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크래커] 22년 만의 ‘빅스텝’...ECB는 왜 과격해졌나

입력 2022-07-22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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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21일(현지시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ECB 통화정책회의 후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있다. 프랑크푸르트/로이터연합뉴스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21일(현지시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ECB 통화정책회의 후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있다. 프랑크푸르트/로이터연합뉴스

유럽중앙은행(ECB)가 11년 만에 처음으로 금리를 인상했다. 첫 시작부터 보폭은 컸다.

21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ECB는 이날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통화정책회의를 열고, 만장일치로 기준금리를 0%에서 0.5%로 0.50%포인트 인상하는 '빅스텝'을 결정했다.

ECB의 금리 인상은 11년 만의 처음으로, 상승 폭은 2002년 이후 22년 만에 최대다. 특히 이날 기준금리와 함께 수신금리와 한계대출금리 역시 각각 0%와 0.75%로 0.50%P씩 올리기로 하면서 2014년 시작한 마이너스(-) 금리를 종료하게 됐다.

▲유럽중앙은행(ECB) 유로존 기준금리 추이. 단위%. 출처 월스트리트저널(WSJ)
▲유럽중앙은행(ECB) 유로존 기준금리 추이. 단위%. 출처 월스트리트저널(WSJ)

이번 인상은 어느 정도 예견된 '깜짝' 빅스텝이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는 지난달 통화정책회의에서 7월과 9월 금리를 점진적으로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시장에서는 ECB가 7월 회의에서 0.25%를 인상하고 9월 회의에서나 0.5%포인트를 인상할 것으로 내다봤었다.

그러나 유로존 안팎의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ECB의 대응 속도도 빨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 시작했다. 라가르드 총재는 이날 통화정책회의 후 기자회견에서 "물가상승률이 바람직하지 않게 높은 수준을 유지한 데다 한동안 물가목표치 이상에서 머물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유로존의 6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대비 8.6% 상승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8개월 연속 오름세로, 상승률로는 역대 최고치를 경신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올해 유로존 CPI가 10% 도달할 것으로 점치고 있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지난달 15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 후 연준 본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워싱턴D.C./AP뉴시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지난달 15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 후 연준 본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워싱턴D.C./AP뉴시스

약세를 이어가는 유로화 가치도 금리 인상 폭을 키운 요인으로 꼽힌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치솟는 인플레이션 대응을 위해 최근 기준금리를 한 번에 0.75% 올리는 '자이언트 스텝'을 결정하면서 미국과 ECB의 금리 차가 더 벌어지게 됐고, 이 영향으로 최근 강달러와 유로화의 슬럼프 속에 20년 만에 처음으로 유로화와 미국 달러화 가치가 같아지는 '패리티' 현상을 넘어 1유로 가치가 1달러를 밑돌게 됐다.

이에 ECB로서도 유로화 환율을 방어해 수입물가 상승세를 잡고 전체 인플레이션을 억제해야 할 필요성이 커지게 됐다. 이날 ECB의 결정에 달러 대비 유로화 가치는 0.7% 오르며 유로당 1.0248달러를 터치했다.

하지만 이러한 인플레이션 압력과 유로화 약세에도 이날 회의 직전까지 ECB가 빅스텝까지는 밟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만만치 않았다. 기준금리를 큰 폭으로 올리면 국가 부채가 많은 남유럽 국가의 경기 침체와 재정 건전성 악화가 심화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이를 의식한 듯 ECB는 이번 금리 인상 조치와 함께 유럽 채권시장의 분절화를 막기 위한 새로운 채권매입 프로그램인 TPI(Transmission Protection Instrument·변속보호기구)를 꺼내 들었다. 통화정책 긴축 전환 과정에서 유로존 내 국채 금리 상승세에 상한을 두겠다는 의도로 설계됐다. 즉 유럽 채권시장에서 남유럽의 국채 금리 상승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유사시 만기를 앞둔 공공 채권을 매입해 유로존 19개국 회원국 간의 차입비용 차이를 제한하겠다는 것이다.

ECB는 이날 빅스텝을 결정할 수 있던 요인으로 TPI라는 도구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다만 ECB는 이러한 수단에 대해서 언급만 하고 사용하는 것은 원치 않는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지적했다. 실제로 ECB는 TPI를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등에 대해 세부적인 내용은 언급하지 않았다. 라가르드 총재도 "이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우리가 그것을 사용해야 한다면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 루브민에서 지난달 21일 노르트스트림1 시설들이 보인다. 루브민/AP뉴시스
▲독일 루브민에서 지난달 21일 노르트스트림1 시설들이 보인다. 루브민/AP뉴시스

큰 폭의 금리 인상만큼 경기 침체와 인플레이션이 동시에 진행되는 스태그플레이션 위험이 있어 정책 운용은 한층 더 까다로워지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일각에서는 경기침체에 빠져 ECB의 금리 인상이 일시 중단될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이어지는 에너지 가격 상승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통화정책에도 인플레이션은 해소되지 않고 기업 수익 악과 개인소비 위축으로 인한 침체는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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