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복지 공론장에 등장한 공적연금 개혁 담론은 대체로 세 가지 논의, 즉 은퇴 세대의 적정한 소득 수준, 그에 대한 국가책임의 적정 수준, 그리고 제도의 합리화로 요약된다.
우선 첫 번째 논의는 국민연금 가입자가 은퇴 후 생애 말기까지 받을 연금액의 적정 수준은 본인의 가입 동안의 소득 수준 대비 어느 정도여야 하고, 동시에 동시대 가입자 전체의 소득 대비 어느 수준이어야 하는가에 관한 것이다. 두 번째 논의는 이를 위하여 국민연금 가입자는 가입 기간에 본인의 은퇴 후 소득을 위해 어느 정도를 사전에 준비하여야 하며, 동시에 이미 은퇴한 세대의 현재 소득을 위해 어느 정도로 부양 의무를 감당하여야 하는가에 관한 것이다. 나머지 하나는 국민연금 중 노령연금 수급액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현재 은퇴 세대와 미래 은퇴 세대를 위하여 보충 연금(Guaranteed Income Supplement)의 과도기적 도입 및 운영과 청년세대에 증가하고 있는 초단시간 근로자와 고용주가 있는 프리랜서 노동자를 위한 대책 등에 관한 것이다.
현재 진행 중인 공적연금 개혁 담론의 세 가지 논의를 살펴보면 단지 인구추정치와 경제성장률의 고급 함수 모델로 해결될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공적연금은 개인의 은퇴 후 소득에 대한 개인적 차원의 강제성 저축인 동시에 동시대 가입자들의 은퇴 후 소득에 대한 집합적 차원의 재분배 및 공공재성 기금의 성격이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1988년 국민연금이 시작될 당시 가입자 중 3040세대 가입자들은 대체로 산업화 시대를 살아낸 2022년 현재 7080세대로서, 가입 기간이 20년이 채 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반면 국민연금 도입 후 20년이 지난 2008년 가입자 중 2030세대는 대체로 지금의 코로나19 복합적 경제위기 시대와 플랫폼 자본주의의 시대를 살아가는 2022년 현재 4050세대로서, 이들은 2048년에 가입 기간이 20년 이상이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따라서 산업화 세대가 강제성 저축의 성격과 재분배 및 공공재성 기금의 성격으로 은퇴 후 소득에 대해 준비하거나 기대하는 수준은 코로나19 또는 플랫폼 자본주의 세대와 다르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공적연금은 현재 가입자들의 과거 가입자들에 대한 공적 사회적 생계 부양의 제도라는 점이다. 공적연금의 보험료는 개인 연금보험과 현금성 저축과 같이 가입자 개인의 수익률만의 함수가 아니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재 경제활동 기반을 구축하고 지탱하여 온 과거 가입자 세대에 대한 현재 가입자 세대의 인정(recognition)과 보상의 성격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현재 국민연금 가입자, 그중에서도 4050세대의 사회적 합의가 중요한 동시에 어려운 이유는 이들이 개인으로서 그리고 가족공동체 구성원으로서 가지는 이기심과 동시대 동년배 집단에 대해 가지는 동료의식과 이타심, 그리고 시민으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virtue) 간에 어느 정도 상충성이 있기 때문이다. 현재 4050세대 가입자들은 노인 세대와 자녀 세대를 직간접적으로 부양하는 일선 생계 부양자이다. 동시에 본인과 동시대 동년배들의 은퇴 후 소득에 대하여 개인적 집합적 차원에서 준비하여야 하는 개인이자 시민이다.
4050세대의 구체적 삶의 상황은 이들이 어느 한쪽에 쉽게 치우치게끔 한다. 부모와 자녀를 힘껏 부양하고 싶은 마음에서 한 푼이라도 세금과 조세성 사회보험료를 아끼게끔 된다. 본인의 은퇴 후 소득을 준비하기 위하여 현재 소비와 소비성 세금 및 사회보험료를 최대한 줄이고 싶게끔 한다. 고물가, 저성장, 고용불안 시기는 더욱 심해진다. 반면 역설적으로 각자도생의 피로함과 고독함 그리고 잔인함을 목도하면서 나와 동료 모두가 안전한 공동체로서의 복지국가의 필요성을 더욱 절실히 인식하기도 한다.
복지국가의 필요성을 인식한 4050세대 공적연금 가입자는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스스로 경계하면서 상생의 연금개혁 공론장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민의 덕목, 애덤 스미스의 이기심과 공감을 동시에 발휘하는 ‘공평무사한 관망자’의 덕목을 갖추고 공론장에서 적극적으로 소통하여야 한다. 존 롤스가 제시하는 ‘원초적 상황’과 ‘무지의 장막’을 상상하지는 않더라도 ‘최소의 최대화’의 정의(justice)를 지향하는 것을 시작으로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여야 한다. 그래야 정년이라는 강제적 은퇴로 인한 빈곤의 위험으로부터 모두가 안전하게 살아가는 사회적 혜택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