 시설을 확대하며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와 반도체 장비 인프라 협력을 더욱 긴밀히 하겠다는 메시지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CS 직원들의 당연한 요구를 무시한다면 품질 저하뿐 아니라 반도체 생태계 및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음을 고민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