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말하려는 것이 하투(夏鬪)인가 하투(下鬪)인가

입력 2022-07-2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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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산업계 곳곳에서 파업의 전운이 감돌고 있다. 현대자동차가 4년 연속으로 파업 없이 임금협상을 마무리 지은 것과 달리 르노코리아자동차는 파업권 획득 절차를 밟고 있다. 대우조선은 이미 두 달 가까이 파업을 진행 중이며 금속노조의 총파업 가능성도 있다.

이처럼 여러 곳에서 파업 우려가 제기되는 것은 노동계의 임금협상 등이 여름에 몰려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하투(夏鬪)’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말 그대로 ‘여름에 발생하는 투쟁’이라는 의미다.

그러나 의문이 든다. 국어사전에도 등재돼있지 않은 ‘하투’라는 어려운 표현을 굳이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굳이 괄호를 더해 한자를 명시하고, 한글로 설명까지 넣는 등 지면을 낭비하면서 ‘하투’라는 표현을 쓰는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닐까.

기자로서 언론에 쓰이는 표현과 한자에 익숙하지 않다는 점은 부끄럽다. 그러나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고백을 하자면 ‘하투’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 떠오르는 한자는 ‘아래 하(下)’에 ‘싸움 투(鬪)’였다. 말 그대로 ‘아랫것들의 투쟁’이었다. 잘못 이해한 글자는 단 한 글자지만 단어는 명백히 다른 의미를 갖는 단어가 됐다.

어쩌면 ‘하투’라는 표현에는 이러한 의도가 담겨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노동자의 투쟁을 ‘아래에 있는 존재들의 투쟁’으로 격하하려는 의도 말이다. 이 경우 ‘하투’는 단순한 상황 묘사가 아닌 다분히 정치적인 의도가 담긴 단어로 변모한다.

말에는 힘이 있다. 단어는 특정 대상에 대한 인식을 만든다. 우리 사회가 ‘우한 폐렴’ 대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도, ‘장애인’을 ‘장애우’라고 부르자는 교육이 폐기되는 것도 이러한 단어들이 차별적 정서를 만들 수 있어서다.

‘하투’도 마찬가지다. 굳이 기존에 없던 말을 만들어가며 당사자들이 쓰지 않는 말을 버젓이 사용하는 데는 노동계 외부의 시각이 반영됐다고밖에 볼 수 없다. 기자만의 우려라면 차라리 다행이겠으나,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 있는 표현은 지양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여름철 투쟁’이 ‘하투(夏鬪, 여름철 투쟁)’보다 짧아 지면에 담기에도 유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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