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영끌족과 책임론

입력 2022-07-2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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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영 부동산부장 대행

정부가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빚투(빚을 내서 투자)족 끌어안기에 나섰다. 취약층 금융부담 경감 대책을 내놓은 것이다. 한국사회의 피해자격인 청년층을 국가가 안기 위함이라는 대의적인 명분을 내세운 정부의 이런 결정에 아이러니하게도 다수의 청년이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왜 내가 낸 세금으로 영끌족이 자초한 개인 투자의 책임을 보전해주느냐’는 것이다. 정부·여당은 급기야 “채무조정은 영끌·빚투족을 위한 제도가 아니다”라고 해명에 나섰지만, 여전히 비난의 목소리는 거세다.

앞서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18일 대통령 업무보고를 마치고 기자들과 가진 일문일답에서 “영끌족을 세금으로 구해주느냐는 비판이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런 도덕적 해이를 심하게 흐트러뜨리지 않는 선에서 가급적 금융이나 여러 가지 지원책으로 경제적인 충격을 완화하도록 하겠다”며 “(윤석열) 대통령도 구체적으로 짚어가면서 지시를 한 부분이다. 좀 더 강도 높은 금융 고통지수를 완화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원 장관은 영끌족에 대한 금융지원 배경에 대해 “청년층들이 영끌·빚투를 한 것은 전 정권, 넓게 보면 한국 사회가 청년을 그렇게 몰아간 면이 있으므로 개인이 책임져야 한다는 방관자적 자세보다 어려울 때 두텁게 안아주는 게 국가의 존재 이유란 점에서 방침을 줬다”고 설명했다.

원 장관의 이런 발언은 마치 영끌이나 빚투의 책임을 문재인 정부에게만 떠민 듯한 발언이다. 이들이 빚을 내서 집을 산 것은 실거주 목적이 아닌 개개인이 투자를 통한 이익 실현을 얻기 위해서인데도, 그들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는 없었다.

물론 26차례의 부동산 정책을 내놓고도 집값이 한없이 오르는 상황을 초래한 것은 문재인 정부의 정책 실패임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해서 영끌이나 빚투를 통해 집을 산 사람들을 무작정 지원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는 의문이다.

사실 이들이 집값이 한창 오를 때 팔았다면 충분히 목돈을 손에 쥘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많은 수익을 위해 더 오래 집을 소유했고, 돌연 시장 분위기가 돌아섰다. 작년 말부터 시작된 집값 하락세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고, 금리 인상에 대출 이자를 갚기 급급한 청년층 영끌족은 시름이 깊어졌다. 자칫 영끌족 청년층을 중심으로 빚을 갚아나갈 수 없는 신용불량자가 속출할 것으로 예상되자 급기야 정부는 이들을 위한 지원방안 마련에 나선 셈이다.

다만 일각에선 개인의 수익 실현을 위해 나섰던 투자 행위를 정부가 나서 세금으로 빚 탕감을 지원하는 것은 그동안 성실하게 빚 상환을 하는 이들과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개인의 투자로 인한 책임을 묻지 않고 정부가 직접 나서 지원하는 것은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를 야기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논란이 확산하자 여당인 국민의힘에서는 진화에 나섰다. 국민의힘 물가민생안정특별위원회는 21일 “원금 감면은 극히 제한적이며 영끌쪽 등의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지 않도록 대상을 제한하고 있다”며 “개인의 책임이 주가 되는 것이고 불가피한 경우 정부와 금융기관이 제한적으로 지원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인기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우영우는 첫 사건을 맡은 뒤 “몸무게 22톤의 암컷 향고래가 500㎏에 달하는 대왕오징어를 먹고 6시간 뒤 1.3톤짜리 알을 낳았다면 이 향고래의 몸무게는 얼마일까요? 정답은 ‘고래는 알을 낳을 수 없다’입니다. 고래는 포유류라 알이 아닌 새끼를 낳죠. 무게에만 초점을 맞추면 문제를 풀 수 없어요. 핵심을 봐야 하죠”라고 말한다. 결국, 한쪽의 선입견에 빠져서는 문제를 풀 수 없고 나무가 아닌 숲을 봐야 제대로 된 답을 내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여당은 이번 문제도 그 핵심을 들여다봐야 한다. 전 정부는 부동산 정책 실패로 무너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 정부는 앞선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라도 단순히 영끌·빚투족의 책임 껴안기에 급급해선 안 된다. 부디 8월 둘째 주 발표될 정부의 주택 공급 대책에서 현 정부 부동산 정책의 정수를 느낄 수 있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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