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GB 출신 푸틴의 ‘가스 게임’…허리띠 졸라매는 유럽

입력 2022-07-21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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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트스트림1 운영 재개했지만 공급량 평소 30%로
전쟁 자금 벌면서 협상 우위 도구로도 사용
러, 천연가스 수입 없어도 당장 문제 없어
유럽, 천연가스 사용 15% 감축 캠페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달 10일 투르크메니스탄 대통령과 정상회담 후 공동기자 회견을 하고 있다. 모스크바/AP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달 10일 투르크메니스탄 대통령과 정상회담 후 공동기자 회견을 하고 있다. 모스크바/AP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유럽을 상대로 게임을 벌이고 있다. 러시아는 가스 공급을 중단해 유럽을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이어 독일 연결 가스관인 노르트스트림1을 재가동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가스관 밸브를 다시 열었다. 그러나 가스를 정상적 수준의 일부만 흘려보내며 향후 협상의 지렛대로 삼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유럽은 러시아의 공급 위협에 대응해 가스 소비 절감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러시아는 21일(현지시간) 노르트스트림1의 운영을 재개했다. 지난 11일 보수를 이유로 밸브를 아예 잠근 지 열흘 만이다. 애초 공언한 가스 점검 기간을 지킨 것이다. 하지만 공급량을 조절했다. 클라우스 뮐러 독일 연방네트워크청(FNR) 청장은 트위터를 통해 “노르트스트림1 용량의 약 30%만 가동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푸틴 대통령이 유럽으로 흐르는 가스를 아예 차단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유럽에 대한 지렛대가 완전히 사라진다는 이유에서다. 오히려 가스를 조금씩 공급하면서 전쟁 자금을 조달하고, 유럽과의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할 가능성이 크다. 애틀랜틱카운슬의 글로벌에너지센터 창립 회장이자 유럽연합(EU) 주재 미국 대사를 역임한 리처드 모닝스타는 “푸틴은 가스 공급을 막았다가 조금씩 흘려보내면서 유럽과 심리 게임을 벌일 수 있다”며 “KGB 출신인 푸틴이 돈도 벌고 유럽의 무릎도 꿇릴 생각”이라고 말했다.

러시아가 유럽을 상대로 게임을 벌일 수 있는 배경은 천연가스가 가진 특수한 영향력 때문이라고 WSJ는 지적했다. 러시아의 주요 수입원은 석유로, 천연가스를 팔지 않아도 당장 문제가 없다. 유럽은 처지가 다르다. 작년 기준 유럽 천연가스 수입의 40%가 러시아산이었다. 천연가스에 관한 한 유럽이 러시아에 절대적인 약세 처지에 있는 셈이다.

이 같은 게임의 룰을 잘 아는 푸틴은 이날 가스 밸브를 살짝 열면서 협박성 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가스가 유럽으로 다시 공급되겠지만 제재 부품, 특히 노르트스트림1 유지에 필요한 가스 터빈 관련 해결책이 나오지 않을 경우 공급량이 크게 감소할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놨다. 앞서 가스프롬은 독일 지멘스에너지에 수리를 맡긴 가스관 터빈이 서방 제재 탓에 반환되지 않았다며 가스 공급을 줄였다. 알렉산드르 노바크 러시아 부총리도 서방이 추진 중인 러시아산 석유 가격 상한제를 겨냥해 “유가 상한이 원유 생산 비용보다 낮으면 원유 공급을 중단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푸틴의 가스 베팅은 리스크도 안고 있다. 지난 50년간 쌓아온 신뢰할 만한 에너지 공급국 명성이 무너질 수 있다. 유럽은 러시아의 에너지 위협에 맞서 대체 공급처 찾기에 나선 것은 물론 허리띠도 졸라맸다. EU 집행위원회는 ‘안전한 겨울을 위해 가스를 절약하라’는 소비 절약 캠페인을 제안했다. 27개 회원국이 8월부터 내년 3월까지 천연가스 사용을 15% 줄이자는 내용이다.

러시아가 유럽 대신 중국 의존도를 높이면서 양국 관계의 균형이 깨질 위험도 있다. 에너지 전문가이자 S&P글로벌 부회장인 대니얼 예긴은 “유럽 시장을 대체하기 위해 중국과 연결 파이프라인을 구축하는 데 4~5년이 걸릴 전망”이라며 “중국 의존도가 더 심화할 수밖에 없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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