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AI 기술 경쟁력은 매우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AI는 향후 미·중 기술패권을 넘어 국가안보에 있어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구글 창업자인 에릭 슈미트는 “중국은 이제 AI 분야에서 미국의 전방위적인 경쟁자로 AI 기술이 적용된 제품과 논문, 특허, 국제 AI 대회 결과 등의 주요 핵심지표를 통해 중국의 실력이 증명되었다”고 언급했다.
中 논문 수·인용사례 모두 美 앞질러
교수진의 논문 수와 특허 수를 종합해 대학 순위를 매기는 미국 컴퓨터 사이언스 대학 순위에 따르면 2018~2020년 누적 기준으로 AI 분야 연구대학 1위 칭화대, 2위 베이징대 등 상위 10위권에 4개의 중국 대학이 포진하고 있다. 미국은 3위 카네기멜런대, 5위 코넬대, 6위 스탠포드대 등 5개의 대학이 포함되어 있다. AI 영역의 양국 대학 수준이 막상막하인 상황이다.
현재 중국 대학에는 345개의 AI 학부, 190개의 지능과학 기술학부가 설치되어 있다. 미·중 간 AI 논문 수와 인용사례 관련 통계를 봐도 중국의 약진은 두드러진다. 스탠포드 대학이 발표한 ‘AI 인덱스 2021’ 자료에 따르면 중국은 2020년 AI 관련 논문 발표 수와 인용사례 모두 세계 1위를 차지했다. 논문 수 비중은 18%를 차지해 미국(12.3%)과 유럽연합(EU·8.6%)보다 앞서 있고, 논문 인용도 20.7%로 처음으로 미국(19.8%)을 추월했다.
또한 스탠퍼드 대학이 주최하는 세계기계독해경진대회에서 중국은 최근 5년간 1위부터 5위까지를 싹쓸이하고 있다. 기계독해 능력은 AI 알고리즘이 스스로 문제를 분석하고 질문에 최적화된 답안을 찾아내는 기술을 의미한다. 몇 해 전 구글 딥마인드의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기계독해 능력 때문이다. AI 알파고의 우수성이 세상에 알려지고 얼마 되지 않은 2018년 초 텐센트는 자체 개발한 AI 알고리즘 프로그램인 파인아트(Fine Art)를 개발했다. 그리고 중국의 바둑신이라고 불리는 커제와의 대국에서 승리한 바 있다. 이는 미국과 중국의 AI 기술격차가 점차 줄어들고 있음을 의미한다.
미국 하버드대 벨퍼센터는 보고서를 통해 “중국이 14억 인구를 기반으로 한 우수한 인재와 방대한 데이터, 세계 최대의 내수시장 등에 힘입어 AI 분야에서 장기적으로 미국보다 훨씬 좋은 장점을 지니고 있다”며 “특히 무엇보다 점차 증가하고 있는 STEM(과학, 기술, 엔지니어링, 수학) 전공자들이 향후 중국의 AI 기술 발전을 견인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美 ‘질적 AI’ vs 中 ‘양적 AI’의 대결
중국이 AI 모든 영역에서 미국을 추월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AI 기술력은 크게 최고 단계인 ‘일반적 AI’와 낮은 단계인 ‘좁은 AI’로 구분된다. 일반적 AI는 휴먼노이드와 같이 인간의 지능을 기계적으로 완벽히 모방해 구현한, 인간과 유사한 감정과 인식을 지닌 최고 단계의 AI를 의미한다. 이러한 강(强)AI에서는 미국이 중국을 앞서고 있는 추세다. 좁은 AI는 약(弱)AI로 특정 문제 해결을 목적으로 하는, 인간의 지능을 기계적으로 일부 모방해서 구현한 AI이다. 안면인식기술이 대표적으로, 당연히 중국이 앞서가고 있는 AI 영역이다. 따라서 양적인 AI 영역에서는 중국이 앞서가지만, 아직까지 질적인 분야에서는 미국이 앞서가고 있다는 것이 기업과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미국 정보기술혁신재단(ITIF)이 2021년 발표한 ‘미국·중국·EU, 누가 AI 경쟁에서 이길까’ 보고서에 따르면 발전기반, 인재, 연구, 하드웨어, 도입, 데이터 6개 범주 30여 개 항목을 비교 분석한 결과 중국이 도입과 데이터 분야에서 경쟁력을 보유한 것을 제외하고 대부분에서 미국이 앞서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아직은 1위 미국, 2위 중국, 3위 EU 순이지만 중국의 AI 역량과 기업 수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비록 질적 역량에서 미국이 앞서지만, 중국의 성장 속도와 막대한 데이터의 축적으로 그 추격은 더욱 빨라질 것이다. 무엇보다 중국의 AI 능력이 어느 정도 성장했는지를 가늠할 수 없기 때문에 미국은 더 조급해하고 있다.
美 ‘국방수권법’ 필두로 대응책 마련
중국의 AI 성장이 첨단산업 영역을 넘어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핵심 경쟁력으로 대두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은 중국과의 AI 패권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국가의 역량을 총동원하는 모습이다. 중국의 AI 성장에 대한 미국의 견제는 사실 오바마 대통령 때부터 시작되었다. 2016년 10월 백악관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AI의 미래를 위한 준비’라는 특별 보고서를 발간한 바 있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 시절 미국 AI 정책의 방향은 중국에 대응해 자체적인 AI 역량을 확보하는 측면보다 경제적 자율성과 미래 첨단산업 육성이라는 점에 맞추어져 있었다고 볼 수 있다.
AI 산업이 미래 경제안보의 핵심으로 떠올라 중국을 적극적으로 견제하기 시작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 때부터다. 2018년 4월 공화당 의원인 맥 손베리가 발의해 의회에 제출한 ‘2019년 존 매케인 국방수권법’이 나오게 된다. 이 법안은 AI와 머신러닝 및 관련 기술진보에 따라 국가안보와 방위를 포괄적으로 다루는 데 필요한 방법과 수단을 고려해야 한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독립적인 기구로 ‘AI국가안보위원회(NSCAI)’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중국의 AI 굴기를 견제하기 위한 미국 의회 산하에 민관전담기구가 생겨난 셈이다. 마치 1957년 소련이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를 쏘아 올리자 당황한 미국 정부가 부랴부랴 ‘우주’라는 이름을 넣어 우주항공국(NASA)을 만든 것과 비슷하다.
미국은 AI국가안보위원회의 업무 수행을 위해 매우 발 빠르게 움직였다. 국방부는 인력, 사무공간 등을 지원했고 미국 내 최고 AI 전문가들이 참여하면서 2020년 6월 위원회가 최종 구성되었다. AI국가안보위원회 의장은 전 구글 창업자인 에릭 슈미트 회장, 부위원장은 로버트 워크 전 국방차관이 맡았고, 전문위원으로 구글, 오라클,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등 기업의 민간 전문가들이 참여했다. 그리고 항공우주국 제트 추진 연구소, 플로리다 인간 머신 코그니션 연구소, 스탠퍼드 연구소 인공지능센터 등이 총동원되어 슈퍼급 위원회로 만들어졌다.
미국 AI국가안보위원회는 2년여간의 활동을 통해 2500페이지가 넘는 최종 보고서를 대통령과 의회에 제출했다. 국가안보적 관점에서 AI 및 연관기술에 대한 현재 상황의 진단과 분석, AI 역량 향상과 국익 실현을 위한 전략, 그리고 이를 실행하기 위한 정책수단 등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최종 보고서에서는 미국이 중국의 추격을 따돌리고 AI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연방정부의 투자, 국가안보에의 AI 적용, 조직 재편, 인재 육성, 해외 국가들과의 협력 강화와 같은 전략을 빠른 속도로 진행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동맹·파트너국가와 공동 압박·견제
특히 중국과의 AI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거버넌스, 인재, 지식재산권, 반도체, 기술동맹 등의 측면에서 국가적인 역량을 총동원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보고서에서 언급한 해외 국가들과의 협력 강화는 우리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중국의 AI 굴기에 맞서 미국 혼자 힘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반드시 동맹국 및 파트너 국가와 함께 중국에 대응할 것이다. 또한 국무부 주도하에 ‘국제과학기술전략’ 수립을 권고하는데, 이를 통해 첨단기술 동맹과 국제 디지털 민주주의 이니셔티브 등 글로벌 협의체를 창설하여 중국에 대한 압박과 견제를 더욱 강화해 나갈 것이다. 그 중심에 한국이 있다. 중국의 AI를 기반으로 하는 첨단산업 굴기에 대응한 미국의 공격이 전면적으로 펼쳐지고 있는 가운데 이미 반도체, 배터리, 광물자원 등의 분야에서의 한국의 참여와 역할을 요구하고 있고, 점차 그 참여 범위와 수위를 높여갈 것으로 전망된다. 국가안보와 글로벌 공급망을 고려한 정부 차원의 확대된 AI 국가전략과 미·중 간 AI 패권경쟁에서 우리는 선점 가능한 영역을 발굴하고 키워나가는 전략이 필요하다.
박승찬
중국 칭화대에서 박사를 취득하고, 대한민국 주중국대사관 경제통상관을 4년간 역임했다. 또한 미국 듀크대학에서 교환교수로 미중통상관계를 연구했다. 현재 사단법인 중국경영연구소 소장과 용인대학교 중국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